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29 15:04
마음이 바뀌는 것을 느낄 때, 사람이라는 걸 자각한다. 포유류 인간종 이외의 것이었던 적은 없으니 비교는 어렵겠지만 말이지.
장기하와 얼굴들의 2집이 나왔고, 두 개의 타이틀 곡 중 하나인 'TV를 봤네'를 반복해서 듣는다. 어딘가 울컥한 기운이 서려 있는 노래로 느끼는 것은, 가사와 멜로디가 주는 힘일까, 아니면 내 감정이 그렇기 때문일까, 아니면 200mm는 온 것 같은 이 장맛비 때문일까.
스무 살 생일을 맞은 소희 양에게, 십 대의 생일과 이십 대 첫 생일은 어떻게 다른 것 같으냐고 물었다. 그녀는 또래와 비교해 평범한 십 대를 보내지 않았을 것이고 남들보다 이른 사회생활을 겪은 셈이니, 사실 내 스무 살과는 무척 다른 스무 살이겠지만. 나의 스무 살, 이십 대 초반 생일들이 어떻게 지났더라 떠올리니 별다른 기억이 나질 않았다. 언니네 이발관의 '생일 기분'이란 노래는 스무 살의 생일, 그 별거 아니었던 담담함을 얘기했다. 그녀의 대답은 내가 생각한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지만 생일이 별거 아니게 지나간다고 느끼는 요즘도 한 살 나이를 먹고 또 그것을 축하해주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꽤 행복한 일인 것이다.
요즘 즐겨 신는 꼼데가르송 옴므플러스 COMME des GARÇONS Homme Plus의 부츠 가죽이 물을 흠뻑 머금어서 축축하다. 가죽도 조금 뒤틀린 것 같은데, 오늘 입은 노란 바지와 흰색 스웨트셔츠도 그렇고, 낮에 할 일을 마치고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싶다. 짙은 색깔의 옷으로, 막 신을 수 있는 운동화나 부츠로. 그러고 보니 장화를 갖고 있지 않네. 우비는 그렇게 좋아하면서. 리라 초등학교 학생도 아니고 노란색 우비를 그렇게 입으면서.
일련의 상황이 반복되면 상황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삶 일부가 된다. 그게 고정되면, 나는 '그런 사람'이라는 마음이 들고 그것은 나라는 사람을 규정하는 규칙이 된다. 고소공포증이 있어서 놀이공원에 가지 않는다거나, 모르는 이들과 한 자리에 있을 때 무슨 화두를 던져야 할지 모르겠다거나, 사람들과 뜻밖에 쉽게 친해진다거나, 알고 보면 썰렁한 농담으로 점철된 인물이었다거나 하는 것들이 모두 쌓여온 것이 만든 모습이었지만 사실, 의례 그런 사람이었겠거니 하는 것들이 얼마나 쉽게, 허무하게 변할 수 있던가.
오래된 친구가 요새 힘들어하더라는 얘기를 듣고서 전화를 했다. 전화로 우리는 긴 얘기를 할 수 없었다. 잘 지내느냐는 얘기 뒤에는 바로 날을 잡아 친구들끼리 한 번 만나자는 얘기와 술 한잔 해야지 하는 얘기가 이어졌다. 기약 없는 만남을 약속하고는 뭐가 그리 바쁘다는 거지, 나는, 하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취향은 있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모습을 창문 안에서 바라보는 것. 마음을 움직이는 노래를 듣거나 쓴맛이 녹은 얼음에 희석된 커피를 한 모금 빠는 것. 변하는 것들을 감당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들을 생각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