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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san May 22. 2023

화도 제철 완두도 갈아버립니다.

제철 채소 비건 레시피- 완두 퓌레

주황빛 도는 퓌레는 토마토 바질 퓌레. 이번 요리의 메인은 아니니까 나중에 기회가 되면 레시피를 공유하겠다.

세련되게, 완벽한 타이밍에 화를 내거나 불만을 말할 수 있는 능력이 내게는 없다. 늘 화와 불만을 참고 누르다가 엉뚱한 순간에 그것들이 새어 나오고 이후에 나는 이불을 걷어차거나,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총알처럼 빠르게 날아오는 상대의 화나 불만을 향해, 12년 주입식 교육의 모범을 보이듯, 반복해서 미안해, 내가 잘못했네, 를 역시 총알처럼 빠르게 말하고, 어서 상황이 끝나길 바란다. 문제는 상황이 언뜻 마무리된 듯해도 화는 내 안에 고스란히 남고, 나는 나중에서야 이상한 방식으로 억눌린 마음을 표출한다. 그땐 돌이킬 수 없다. 이미 끝난 이야기잖아. 결국 그런 말을 듣는다.


학교에서 안 가르쳐준 것이 대표적으로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적절히 화내는 법, 두 번째로는 제대로 된 금융 지식. 효율성이 극도로 중시되는 사회에서 이게 제대로 교육되지 않으니 오작동하는 개인들이 꽤 생겨나는 것 같다. 매 순간 모든 것에 효율적이기도 힘든데 화까지 계산해 가며 내야 하는 게 둔한 인간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살아가기 위해선 효율적이지 못한 내 화를 약간은 다스릴 필요가 있다. 내가 찾은 방법은 갈아버리는 것이다. 덩어리든 응어리든, 뭉쳐 있는 것을 작은 입자들로 이뤄진 부드러운 무언가로 바꾸는 것이다.



재료를 다 섞고 갈아버릴 땐 설명하기 힘든 짜릿한 느낌이 든다. 아주 익숙한 조합이 아니면 어떤 맛이 나올지 예상하기 힘들어서 더 스릴이 느껴진다. 나는 이 짜릿한 행위에 내 화를 더해버린다. 이게 옳은 방법인지는 모르겠지만 얼마간 더 버티는데 도움이 되기는 한다. 마음의 응어리도 어느 정도 갈리는 것 같다. 거기다가 결과물의 맛이 좋으면 화나는 일을 잠깐이나마 잊어버릴 수가 있기도 하니, 믹서기를 씻는 게 귀찮아도 나는 점점 무언가를 갈아버리는 일을 더 자주 하게 된다.



퓌레와 페스토와 수프는 비슷해도 조금씩 다른 음식이다. 그러나 아마추어 요리의 장점은 약간의 배합만 바꾸어 이 모든 걸 만들 수 있다는 데 있으니 어떤 재료가 들어가는지 알아두면 여러모로 응용할 수 있다. 어쨌든 이번에 만든 건 제철 완두를 넣은 퓌레니까 퓌레 레시피를 공유해 본다.


잘 찐 햇감자 1, 오븐에 올리브유를 칠해 구운 양파 1/4와 마늘 한 개, 소금 약간, 물 5큰술, 4분간 팔팔 끓는 물에 찐 완두 1/2컵, 잘 익힌 브로콜리 작은 2조각을 준비한 뒤 전부 다 식으면 갈면 끝이다. 감자나 물, 간의 양을 조절해 수프로 먹어도 좋다.


나는 국내산 아스파라거스 두 줄기를 올리브유, 레몬즙, 소금 살짝과 함께 구워 곁들였다. 애피타이저로도 좋을 것 같고, 와인 안주로도 잘 어울릴만한 요리가 금세 완성되었다.


크루통을 올려도 좋지만, 오늘은 냉동실에 있던 팔라펠을 데운 뒤 곁들였다. 가니쉬로 올린 고수는 부모님이 밭에서 기른 뒤 나눠주셨다.


 팔라펠을 대충 쪼개서 더했다.


화를 세련되고 효율적으로, 좋은 타이밍에 내는 방법은 정말 모르겠다. 어떤 날에는 오래된 친구가 한참 날카로운 말을 던지는데, 나는 알았다고 미안하다고만 말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하루가 지나니 이런저런 불만이 올라왔다. 그래서 다음 날도 무언가를 익히고 갈았던 기억이 난다. 익히고 간 것을 잔뜩 먹고 나니 마음이 살짝 가라앉았다. 갈면 가라앉기도 한다.


다시 말하지만 섞고 갈아버리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다. 우리 모두 자신에게 맞는 해결책을 찾아 나서야 하지만, 살아있는 한, 아무리 화도 제때 내지 못 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맛있는 제철 완두 요리 정도는 먹을 자격이 있으니까. 집에 믹서나 블렌더, 도깨비방망이가 있다면 꺼내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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