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을 읽었다

2012/09/17 17:13

by Hong Sukwoo


잡지와 책을 사놓고 읽지도 않는 사태가 매번 발생하고 있다. 책을 사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는 것은 심히 우려하는 상황인데, 어째 빈 책장을 채우며 뿌듯해 하는 식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래서 방금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며칠 전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산 무라카미 하루키의 <쿨하고 와일드한 백일몽>을 읽었다. 화장실에 있을 때는 길어봤자 5분 정도의 시간이니까 짧고 명쾌하게 끝나는 수필집이 딱 알맞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유행처럼 번지던 시절, 나는 더 대중소설에 가까운 '추리 문학'에 푹 빠져 있었고 그의 장편 소설이 주는 모호함을 이해하기엔 퍽 어렸다. '아니, 그래서 카프카가 뭐 어쨌다고?' 하는 식이었다. 좀 더 달곰하고 머릿속에서 기승전결이 그려지는 다른 외국 작가 소설에 꽂히기도 했다. 훗날 대학교 도서관에서 <무라카미 라디오> 같은 수필집을 빌릴 때도 그래서 큰 기대 하진 않았다. 하지만 작가의 일상과 삶에 대한 사소한 생각이 녹은 수필을 읽으며, 사실 하루키는 장편보다는 중편, 중편보다는 단편, 단편보다는 수필에 특화한 작가 아닐까 생각한 적도 있다. 그런 생각을 한 게 이십 대 초반이었는데, 당시 종종 들어가서 구경하던 - 아직 <지문 사냥꾼>을 내기 전의 - 싱어송라이터 이적의 웹사이트에서 비슷한 감상평을 보곤, 아,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구나, 하고 왠지 유명인의 생각과 내 감상이 일치했다는 데 (어린 마음에) 내심 뿌듯한 기분을 간직했다.

지금 그의 수필을 다시 읽으면서(물론 원고 마감 중이니까 금세 손 놓긴 했지만), 그가 쓴 80년대의 기록을 보면서, 이십 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이어지는 어떤 공감대를 본다. 아마 읽는 사람마다 '통한다'고 느끼는 지점은 전부 다르겠지만, 80년대와 90년대에 낭만이 존재했다고 믿는 지금의 이삼십 대에게 당시 일본 상황도 퍽퍽하고 팍팍하긴 해요, 라고 말하는 하루키의 글을 읽으면 묘한 동질감과 이질감이 동시에 든다. 과연, 동시대에 불평하는 이들은 언제든 존재했나, 하면서. 지금 쓴 것처럼 무겁게 생각한 건 아니지만.

화장실 얘기를 마저 하자면 요새는 화장실에서도 죄다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었는데 다시 이런 얇고 가볍고 짧게 끝나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읽다가 앞부분이 도저히 기억나지 않아 복기하길 포기하고 덮어버리는 책이 아닌 수필집을 화장실에서 정복해나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책장에 다시 꽂아넣을 때도 (돈 주고 산) 이 책에 미안한 마음이 덜 들 테고 나의 구매로 (이미 충분히 벌었겠지만) 인세를 손에 넣게 된 하루키 씨와 출판사 문학동네에도 책의 본연에 충실했으니 더 기쁘지 않을까 싶다. '북마크 book mark'라는 세련된 영어가 존재하지만, 종이와 딱딱한 표지로 된 진짜 책을 읽을 때 어디까지 읽었나 '포스트 잇'을 꽂아 넣거나 책에 함께 들어 있는 띠로 표시하는 행위도, 이것 참 공기처럼 당연하면서도 괜찮은 행위였구나 싶었다.

언젠가 이런 수필집을 내게 된다면, 하고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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