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05 03:36
내가 한 일에 부끄럽다는 감정을 느낀 것이,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쉰다'라는 것이 내게는, 수년 동안 쓴 블로그의 일기 쓰는 시간이었다는 것, 아니 그 시간이 내게는 쉼의 한 부분이었다는 걸 꽤 느낀다. 집에 갈 때, 랩톱을 켜지 않을 때, 어떻게든 어떤 글이든 쓰고 싶다는 생각 대부분은 그 시간에 쓰지 않았으므로 곧 잊어버리지만, 잡지에 쓰는 글도 아니며 인터뷰처럼 목적을 갖고 타인과 대면하지 않은 그저 온전히 내 감정을 주르륵 써내려가는 시간이 어떤 도움이 되지 않을지언정 필요하다.
연락이 오고 연락을 한다. 어떤 만남은 불시에, 어떤 만남은 참으로 오랜만에, 어떤 만남은 일상적으로 이어진다. 만나지 못한 것들은 대체로 휴대전화 속 문자나 목소리로 사라진다. 가끔 사람이란 참 신기하고, 참 사회적이고(원하든 원치 않든), 갈피를 잡기 어렵다.
몇 차례 술자리 이야기에서 흥미롭게 빠져들지 못한 모습을 혼자 발견하곤 '요즘 왜 이러지?' 하는 마음 반, 왜 누구를 만나도 이런 기분이 이어질까 싶어 측은하고 유치하지만 자책과 근심이 스멀거리는 마음이 반이 된다. 어떤 방식으로 지금까지 살았더라, 가만히 생각한다. 모든 긍정적인 것들이 아무런 생각하지 않는 마음과 뒤섞이면 말 그대로 별일 없는 것처럼 살게 될까.
여자친구 백화점 행사 정리를 마치고 새벽 맥주 한 캔을 막 비울 무렵 어디선가 나타난 새끼 고양이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편의점 앞사람들을 바라봤다. 과자를 던져주었고 날름 야금야금 먹어치웠다. 강아지를 키우는 그녀는 이전 제주도에서처럼 천하장사 소시지를 세 개 사자 했고 두 개를 까서 멀찍이 던져주니 하나를 집어서 아지트처럼 보이는 노란 버스 아래서 먹고는 다시 나머지를 먹다 버스 아래로 들어가는가 싶더니 이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동물복지에는 왜 이구아나라든지 미시시피 붉은귀거북은 들어가지 않을까. 사람에게 애정을 느끼지 않는 핏줄을 가졌을 뿐인데. 그사이 바람은 스웨트셔츠 소매를 잡아 끌어내릴 정도로 차가워졌고 부앙부앙 요란한 소릴 내며 두 바퀴인가 돌던 얼룩말 무늬 티셔츠 입은 청년도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어느 패션 행사에서 받은 화려한 그래픽의 스케이트보드 덱이 있다. 얼마 전 운동화를 살 때, 스케이트보드 휠과 바퀴를 살 걸 그랬다. 스무 살 무렵인가, 한국전력 건물 앞에서 스케이트보드 타는 또래를 보며 '이미 늦었다'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무얼 하고 싶을 때 남들의 판단에서 늦은 경우가 있어도 그게 반드시 늦은 건 아닐 것이다.
살수록 사람은 진해지고 명확해질 거란 막연한 마음이 있었다. 살아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