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29 - 09. 03] 제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 스틸컷은 모두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홈페이지(http://siwff.or.kr/kor/default.asp)에 올라와 있는 것을 사용했습니다.
* 영화의 나열 순서는 저의 관람 순서입니다.
신은 존재한다, 그녀의 이름은 페트루냐
Got Exists, Her Name Is Petrunya
시작할 때만 해도 좋았는데 30분쯤 지나니 졸렸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표어가 이 영화를 말하는 데 적합하지 않을까? 실화 기반이라는 것이 영화에 어떤 힘을 준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야외에서 영화를 보는 건 처음이라 그것만이 의미 있는 기억으로 남았다.
자연스럽게: 알리스 기-블라쉐의 전해지지 않은 이야기
Be Natural: The Untold Story of Alice Guy-Blaché
전주에서 본 <첫 항해(Maiden)>(2018) 이후 또 만나게 된 멋진 다큐멘터리. 여성의 역사를 추적하는 일은 언제나 흥미로우면서도 분노가 따른다. “(이렇게 사라져 버린) 여성 감독들이 많았겠구나.”
세계 최초로 내러티브 영화를 연출한 알리스 기는 일생 동안 천 편 이상의 영화를 제작·연출했다고 한다. 그러나 각국의 영화 학교에서 영화의 역사를 가르칠 때, 그를 언급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나는 세계영화사 시간에 그의 이름을 듣긴 했지만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양배추 요정(The Cabage Fairy)>(1896) 한 편만 보았을 뿐이다. 그가 이렇게나 많은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을, 미국으로 건너가 솔락스 사를 설립하고 계속 활동을 이어 나갔다는 것을 몰랐다.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는 동안 발굴한 알리스 기의 필름들이 모여 알리스 기의 얼굴이 되고, 이어 그 필름 중 한 장면이 스크린을 가득 채우며 “안녕히!” 인사하는 엔딩의 순간은 대단히 벅차다. 편집은 감독인 파멜라 B. 그린이 직접 했는데, 너무 산만하다는 평도 꽤 있지만 그게 일생을 바쁘게 보낸 알리스 기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벌새
House of Hummingbird
이 영화를 보고 화가 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간혹 한국어 제목보다 영어 제목이 더 좋거나 직설적인 한국 영화들을 만나는데 <벌새>도 그런 경우다. 벌새는 새들 중 몸집이 가장 작지만, 날아다니는 힘이 강해 벌처럼 공중에 정지한 채로 꿀을 빨아 먹기 때문에 이름이 벌새라 한다. 벌새의 집.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자 애쓰는 사람들의 집. 애쓴다고 해서 안쓰럽거나 불쌍한 것이 아니라, 벌새의 날갯짓만큼이나 강한 사람들. 상영이 끝났을 때 옆자리의 관객들이 에드워드 양 느낌이 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고 일정 부분 동의한다. 박지후의 표정들은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다.
아무것 또는 모든 것
Nothing or Everything
감독에게 “모든 것”인 영화가 나에게 “아무것”이 되는 경험을 꽤 자주 한다. 실험영화를 잘 알지 못하지만 이런 것을 실험영화라 분류한다면, 그건 대체 어떤 종류의 실험인가 궁금하다. 도전적인 구석도 없고 새로운 구석도 없으며 오히려 전형적이다. 그저 모자란 서사 영화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비어 있는 부분은 GV 모더레이터의 말대로 배우들의 얼굴이 채운다. 그러니 이 영화에서 남는 것은 이유영과 권소현의 얼굴일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을 수밖에. 나는 솔직히 이런 영화들은 모아서 태워 버렸으면 좋겠다. 필름이 아니니 태울 수 없지만.
델핀과 캐롤
Delphine & Carole
전주에서 보다 졸아서 이번에 다시 예매했다. 프랑스 영화 거장들이 닳도록 추억(그리고 추앙)하는 68 혁명 이후, 델핀과 캐롤이 주도한 일종의 대안 매체로서의 비디오 무브먼트. 촬영에 대해 캐롤과 마찰을 빚었을 때 델핀이 했다는 말이 인상 깊다. “카메라가 이리저리 움직이면 메시지에 집중하기 어려울 것 같아. 사람들이 이 여성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으면 해.” 좋은 배우는 연기를 잘하는 것뿐 아니라 영상이 관객에게 주는 영향을, 영화(각본)의 흐름을 이해한다. 내가 델핀 세리그의 영화도, 캐롤 루소폴로의 영화도 본 것 없이 <델핀과 캐롤>을 본 것은 아쉽지만 델핀 세리그는 분명 좋은 배우일 것이라 확신한다.
리:플레이
Re:play
기억을 다시 마주하는 것은 고통스럽다. 그러나 필요한 일이다. 이 말을 쓰다 보니 문득 <몬스터 콜(A Monster Calls)>(2016)이 생각난다. 그쪽은 마주하는 것이 기억이 아니지만. 기억을 재현하는 연극을 촬영하고 그것을 지켜보는 당사자를 또 촬영한다는 작업 방식이 흥미로웠다.
누구는 알고 누구는 모르는
Dots
할머니의 한글 공부에서 시작해 그것을 ‘기릉지’로 연결하는 것이 감탄스럽다. 올해 최고의 단편 다큐멘터리다. 출연하는 할머니들은 지금 같은 곳에 살지만 모두 출신지는 다른데, 어떻게 같은 유행을 공유했을까? 그 시대에는 인터넷도 없었을 텐데. 학교에 들어오기 전에는 다큐멘터리를 많이 보지 않았고, 다큐멘터리는 객관적인 장르라고 생각했다. 정보를 제공하는, 다소간 지루한. 최근에 이런저런 영화제에서 다큐멘터리들을 조금씩 보며 느낀다. 다큐멘터리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장르(라기보다는 작업 방식)라는 걸. 그래서 다큐멘터리를 보는 일은 즐겁다. 타인의 세계에 초대받는 기쁨이 있다.
밤 사이
Between Us
<조찬 클럽(The Breakfast Club)>(1985)을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다. 하지만 그만큼의 뭔가가 없다. 이런 영화들이 늘 그렇듯 배우는 좋다.
대리시험
Proxy Exam
<파테르(Parterre)>(2019)의 또 다른 버전 아닌가? 오성은 견디고 현주는 타협한다. 두 영화의 주제에 공감한다. 그러나 두 영화에는 공감하지 못한다.
열두 살의 여름
The Summer of 12
촬영이 환상적으로 좋다. “대사보다는 영상으로 말하고자 했다”는 감독님의 의도가 잘 와 닿는다. 등장한 만화를 찾아서 보고 싶었는데 영화를 위해 구성한 허구의 작품이라고 해서 아쉬웠다. 최근에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하는 아스거 욘의 전시를 보면서 영화는 텍스트일까, 이미지일까를 고민한 적이 있는데 물론 영화는 둘 다이다. 그런데 영화의 신비는 주로 텍스트보다 이미지로 먼저 읽히는 영화들에 있다. 그런 영화들이 불러 일으키는 이런 감정은 어떻게 가능한 걸까? 두 주인공의 키스를 물결로 묘사한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왜 수영을 소재로 선택했냐는 질문에 “수영장은 몸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공간”이라고 대답하신 것도 좋았다.
주근깨
Freckles
아시아단편경쟁1 섹션의 영화들은 일부러 그렇게 묶은 건지는 몰라도 배경이 모두 여름이었다. 우리가 보통 상상하는 여름의 빛을 가장 잘 담은 게 <열두 살의 여름>과 <주근깨>다. 주희가 미움을 많이 받는다는 감독님의 말에 놀랐다. 나는 영신이도 주희도 너무 좋았는데. 가장 좋아하는 것은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영신이의 얼굴에 생긴 주근깨를 가리키며 주희가 “예쁜 자리에 생겼어. 예쁘다” 하는 장면. 단편 영화를 볼 때면 항상 배우의 이름을 하나씩 마음에 담아 온다. 정수빈.
링링
LingLing
순하게 지나가라고 여성의 이름을 붙이지만 “순순히 지나가겠냐?” 싶은 태풍에 욕정하다가 그만 그 태풍에 죽고 만 남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딸의 이야기다. 그 남자를 비웃으라고 만든 영화인가, 블랙 코미디 같은 건가 싶으면서도 그 딸이 눈물을 흘리니 비웃기가 좀 미안하다. 뭐 어쩌자는 영화인지 모르겠지만 색보정이 잘됐다고 생각한다. 오프닝 시퀀스가 특히. 그 외에는 역시 또, 이런 영화가 늘 그렇듯이 배우가 좋다. 김주아.
여름밤의 소리
Summer Sounds
제작 지원 받은 건 어디다 쓴 걸까? 화면이 너무 좋지 않다. 야간 장면이 특히 노이즈가 심하다. 어쩐지 일본 영화 같은 느낌이 나지만 딱히 뭐가 없다. GV에서 감독님이 자신만 남성 주연의 영화인 것이 민망하다는 식으로, 그런데 그냥 인간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을 하셔서 더 별로다.
누수
Leakage
고루하긴 하나 일반적으로 대지는 생명의 상징이고 석유는 그곳에서 솟구치는 이미지다. 그러나 이 영화의 대지는 황량하고 어쩌면 공포스러운 형상으로 비춰지고, 석유는 푸지예의 몸으로부터 “누수”되어 흘러 내린다. GV에서 누군가 주인공이 너무 수동적인 것 아니냐는 질문을 했는데, 감독님께서 적극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 있으나 외부의 상황으로부터 어떤 것이 ‘밀려 나옴’ 또한 저항이라는 요지의 코멘트를 해 주셨고 그게 좋았다. 8월에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들었던 두 개의 강의, <초-능력>과 <비인간여자>도 생각났다. 여성의 능력은 통제되지 않는 상태에 있다. 그를 둘러싼 것들이 ―굳이 이데올로기가 아니더라도― 그에게 그런 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에밀리 디킨슨의 밤
Wild Nights with Emily
영화를 보기 전에는 에밀리 디킨슨의 시를 읽어 본 경험이 없다. 타국의 언어로 된 시는 내 마음에 와 닿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영화에 인용된 에밀리의 시들은 모두 좋았다. 특히 I DIED for beauty로 시작하는 시가. “나한텐 그런 거(가터벨트) 안 만들어 줬으면서” 말하는 수잔이 너무나 유치하고 귀여워서, 영화의 마지막, 그의 이름이 에밀리의 편지들에서 지워졌다가 기술로 복원되었음을 알리는 글자들을 보며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저항하는 파라다이스
Resisting Paradise
최소한 1/3쯤은 잔 것 같다. 어디 가서 봤다고 말하기도 민망하다. 그래도 말해 보자면…… 카시스의 풍경에 물감을 덧칠하며 전쟁 중에도 그 물감을 포기하지 않은 두 화가, 앙리 마티스와 피에르 보나르의 서신 보이스 오버를 입히는 작업 방식이 흥미로웠다. (물론 영화가 맞지만) 영화보다는 어쩐지 비디오 워크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게 좋았다.
로맨틱 머신
Romantic Machine
아시아단편경쟁3 섹션 중 단연 최고다. 이 영화가 처음으로 상영되는 바람에 GV를 기다리느라 뒤의 세 영화를 좀 덜 재미있게 본 게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밤바다 위에서 회전하는 등대의 빛을 보고 있자면 내가 그것을 지켜보며 앉아 있는 캄캄한 영화관의 영사기가 떠오른다. 등대는 어둠 속에서도 배가 길을 잃지 않도록 길을 보여 주고 영사기는 관객석의 사람들을 스크린으로 이끈다. 자연과 기계를 매개하는 것을 생각하며 제목을 <로맨틱 머신>이라 지었다는 감독님의 코멘트가 좋았다.
그리고 야간 촬영은 어렵지만, 장비가 좋으면 모두 해결된다. 정말 맞는 말이다. 돈이 최고다.
캐쉬
CA$H
마트를 점령한 캐셔들은 보상금을 준다는 본사 직원의 말에 흔들리지만, 다른 직원들이 일한 것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오래 마트에서 일한 큰언니는 알고 있다. 보상금을 받고 마트에서 나가면 자신들에게 더 이상 설 자리가 없다는 걸.
컷 아웃
Cut-out
GV 중 남성 관객 한 명이 학교에서 만난 여학생의 얼굴을 손이 모두 덮어 버리는 것은 무슨 의미냐고 물었다. 감독님은 곤란해하면서도 친절히 대답해 주셨지만 나라면 ‘당신이 그 장면을 이해 못 하는 것이 이 영화의 존재 이유’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세상을 가득 채운 여성의 목소리. 그러나 정작 살아 있는 여성의 목소리는, “컷 아웃”되어 사라진다.
해미를 찾아서
Finding Haemi
더할 것도 없고 덜 것도 없는 모범적인 영화. 탄원서 수집을 주도하는 선배 캐릭터와 그를 연기한 배우가 좋았는데, 배역 이름도, 배우의 이름도 잊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