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 가구를 위한 쉬운 동치미 만들기와 동치미 활용 팁
2021년 가을 무렵, 코로나가 한창이던 시절 나는 간단한 시술을 받았다.
금방 지혈이 되고 바로 일상생활이 가능하다는 말에
오전에 병원에 들렀다가 집으로 돌아가 줌 수업을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지혈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마룻바닥에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살면서 그렇게 많은 피를 본 건 처음이었다. 밤 11시가 되어도 피가 멈추지 않았다.
현기증이 나는 것 같았는데, 처음엔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났지만, 피를 계속 보니
이내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설 구급차를 불러야 할지, 119에 전화를 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119에 전화를 거는 자체가 쉽지 않았다. 의식도 있고 크게 아픈 것도 아니라 내가 구급차를 차지하면,
나보다 더 위급한 누군가가 피해를 볼까 봐 걱정이 되었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멀쩡하다는 거 아닌가? 이게 응급 상황이 맞는 건가?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 현기증이 조금 심해졌다.
결국 119를 불렀는데, 구조대원분이 계속 나오는 피의 양을 보고 놀라시는 걸 보고 나서야 안도했다.
아, 나 좀 다급한 상황이었구나, 싶었다. 보호자는 없냐는 말에 혼자 산다고 답했다.
응급실에 가서 지혈을 받고 다른 검사를 받는 동안에도 응급실 의사 분이 보호자는 없냐는 질문을 던졌다.
'혼자 살아요. 혼자서 산 지 오래되었는데 별로 아팠던 적이 없어서 저도 이 상황이 당황스러워요.'
그렇게 말하고 싶었는데 그냥 웃고 말았다.
“가족은 멀리 사세요?”
“남동생은 좀 멀리 살고, 부모님은 지방에 볼 일이 있어서 지금 이쪽에 안 계세요.”
“서럽겠다.”
의사 분이 답했다.
“괜찮아요.”
내가 답했다.
이상하게 눈물이 갑자기 왈칵 쏟아졌다. 여러 생각이 몰려왔기 때문이다.
우선, 미묘한 수치심.
이 시간에 나와 동행해 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불러오는 미묘한 수치심.
당시에 애인이 있긴 했다. 그러나 비행기로 10시간도 더 가야 하는 곳에 있었던 그는,
코로나로 국경을 닫은 나라에서 살기에 가족의 경조사나 중차대한 비즈니스가 아니고서야
한국에 올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 미묘한 수치심은 내가 혼자인 순간에는 언제나 존재했다.
아무리 1인 가구가 늘었다고 뉴스에서 떠들어도
한국 사회에선 어쩐지 항상 가족이 있어야 하고, 파트너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여전히 만연한 것 같다.
두 번째로는 미묘한 수치심이 불러오는 서러움.
"혼자"라는 게 끊임없이 자각되는 사회에서 혼자인 사람들이 흔히 느낄 수 있는 감정이기도 하지만,
그날 같은 상황에는 정말 누군가 나를 돌봐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리고 그럴 누군가가 당장 내 옆에 없다는 게 서러웠다.
세 번째로는 밀려오는 삶의 연약함.
아프다는 사실은 나의 유한성을 일깨워준다.
우울할 땐 죽고 싶다고 몇 백 번을 되뇌다가도
죽을 수도 있겠구나, 끝날 수도 있겠구나,라는 게 병이나 신체의 증상으로 느껴질 땐
새삼 나의 연약함, 삶의 유한함이 크게 다가온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나는 아직 살고 싶구나, 아프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게 살아있고 싶구나.'
그 밖에 새벽 응급실을 지키는 의료 종사자들의 표정이나, 사람들의 비명, 병원 특유의 분위기 등
마음을 복잡하게 하는 요소가 많은 밤이었지만 너무 지쳐서 어느 순간 생각을 이어나가기도 어려워졌다.
피는 결국 멈췄고 검사 결과 몸에 문제가 없다 해서
지혈 문제로 결론이 났다. 병원을 나설 때쯤 핸드폰을 보니 새벽 3시였다. 정산을 해야 했다.
삼십만 원이 넘는 돈이 나왔다.
'그래도 안 죽었으니까 그게 어디야. 그래도 돈 없으면 아프기도 어렵겠다.'
결제를 하고 병원을 나오니 공기가 좀 찼다.
밤이 깊어서인지 오가는 사람이 없었다.
주변이 고요해서 세상에 나 혼자 있는 것 같았다.
택시는 금방 잡혔다.
택시 아저씨가 이 시간에 병원에서 왜 나오냐고 물었다.
“응급실에 다녀왔어요.”
“아휴, 혼자? 고생했네 고생했어. 가족은?”
“지금 지방에 있어서 연락은 안 했어요.”
“그랬구나. 내가 아가씨 태우려고 여기 지나가고 있었나 보네요.”
또 눈물이 찔끔 났다. 몸이 약해지면 마음도 약해진다. 마음이 약해져도 몸이 약해지지만.
어쨌든 나는 꽤 오랜 기간 동안 혼자 살고 있다.
가끔 외로울 때가 있지만, 그래도 그 편이 나와 잘 맞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날은 좀 달랐다.
가족을 꼭 꾸려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영원히 혼자 살 순 없을 것 같았다.
혼자 살면 자유가 많아지지만 분명히 불편한 것들도 있다. 갑자기 아플 때 두려워진다.
힘든 하루를 일터에서 보냈을 때, 텅 빈 집에 들어서면 빈 공간이 그대로 마음으로 들어와 자리 잡고,
그대로 공허감이 되어버린다.
또 하나 아쉬운 점은, 맛있는 것을 해도 친구를 부르지 않는 이상 혼자 먹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찬을 하나 만들면 다 먹을 때까지 다른 요리를 하기 힘들다.
그래서 선뜻 사기 어려운 재료들, 해 먹는 게 힘든 메뉴들이 좀 있다.
부추 한 단, 쪽파 한 단을 사려면 용기가 약간 필요하다.
일주일 꼬박꼬박 써도 남아서 끝내 상해버리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서 김치를 만들 엄두가 안 났다. 엄마의 비건 김치가 워낙 맛있기도 했지만,
쪽파를 사고, 무를 사고, 또 그걸 언제 다 쓰나 싶어서 나중으로 미루기만 했다.
문득 마음이 바뀌었다. 미래에 타인과 부대끼며 살든 안 살든, 지금은 혼자 사니까,
이 삶에 충실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김치 만드는 것도 미루기만 하면 대체 언제 해보겠어?'
그래서 용감하게 150g어치 쪽파를 마트에서 집어 들었다. 다행히 무는 요즘 조각으로도 많이 팔아서 그걸 샀다. 엄마 말로는 초록색으로 물든 부분이 달고 맛있다고 해서 하얀 조각 사이에서 초록색으로 물든 조각을 찾았다. 언젠가 무도 조각 대신 한 통을 다 사는 용기가 생기길 바라며, 나머지 재료들을 사서 집에 돌아왔다.
남은 쪽파는 마음만 먹으면 금방 해치울 수 있다.
파스타도 해 먹을 수 있고, 양배추와 부침가루, 버섯을 넣고 부치는
간단한 비건 오코노미야끼에 고명으로 잔뜩 올려도 맛있다.
모든 요리의 고명과 부재료로 쓰면 쪽파 150g 정도는 일주일 안에 다 쓸 수 있다.
마음먹은 대로 되는 일이 드문 세상에서 쪽파 쓰는 건 그래도 마음먹기에 달렸다!
막상 만들어보니 어려울 건 없었다. 거기다가 운이 좋았는지, 발효가 굉장히 잘 되었고,
발효될 때 난다는 소리도 몇 번이나 들었다. 귀여운 소리였다.
아는 사람만 안다는 그 소리를 들었다는 게 괜히 뿌듯해서,
마침내 진정한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그리고 완성된 동치미는 두 번에 나눠 메밀면을 삶아 국수를 해 먹었다.
여전히 이 맛있는 걸 나 홀로 먹는 게 조금 아쉽긴 하지만,
혼자 살든 앞으로 누군가와 같이 살게 되든 나는 이제 동치미는 뚝딱 만드는 사람이다.
어떤 형태의 삶을 살든, 세상이 어떤 삶의 형태를 강요하든, 어쨌든 간에 내 몫을 해야 나로 잘 살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만족된 미각과 약간은 외로운 마음을 품고 국수 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웠다.
1인 가구 동치미 레시피
<재료>
무 1/4 통
배 1/4
쪽파 4 줄기
홍고추 1
생강 1 조각 (마늘 반 개 크기)
마늘 3 알
굵은 소금1큰술 반
설탕 1큰술
매실액 1작은술
삭힌 고추(생략 가능)
물 350ml
*소금과 설탕의 양은 맛을 보고 취향에 따라 가감하면 된다.
<레시피>
1. 무를 잘 손질한 뒤 설탕 1큰술, 굵은 소금 반 큰술 넣고 무를 절인다.
2. 30분 이상 두면 물이 생기는데, 그 물도 버리지 말고 잘 둔다.
3. 소금과 준비한 물, 쪽파를 제외한 다른 재료를 넣고 국물을 만든다.
4. 만들어진 국물 안에 무와 무를 절이며 나온 물을 섞고 밀폐 용기에 넣은 뒤 맨 위에 쪽파를 올린다.
5. 하루 정도 실온에 두고 익힌 뒤 냉장고에 넣어서 보관한다.
*최소한 이틀은 익힌 뒤 먹어야 맛있다.
*다 익은 동치미는 전이랑 먹어도, 반찬으로도 먹어도 좋고, 나처럼 국수로 먹어도 좋다.
*국수로 먹을 땐 연겨자나 와사비를 곁들이는 걸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