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현지 Apr 16. 2020

그 여자의 기억법

이 세상에 비밀은 있다

집 근처 자주 가는 카페가 있다. 하루에 커피 세 잔쯤 거뜬히 마셔내는 카페인 중독자에게 별 대수로운 일은 아니지만, 이 곳이 특별한 이유는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하다.

야근 후 몸이 물먹은 하마처럼 무거워도 곧바로 잠이 들기는 아쉽다. 내일 아침 연달아 울리는 기상 알람에 "일 분만..."을 간절하게 외치다 보면 지금 안 자고 버티는 나를 때려눕히고 싶은 순간이 오겠지만, 현대인으로 살아가려면 꼭 해야만 하는 잔업이 남았다. 미리 변명을 하자면, 이는 인스타의 비약적인 발전 때문인데 인싸 피플에게 지나친 부지런을 강요한다는 부작용이 있다.

자고로 힙스터라면 요즘 뜨는 카페를 남보다 일찍 방문해서 업로드해주어야 동족과 결을 같이하는 명분이 생긴다. 그러니 어느 곳을 갈지 찾아내는 의식은 일종의 자기 계발 같은 것인데 나는 그동안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은 탓에, 힙스터 성지를 몇 가지 공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1. 공간
간판이 없다. 있어도 이것이 간판인지 뭔지 알아채기 힘들다. 공장을 개조해서 무심한 듯 시크하며 천고가 높던 디자인은 한물 간 스타일. 최근에는 모던한 인테리어로 단조로워 보이지만 디자인 소품으로 매우 힘을 준 곳이 많다.
공통점 : 사진 찍기 좋다.

2. 메뉴와 플레이팅
디저트가 독특하고 맛깔나 보여야 하지만 실제로 맛이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이다. 요즘은 크루아상 생지를 와플팬에 구워낸 크로플이 대세이며, 한 때 그릇에 음료, 생크림, 부순 초콜릿을 넘치게 담던 시절이 있었다.
공통점 : 사진 찍기 좋다.

3. 도저히 물음표
사람들이 가니 그냥 따라간다. 이유는 아무리 찾아봐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뿐만이 아니라 너도 모르고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기본 음료마저 엉망인 곳이 부지기수. (사실 이런 곳이 반절이다.)
공통점 : 그래도 사진 찍기 좋다.


다시 집 근처 카페로 돌아와, 앞서 언급한 공식에 대입해보자면 이곳은 힙은 커녕 힙스터 지망생이라면 절대 발도 붙이지 말아야 할 곳에 가깝다.


이 공간의 특색에 대해 논하기 전에, 메뉴와 플레이팅부터 이야기하고 싶다. 왜냐면 아무리 자주 가도 망할 부엉이 모양 커피잔은 도통 익숙해지지 않기 때문에 할 말이 많다. 동묘 시장 좌판에 삐뚤빼뚤한 손글씨로 단돈 500원! 가격표가 붙어있어도 득템이라 여기지 못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새를 극혐 하는 데다 카페에서 기본으로 제공하는 그란데 용량을 담으려니 컵은 매우 무겁고 뚱뚱하다. 한 손으로 들고 커피를 마시는 것조차 버거우니 되려 넉넉한 인심이 야속해진다.

테이블은 카페 인테리어에 가장 중요한 기본템이다. 이곳의 테이블은 투박한 나무 원목인데 빤짝거리는 니스칠이 쓸데없이 촘촘하다. 커피를 올려놓고 사진이라도 찍어보려 하면 테이블에 반사된 내 얼굴이 함께 담긴다. 대학가 근처 카페라 학생들이 치열하게 공부했던 펜자국도 군데군데 찍혀있는데, 익숙한 흔적을 되짚어보면 초딩 시절 내 책상이 이러했다. 다 쓰고 안 나오는 모나미 펜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피카츄 자국을 새겨 된통 혼났던 기억이 난다. 테이블이 이러한데, 의자, 벽지 등 다른 아이템들이 엣지 있을 리 만무하다. 아무튼, 신기할 정도로 힙과 거리가 먼 그냥저냥 카페라

이 공간이 왜 좋냐고 물으면

너무도 쉽게 답할 수 있다.

직접 원두를 볶는 로스팅 카페라 좋다. 원체 맛 같은 오리지널리티에 충실한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로스팅 과정에서 나는 에 호가 있다. 생두를 볶을 때 나는 특유의 덥고 고소한 냄새가 온 공간을 감싸는데, 이 매력은 뭐라 설명할 방도가 없을 만큼 황홀하다. 매일 콩을 볶아낸 성실함이 곳곳에 눅진한 향으로 배어 있는 데다, 주력 디저트는 와플로 주문 즉시 반죽해 기계에 구워낸다. 콩 볶는 냄새에 버터와 밀가루의 달큰한 냄새가 덧대지면 포근함과 동시에 나른함이 밀려온다. 향기료라는 명목으로 커피값 이상을 지불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 디퓨저 같은 가향으로 치장한 힙스터 성지에서는 이 냄새가 나지 않는다.

지난 기억을 되새길 땐 무엇보다 후각이 앞서는 편이다. 첫눈보다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설 때 무방비하게 덮쳐오는 비리고 찬 냄새로 겨울을 기억하고, 덥고 습한 밤 냄새가 불어오면 사랑에 빠졌던 지난여름을 떠올린다. 그런 연유로 사계절이 반복될 때마다 굳이 복기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등장하는 대상들이 존재한다. 냄새는 과거를 현재진행형으로 치환하는 힘이 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후각으로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설명할 때면 늘 무력한 인간이 된다. 시각은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보기에 같은 색이라도 느낌에 따라 파랗다, 푸르다, 푸르스름하다, 푸르댕댕하다 오만가지로 표현할 수 있고, 점, 선, 면을 결합하면 설명하지 못할 형태는 없다. 이에 비해 후각에 대한 표현은 박한 것이 사실이다. 고작해야 좋은 건 향, 구린 건 냄새 정도로 분별하거니와 비교할 수 있는 원형이 없다면 설명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새벽 등산길에 마주한 우거진 숲의 청량함과 동녘이 트기 전 쌀쌀함을 더한 냄새를 피톤치드향 정도로 퉁치면 몹시도 섭섭하다.

반면 이런 특성 덕분에, 냄새는 혼자만의 비밀스러운 기억으로 남는다는 장점이 있다. 대체 우리 엄마 냄새를 뭐라고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가을밤 베란다 냄새, 일찍 출근한 아침의 회사 냄새, 여행을 떠난 방콕 호텔의 로비 냄새도 마찬가지. 시간과 공간을 내포하는 냄새는 나만이 향유하는 비밀로 봉인된다. 혹자는 '이 세상에 비밀은 없다'라고 했으나, 아무리 설명해도 생생하게 이해시킬 방도가 없으면 봉인 해제될 수 없는 무결한 비밀로 자리하게 된다.


꼬마시절, 놀이터에서 실컷 뛰어놀다 저녁 먹을 시간이 되면 칼같이 집에 돌아가곤 했다. 아파트 단지 곳곳에 퍼지는 밥 짓는 냄새가 시계보다 정확했던 탓이다. 예민한 후각으로부터 기인하는 기억법은 이러한 유년시절의 영향일 수도 있다. 아무렴, 좋다.

매거진의 이전글 현지독립만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