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you
너무 예측 가능하게도 이대로라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폴킴일 것이다. 한번 빠지면 끝장을 내버리는 외골수 기질에다, 뭔가를 좀처럼 질려하지 않는 성격은 타이틀만 조금씩 바꿀 뿐 '폴킴 노래 1시간 반복'이라는 루틴을 벗어나지 못할 것임을 감히 의심치 않는다.
새해 소망을 빌던 날부터 지금까지. 근 한 달을 폴킴 노래만 주구장창 듣다 보면 평생 경험하지 못한 별일을 다 겪게 된다.
'폴킴 비긴어게인 스트리밍', '폴킴 유희열의 스케치북 영상', '폴킴 뷰민라 직캠' 등 유튜브 추천 콘텐츠가 모두 한 곳을 향하는 것을 물론,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조차 나를 음원조작에 가담하는 봇으로 의심하기 시작하는데, 동일 곡을 300번쯤 연속으로 들으니 벌어진 일이다.
"이봐, 자고로 인간이 이 정도로 같은 곡을 반복해서 들을 리 없어. 너 로봇 맞지? 아니라면 인증 창에 비밀번호를 다시 입력해보렴."
"세상에, 네가 인간이라고?"
폴킴을 좋아하게 되리라고 단 한 번도 예상해본 적이 없다. 되려, 덕질하지 않을 가수라고 감히 확신했다. 주요한 이유로, 그는 막역한 대학 동기이자 남자사람친구 김ㅁㅅ을 닮았기 때문이고, 메이저 연예 기획사에서 탑티어로 발굴해 낸 스타가 아니었으니 BTS 정국 외모를 이유로 방탄에 입덕하여 현재 아미진행형인 인간의 방심은 당연할 것이다.
그런 내가,
왜 지금, 그일까를 돌아보면
어디에서였는지 기억조차 흐릿한 시점에 '편지'라는 곡을 듣게 되었다. 취향을 저격하는 서정적인 멜로디는 사랑은타이밍, Spell로 이어지는 전곡 무한재생 루트에 몸 담게 만들었고, 기꺼이 스팸으로 오해받는 혐생을 겪어내게 하였다.
폴킴에 빠진 이 상황이 스스로 자유 의지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는지 톺아본다. 노래를 재생하는 나, 듣는 나. 고작 그의 노래 선곡 정도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 개입할 수 있는 요소는 무엇이었을까.
폴킴이 데뷔한 것? 노래를 듣게 된 것? 그게 하필 '커피 한잔 할래요' 같은 유명한 곡이 아닌 마이너 한 내 심장에 꽂히는 멜로디라 그를 다시 보게 된 것?
수많은 장면에서 나의 선택을 애써 복기해보지만, 결국 하나의 깨달음으로 자리한다.
우연으로부터
인간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
내가 태어난 장소, 시간, 부모. 이 배경 속에서 맞닥뜨린 모든 숙명은 의지로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이었고, 그들이 나를 현재로 자라게 했다. 과정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으나, 마주한 선택의 길은 늘 우연했고, 우연은 다시 우연의 연속인 길로 안내했다.
나라는 결과물은 우연의 조각들이 모이고 얽힌 예측하지 못한 꼴라주이듯,
우연의 시간.
우연의 말.
우연의 장소.
우연의 음악.
우연의 향기.
우연의 사람.
우연이 이끄는 삶 속에서, 내일의 나는 어떤 '폴킴'을 마주하게 될까.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에 집착하고, 무엇에 울고 웃을까. 무엇을 다시 듣고, 무엇을 느끼고 싶어 할까.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