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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니 리 Sep 03. 2024

존재만으로

물건


music / Dreams From Bunker Hill
by cigarettes after sex



'어떤 물건 만으로도 그 사람이 나의 곁에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 있나요?'










요즘 부쩍 고민이 많아졌다. 그저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마음 한편이 헛헛하다 못해 텅 비어 버린 것 같아 매일 걱정을 한가득 안고 산다. 때로는 눈물을 참아보고, 때로는 눈물 한 방울만 허용하는 나 자신과의 겨루기다.

결국은 참지 못하고 흘러버리는 눈물이지만 너무 부정적이게 생각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이런 순간이 나를 찾아올 때면 주변에 있는 것들이 더욱 소중해진다. 가족이랑 놀러 가서 음료를 마신 카페의 영수증 하나라도 더 간직하려고 하는 것처럼. 소소하고 많은 것들을 더 붙잡는다. 가득 빈 마음을 채워보려 애쓰는 것이다.(때로는 어떤 게 더 중요한지 모르고 다 간직하려 하는 게 문제이기는 하지만..)

그리고 이럴 때에는 위안이 되는 것이 필요해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나에게 준 물건들을 항상 주변에 두려고 한다.


엄마가 일본 여행에서 사 오신 작은 인형 고리, 언니가 선물로 준 보랏빛의 립스틱, 추운 겨울의 눈발에도 따뜻하게 날 안아주는 아빠가 준 스웨터, 나의 망가진 목걸이를 본 친구가 만들어 준 새 목걸이..



5년 전, 엄마가  일본 구마모토현에 다녀오시면서 이 표정, 저 표정을 한 쿠마몬 인형 고리를 사주셨다.(사실 일본에서 티셔츠를 사달라고 부탁했는데 이쁜 게 없다고 하셨다.) 방 한 구석에 장식품으로 걸어뒀는데 오래되었는지 힘 없이 끈이 끊어져 버렸다. 처음에는 끈이 풀려버리는 바람에 실로 매듭을 지어서 마무리했다. 그런데 또다시 시간이 흐르고 다시 실이 풀려 이제는 강력 본드로 강력하게 이어뒀다.



매 번 끊어진 이 실 덕에 매년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는 것 같아 '지난번 엄마가 일본 다녀오시면서 사 오셨던•••!' 하고 되새기게 되면서 엄마가 나에게 준 소중한 물건으로 전략(?)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약해진 실 덕분에 물건 하나만으로도 엄마를 떠올리며 힘을 얻고 위안받을 수 있다.



또 다른 물건은, 언니가 사 준 립스틱이다. 가지고 싶었지만 남은 립스틱 때문에 사기에는 돈이 아깝다고 생각했는데,, 생일 선물로 받았다. 립스틱은 특별한 게 없지만, 언니가 준 선물이라는 명목 하에 그 물건이 언니를 떠올리게 해 주면서 힘을 얻는 것이다.



그저 그 물건이 누구에게 받은 것인가에 따라 의미가 깊어지는 것처럼.


다음은 아빠에게 받은 스웨터. 겨울이 되고 일주일에 한 번은 약속인 것처럼 꼭 입었었다. 한 계절을 보냈을 뿐인데 얼마나 자주 입었는지 손목과 가방이 닿이는 곳에 이끼처럼 보풀이 올라왔다. 까슬까슬한 보풀과는 다르게 스웨터의 안은 기모가 가득해 보들보들, 포근하게 날 안아준다.



해져가고 있는 이 스웨터도 또 하나의 보풀이 생길 때마다 아빠를 한 번씩 떠올리며 내 곁에 날 응원해 줄 누군가가 있음을 느끼게 해 줄 것.



마지막 물건.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를 건너 알게 된 한 친구가 준 목걸이다.


같이 여행을 가자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옷과 잡동사니로 가득한 캐리어를 실은 기차를 타고 여수로 향했다. 여름이라 휑해진 목에 가끔 사용하던 목걸이를 하려다 뚝 끊어져버렸다. 목걸이의 장식은 온데간데없고 휑해진 목걸이에 내 목은 더 휑해져 버렸다. 그래서 '그래, 그냥 이거라도 걸자.' 해서 친구가 목에 목걸이를 걸어줬었다. (진짜.. 허전했다)



이 여름 이후로 행방을 알 수 없는 목걸이..



2박 3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며칠 뒤 만난 친구가 선물을 준비해 온 것. 정성스러운 포장지 안에 감춰있던 하트 장식이 걸린 실버 목걸이.


'기차에서 목걸이 하려다 끊어진 것을 기억하고••• '  생각에 너무 고마웠다.



요즘에는 자주 못 만나는 바람에 서로의 삶에 서로가 없을 수도 있지만 문득 이 목걸이를 볼 때, 내가 얼마나 그 친구에게 사랑을 받는지, 말을 하지 않아도 이런 것을 통해서도 나를 얼마나 좋게 생각해 주는 것인지를 알 수 있었다.







물건은 단면적인 것에는 의미가 없다. 그러나 누가 이 물건을 나에게 준 것인지, 어느 장소에서 이 물건을 사게 되었는지, 어디서 봤던 물건이었는지에 따라 그 물건은 많은 의미를 가지게 되면서 나의 마음속에서의 값어치는 매길 수 없을 만큼 폭등하는 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어디서 왔는지, 어디서 샀는지, 어디서 찾은 건지 알 수 없는 물건들이 가득한 그 순간에도 의미를 가진 그 물건들은 그 속에서 빛나고 있다.


엄마의 사랑, 언니의 다정함,

아빠의 포근함, 친구의 마음


당신에게는 어떤 물건이 소중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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