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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솔 Dec 16. 2023

쓸 수 없지만 마음은 전달할 수 있어

#4. 사랑을 나누는 편지 놀이

어느덧 2023년도가 끝나가고 있다. 남은 이벤트로는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주러 굳이 굴뚝으로 내려오시는 ‘크리스마스’밖에 남지 않았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아이들과 함께 올 한 해 감사했던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편지 놀이를 시작했다. 편지지라고 해봤자 하트모양으로 대강 오린 분홍색종이였지만, 예쁜 우체통까지 만들고 나니 제법 우체국 분위기가 나는 듯했다.   

  

#편지는 뭘까?

사실은 선생님이 하고 싶어서 시작한 편지놀이, 충격적 이게도 아이들은 ‘편지’라는 것을 잘 알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직 4살에 불과한 우리 반 아이들은 글자를 쓰거나 읽기조차 어려웠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받아온 경험 또한 많이 없었을 것이다. 어떻게 설명해야 ‘편지’의 의미를 잘 알려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편지라는 것은 누군가에게 나의 마음을 글이나 그림으로 보여주는 거야”라는 아주 정석적인 설명만을 했다.

하트모양 편지지와 색연필을 아이들 앞에 놓아주며 “자 이제 편지를 써보자” 하자 아이들은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연준이는 평소에는 관심도 없었던 낙타를 그리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 아닌가? 잠시 고민에 잠겼다가 다시 설명하기를 시도했다.

“편지라는 것은 받는 사람을 생각해야 해.

엄마, 아빠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라던가 아니면 주고 싶은 선물이 없니?”

선생님의 다급한 말에도 아이들의 표정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 그들은 자신이 하고 있었던 그 행위를 그저 묵묵히 해나갈 뿐이었다. 조금 시간이 흐른 후 귀염둥이 하린이가 나에게 자신이 열심히 쓴 편지를 주며 “엄마, 아빠 사랑해요 하트 써줘”라고 말했다. 나는 네임펜으로 그림 위에 큼지막하게 하린이가 말해준 문장을 적어주었다. 그날 나는 아이들이 자신의 마음을 열심히 표현한 편지를 가정으로 보내며 엄마, 아빠에게 한 가지 숙제를 내주었다.      


*오늘 가정으로 편지지 한 장씩 보내드립니다. 사랑을 받고 사랑을 나누어줄 수 있는 어린이로 성장할 수 있도록 가정으로 보내드린 편지지에 **이를 향한 부모님의 마음을 담아서 꼭 보내주세요. 편지가 모두 수합되면 아이들과 함께 모여 편지를 읽어보며 부모님들의 사랑을 느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읽을 수는 없어도 느낄 수 없어

다음날 설레는 마음으로 등원한 아이들의 가방을 살펴보았다. 어제 가정으로 보내주었던 모든 편지지에는 부모님들이 정성스럽게 적어준 사랑의 글들이 적혀있었고 ‘휴우’하는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모든 아이들이 등원하고 우리는 잠시 편지 읽기의 시간을 가졌다. 편지지를 꺼내어 들자 아이들의 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고 이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부모님의 편지를 읽어주었다. 편지의 내용을 듣는 아이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부모님들의 편지를 읽어보며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편지를 적었을까 잠시 그려보았다. ‘아무런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큰 축복이다’ 속으로 생각하며 감동적인 편지 낭독 시간을 마무리하였다.      

부모님들이 보내주신 편지는 벽면에 붙여두었는데 아이들은 놀이를 하다가도 편지들을 살펴보곤 했다. 우리 반에서 가장 성격이 좋은 연준이가 편지에 있는 자신의 이름 글자를 가리키더니 “선생님 여기에 ‘사랑해’라고 적혀있죠?”라고 말했다. 잠시 고민 끝에 “그리게 연준이를 사랑한다고 적혀있네”라고 대답하자 연준이의 얼굴에 활짝 미소가 지어졌다. 편지에 많은 글자들이 쓰여 있지만 사실 그 편지는 ‘사랑해’라는 한 문장으로 축약할 수 있었기에 글자를 잘 읽지 못하는 작은 약점은 편지를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되지 않았다. 읽을 순 없어도 마음을 느낄 수 있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 사랑을 받았으면 나눠야지

부모님의 편지로 온전한 사랑을 느낀 아이들, 받은 사랑을 어떻게 나누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항상 마주치는 어린이집 선생님들, 산책을 하면 밝게 인사해 주는 동네 어른분들 등 1년간 우리의 생활반경에 있었던 크고 작은 감사함을 느끼게 해 주셨던 분들이 떠올랐다. 아이들에게 편지를 주고 싶은 사람을 물어본 후 직접 선택하여 드릴 수 있도록 하였다. 사실 편지를 쓰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편지에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림으로 그렸다. 그럼에도 다행히 편지를 받은 어른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끼적임이 있는 분홍색 하트 종이를 받고는 “우와 너무 고마워”라며 좋아하는 티를 충분히 내주었고 아이들은 어른들의 반응을 보며 덩달아 즐거워했다. 하루동안 열심히 편지를 쓰고 배달하기 과정을 끝내자 아이들의 표정은 뿌듯함으로 가득했다.          


#편지 놀이를 마무리하며

어릴 적 친구, 지인들과 편지를 종종 나누며 서로에 대한 마음을 확인하곤 했다. 학창 시절엔 ‘우정편지’가 유행이어서 가장 친한 친구와 비밀스럽게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적은 둘만의 노트를 만들어 주고받기도 했는데 그래 봤자 같은 반 또래 이야기나 좋아하는 남자애 이야기가 대다수였지만 어쨌든 글로 생각과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 생소하지 않은 시대에서 살았다.

 

점차 시간이 흐르고 나이가 들면서 특별한 기념일이 아니면 누군가에게 편지로 마음을 전달하지 않게 되었다. 그래도 가끔 주고받았던 편지를 들여다보며 그때의 추억과 감정을 느껴보곤 한다. 그립고 아련했다.

이번 편지 놀이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마음을 전달하는 행위의 즐거움을 알게 해주고 싶었다. 아이들이 가족에게서, 선생님에게서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자신을 귀한 존재로 여기길 바랐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아이들보다 교사인 내가 더욱 감명을 받았던 것 같다. 특히나 아이들이 그들의 부모에게서 받은 편지를 찬찬히 읽어보며 부모의 사랑은 너무나 숭고스럽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아이를 기르는 과정은 정말로 쉽지 않음을 교사일을 하며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그럼에도 부모들은 아이를 정말 보물처럼 바라본다. 아이의 신음 한 번에 세상이 무너질 듯한 속상함을 느끼다가도 해맑은 웃음에 세상을 다 가진듯한 기쁨을 느끼곤 한다.


나중에 사랑하는 동반자를 만나서 아이를 갖게 된다면 나의 부모가 나를 사랑했던 것과 같이, 나의 학부모가 아이를 사랑하는 것과 같이 자식을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깊은 고민을 남기며 아름다웠던  편지놀이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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