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는 톨스토이 단편집에 있는 대표 단편선이다.
이 소설을 초등학생 때 읽었던 것 같다.
우리 집 책장 어딘가에 책이 꽂혀있을 것인데, 어린 시절 이후 찾아 꺼내어 읽은 적은 없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정답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정답이 너무 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3년 전부터 알고 지냈던 한 동생이 있었다.
entp인 그녀는 20대 중반이었고 호기심이 가득해 나이대에 비해 잡학다식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경험담을 이야기하기를 좋아하고 감정이 풍부해 그녀와 이야기하면 항상 흥미로웠다.
사람은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무의식적으로 매력을 느끼는지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너무 대범한 것이 아닐까 하면서도 그런 거침없는 모습에 사뭇 질투를 느끼기도 하였다.
작년 여름, 그녀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몸이 아프니
연락을 자제해 달라는 문장이 눈에 띄었다.
얼마나 아프길래 연락도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일까 하는 의문과 심각한 아픔일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녀에게 연락을 하지는 못했지만 올라오는 스토리와 게시글에는 관심을 갖고 보았다.
몇 달 동안 여전히 병원에 있는 듯했다.
시간이 지나 그녀는 자신이 암에 걸렸음을 공개했고
어쩌면 나는 이미 눈치채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주변에서 20대 중반에 암에 걸린 사람은 부재했다.
건너 건너 이렇더라 하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모두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3달 전까지만 해도 생기발랄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지난여름과 가을을 지나면서 sns에 올라오는 그녀의 소식에는 점점 희망이 생겼다.
이제는 얼굴 생기가 생겼다는 이야기, 단발은 처음이지만 나름 맘에 든다는 이야기 등등
유독 기억에 남는 스토리가 있다. 자신을 하루 종일 돌봐주는 엄마의 모습을 찍어 올린 그녀는 엄마에게 감사를 표현하면서 아프니 ‘인간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렇게 희망이 조금씩 생기던 가을을 지나 겨울이 오니 다시 상황이 안 좋아지는 듯했다.
매서웠던 날씨 때문인 걸까?
그녀는 결국 2025년이 온 며칠이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부고 소식을 듣고 장례식장으로 향하던 지하철 안, 장례식장의 분위기는 여전히 생생하다.
젊은 청춘의 장례식은 그런 분위기구나.
그녀의 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장례식장에 와줘서 고맙다고 했지만 꺼낼 수 있는 말이 하나도 없었다.
장례식장을 나온 후 집을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모든 sns에서 팔로우되어있는 그녀와 친구 사이를 끊었다. 이제는 올라올 리 없는 그녀의 소식을 보는 것이 두려웠다.
이상하게도 요즘 들어 그녀의 생각을 자주 한다.
일상에서 가득했던 사소한 짜증과 불안이 그녀를 생각하면 결국에는 이기심에서 비롯한 것임을 깨닫는다.
하루를 시작하며 내 마음을 그토록 무겁게 만들었던 질문을 떠올린다.
나는 무슨 자격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