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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ng Sukwoo Nov 29. 2015

11월 29일 토요일

뉴타운 지구를 벗어나 일단 그저 걷는다

싼 맛에 산 아이폰과 아이패드용 8핀 케이블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동시에 고장 났다. 집에서 김장을 한 토요일 밤, 느지막이 저녁을 먹고, 생각 많은 머리 아래 달린 몸을 뜨끈한 이불 아래 넣고 꺼진 아이패드와 아이폰을 치우고 앨러리 퀸 추리 소설이나 읽으려고 하다가, 도저히 답답해서 나왔다. 조용한 토요일 밤, 시끄러운 서울 여러 동네와 연관없는 뉴타운 지구를 벗어나 일단 그저 걷는다.

11월에서 12월로 넘어가는 시점은 근래 몇 년을 돌이켜 보면 어쩐지 항상 생각이 많았다. 단지 나이를 먹어서라기보다는 좀 더 사회적인 틀에 맞는 삶을 생각하고, 일은 하고 있으나 어느 것이 정말로 내 것인지 고민하는 과정이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작년 봄부터 11월까지는 이십 대 후반 언젠가 일기에 쓴 - 사춘기와 대입 고민 따위 비교조차 할 수 없던 - 질풍노도 시기에 비할 법했다. 회사들이 제품과 서비스를 내놓기 전에 미리 그들과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쉽게 그것을 '컨설팅'으로 부르자. 그리고 <스펙트럼 spectrum> 대신 더 '패션'에 집중할 '모바일 매거진'을 만들자. 생각은 거창했고 그래서 첫 삽은 올해 5월에 시작했을 정도로 느렸지만, 아직 금전적 이득을 불러오지 않았지만, <더 네이비 매거진 The NAVY Magazine>을 딱 1년 전 이맘때 생각했다. 누군가 올해 재밌는 일이 없느냐고 물을 때,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무언가가 되었다. 아직 올리지 못한 이야기도 쌓여 있다.

지난 2016년도 봄/여름 시즌 서울패션위크 Seoul Fashion Week 한상혁 실장님 뒤풀이 자리에 들렀다가 역시 자리를 찾은 서리얼벗나이스 Surreal But Nice 수형이 형이 컬렉션 음악으로 쓸 만큼 좋아한다던 '부산에 가면'이란 노래를 들었다. 차분한 멜로디 위에 최백호 목소리가 지긋이 가사를 누르듯이 읊었다. 패션위크 기간 중 매일 몇 개의 컬렉션 비평 기사를 넘겨야 했고 조금 마신 술과 독촉하는 문자 사이에 억눌린 부담감을 겨우 떨치고 막 그 노래를 들었다. 한 시간 넘게 아이패드와 씨름하던 나보다 계속 자리에 앉아 2차로 맥주를 넘기던 사람들이 조금 더 취했다. 으레 뒤풀이 때 그래 온 것처럼 상혁 실장님은 '더' 취해 있었다. 원래 사진 스튜디오로 쓰던 지하 사무실이라 층높이가 높고 공간감이 넓은 쇼룸 안에 부산을 노래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첫 소절을 듣자마자, 겨우내 가장 자주 듣게 될 노래가 되겠구나 예감했다. 대체로 이런 생각은 맞고, 오늘 집을 나와서 새 충전 케이블과 함께 산 편의점 표 이어폰으로 한 시간 정도, '부산에 가면'을 듣는다. 정취와 울림이 있는 목소리다.

명곡을 낸 음악가와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는 작업을 일군 예술가들을 최근 생각했다. 남들이 이 사람, 하면 바로 떠올릴 작품을 낸 이후에도 그는 여전히 고민하고, 스트레스받고, 새로운 창작에 골몰할까. 사실 생각할 가치도 없는 전제일 것이다. 삶은 이어지고, 사람들은 어쨌든 간에 새로운 걸 원하고, 시장에 들어온 이상 무언가 꾸준히 표현해내야지만 빠르게 망각하는 세상에 조금이라도 길게 이름을 연장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도 어쩐지 어리석은 질문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면서.

작년 11월과 12월 내린 선택의 방향들이 의도하였든 아니든 2015년의 길이 되었다. 바통 터치하듯이, 올해 남은 한 달 역시 비슷한 고민, 선택, 계획과 결정을 한다. 일과 개인, 모두.

며칠 전 새 작업을 열성적으로 설명하던 '99% 이즈 is' 바조우와 그의 삼성패션앤디자인펀드 SFDF 수상을 직접 보기 위해 자비를 들여 서울을 찾은 준스케 야마사키 씨를 잠시 만나 인사했다. '저 정도의 열정이….' 내심 감탄했다. 막 추워지기 시작한 겨울, 뜨거운 가슴, 뭐 이런 종류여서 누구에게는 딱 '유치하다' 싶을 그런 감정이 고객과 고객 사이에서 지지부진하게 답답하던 마음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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