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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현지 Mar 28. 2021

우연으로부터

To you

너무 예측 가능하게도 이대로라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폴킴일 것이다. 한번 빠지면 끝장을 내버리는 외골수 기질에다, 뭔가를 좀처럼 질려하지 않는 성격은 타이틀만 조금씩 바꿀 뿐 '폴킴 노래 1시간 반복'이라는 루틴을 벗어나지 못할 것임을 감히 의심치 않는다.


새해 소망을 빌던 날부터 지금까지. 근 한 달을 폴킴 노래만 주구장창 듣다 보면 평생 경험하지 못한 별일을 다 겪게 된다.


'폴킴 비긴어게인 스트리밍', '폴킴 유희열의 스케치북 영상', '폴킴 뷰민라 직캠' 등 유튜브 추천 콘텐츠가 모두 한 곳을 향하는 것을 물론,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조차 나를 음원조작에 가담하는 봇으로 의심하기 시작하는데, 동일 곡을 300번쯤 연속으로 들으니 벌어진 일이다.


"이봐, 자고로 인간이 이 정도로 같은 곡을 반복해서 들을 리 없어. 너 로봇 맞지? 아니라면 인증 창에 비밀번호를 다시 입력해보렴."
"세상에, 네가 인간이라고?"


폴킴을 좋아하게 되리라고 단 한 번도 예상해본 적이 없다. 되려, 덕질하지 않을 가수라고 감히 확신했다. 주요한 이유로, 그는 막역한 대학 동기이자 남자사람친구 김ㅁㅅ을 닮았기 때문이고, 메이저 연예 기획사에서 탑티어로 발굴해 낸 스타가 아니었으니 BTS 정국 외모를 이유로 방탄에 입덕하여 현재 아미진행형인 인간의 방심은 당연할 것이다.


그런 내가,

왜 지금, 그일까를 돌아보면

우연이 있다.


어디에서였는지 기억조차 흐릿한 시점에 '편지'라는 곡을 듣게 되었다. 취향을 저격하는 서정적인 멜로디는 사랑은타이밍, Spell로 이어지는 전곡 무한재생 루트에 몸 담게 만들었고, 기꺼이 스팸으로 오해받는 혐생을 겪어내게 하였다.


폴킴에 빠진 이 상황이 스스로 자유 의지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는지 톺아본다. 노래를 재생하는 나, 듣는 나. 고작 그의 노래 선곡 정도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 개입할 수 있는 요소는 무엇이었을까.


폴킴이 데뷔한 것? 노래를 듣게 된 것? 그게 하필 '커피 한잔 할래요' 같은 유명한 곡이 아닌 마이너 한 내 심장에 꽂히는 멜로디라 그를 다시 보게 된 것?


수많은 장면에서 나의 선택을 애써 복기해보지만, 결국 하나의 깨달음으로 자리한다.


우연으로부터 
인간은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가.


내가 태어난 장소, 시간, 부모. 이 배경 속에서 맞닥뜨린 모든 숙명은 의지로 컨트롤할 수 없는 영역이었고, 그들이 나를 현재로 자라게 했다. 과정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으나, 마주한 선택의 길은 늘 우연했고, 우연은 다시 우연의 연속인 길로 안내했다.


나라는 결과물은 우연의 조각들이 모이고 얽힌 예측하지 못한 꼴라주이듯,


우연을 믿는다.

우연의 시간.

우연의 말.

우연의 장소.

우연의 음악.

우연의 향기.

우연의 사람.


우연이 이끄는 삶 속에서, 내일의 나는 어떤 '폴킴'을 마주하게 될까.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에 집착하고, 무엇에 울고 웃을까. 무엇을 다시 듣고, 무엇을 느끼고 싶어 할까.


사실,

운명이라 부르고 싶은 우연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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