지나가고 이미 없어진 시간이 함께 떠올랐다

2011/08/28 06:48

by Hong Sukwoo


2006년인가 2007년에 산 아이팟 터치 iPod Touch를, 책상 두 번째 서랍 안 뒤엉킨 혼돈 안에서 잠들어 있던 그것을 꺼내보았다. 새벽이 가도록 아이패드로 신문 기사를 읽던 중이었고 별다른 이유 없이 말 그대로 '그냥' 꺼낸 것이었다. 오랜만에 조우한 아이팟 터치는 이제 오래된 기계라는 표시가 제법 났다. 불투명해진 한없이 긁힌 은색 뒷면과 왜인지 무엇인지 모를 끈적한 뭔가 뭍은 싸구려 보호필름을 붙인 앞면이 그 녀석을 설명하는 최대한의 객관 客觀이었다. 아이폰에서 익숙한 왼쪽 측면의 음량 버튼도, 외장 스피커도, 싸구려 카메라도 없다. 아이폰보다 나은 것은 매끈하고 얇은 몸체 정도인데, 그 안에 내가 처음으로 4대 보험을 받으며 일한 시절 들은 음악, 저장한 사진, 받은 애플리케이션들 그리고 자잘한 일정과 메모들이 방치되어 있었다. 서랍 속에서, 덩그러니.

방전 상태에서의 충전이어서 작동하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충전이 어느 정도 된 후 뜬 첫 화면은 전성기 마이클 잭슨 Michael Jackson의 초상에 커즈 Kaws가 그린 그림이었다. '킹 오브 팝'의 죽음도 그리 먼 일이 되었던가. 예나 지금이나 비밀번호는 바뀌지 않았다. 먼저 음악을, 그리고 사진을 들여다봤다. 피쉬만즈 Fishmans, 생각의 여름, 케이준 댄스 파티 Cajun Dance Party와 카잘스 Cazals 같은 곡들은 2008년 남짓의 영향일 테다. 성사되지 않았던, 모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보내준 여가수의 음악 한 곡이 있었다. 귀에 착 감기는 사랑 노래일 뿐이던, 그 노래를 들으며 혼자 떠났던 고 故 다울이 장지 가던 길이 떠올랐다. 문지 문화원 사이 Saii에서 진행한 2009년 강의 녹취록과 뉴욕서 온 친구가 만든 잡지에 실은 윤도현 밴드 YB band의 녹취록도 있었다. 사진첩 속 사진들은 노래보다도 더 시간의 단절을 느끼게 해주었는데, 웹에서 찾은 스테파노 필라티 Stefano Pilati의 사진 열다섯 장과, 아이돌 그룹의 스타일리스트를 하기 직전까지 보았던 수백 장의 참고용 사진들과 지금 연락이 끊겼지만 여전히 종종 생각하는, 나를 격려해주던 친구의 사진 몇 장이 그 안에 있었다. 말이 되지 않는 잦은 고장으로 나의 '애니콜 Anycall' 시대를 끝나게 한 삼성의 쿼티 qwerty 자판형 스마트폰과 아이폰 3GS로 갈아타기 전까지의 시간 동안, 나의 귀와 눈과 바깥에서의 사소한 시간과 약간의 업무를 책임진 녀석이었다. 그 작은 기계에 다시 불을 켜니 지나가고 이미 없어진 어떠한 종류의 시간이 함께 떠올랐다.

아이패드와 아이폰과 맥북을 두 대나 가진 나는 주위에서 '너 무슨 얼리어댑터 아니냐'라고 반 장난식으로 놀린다. 안타깝지만 아이패드는 약정 기간이 1년 넘게 남았는데 벌써 여기저기 까지고 찌그러지고 난리가 났다(다행히 동작에는 이상이 없지만). 몇 개의 기계들을 통해 삶을 기록하고, 기계들 안에 삶을 저장하고, 기계들을 통해 삶을 공유하며 산다. 지금으로선 어디 사람이 없는 곳이나 현대 문화와 동떨어진 곳에서, 당장 살 수도 살고 싶은 마음도 없다. 여전히 기계들에 의존하고 또 이용할 것이다. 종종 그것들이 삶에서 멀어지고 새로운 기계로 갈아탈 때가 되어서야 '아, 맞아' 하면서 기한이 다 된 기계처럼 잊은 이들에 대해 불현듯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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