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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옥 Sep 27. 2022

그럼에도 두 번 볼 일은 없을 이유

넷플릭스 <수리남> 후기 (2)

*1편에서 이어집니다. 스포일러 주의.


배우, 역할을 입거나 혹은 묻거나

출처: 한국일보

스토리의 중심은 강인구였지만, 전요환의 심복 겸 국정원 요원을 연기한 조우진 배우의 연기가 개인적으로는 MVP감이었다. 지금까지 등장한 많은 작품들에서 감초같은 조연 역할을 맡아왔지만 <수리남>에서는 단순한 감초나 조연을 넘어 준-주연 수준의 존재감을 보여주었다. 극 후반부에 그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스토리 흐름상 눈에 띄도록 연출한 것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전요환의 똘마니 수장 정도로만 비춰지던 전반부부터 인상이 강렬해서 ‘내가 알던 그 배우라고?’ 라는 놀라움으로 지켜보았다. 목소리 톤도 확 깔고, 조선족 어투에서 표준어 왔다갔다하는 것도 그렇고, 액션씬 소화하는 것도 그렇고. 옆에서 한 마디씩 던지는 감초 특유의 코믹한 느낌 쫙 빼면 이 배우는 이런 느낌이구나, 라는 걸 느꼈다. 맡는 역할마다 자신의 색으로 찰떡같이 소화하는 모습이 대단하다.


출처: 디스패치

이에 비하면 사실 하정우나 황정민은 어디선가 봤던, 전에 맡았던 캐릭터를 살짝 변주해서 반복하는 느낌이었다. 하정우는 국정원이나 전요환을 상대로 뜻대로 볼멘소리를 늘어놓을 때 영화 <아가씨>에서 보여준 건들거리는 사기꾼의 스멜이 약하게 났다. (거기에 더해 실제 하정우 배우가 해킹범이랑 나눴다는 카톡도 생각났다. 잃을게 많은 상황에서도 위트와 당당함을 잃지 않고 위기를 넘기는 자세가 강인구를 닮았다.) 황정민은 조직 생활을 너무 오래해서 기존의 시끄러움과 능청스러움이 빠지는 대신 좀 더 보스 느낌과, 겉과 속을 잘 구분해서 숨기는 노련함을 더한 <신세계> 정청을 보는 느낌이었다. 다루는 아이템(?)은 달라도 조폭, 건달, 폭력배 등 어둠의 조직 역할인건 같으니 캐릭터가 어쩔 수 없이 겹쳐서 그렇겠지.


유연석이 맡은 고문 변호사 역할은 좀 아쉽게 느껴졌다. 뭔가 배경 설정이 좀 더 탄탄했으면 좋았겠다는 마음. 일단 영어 발음이 너무 한국스러워서 몰입이 잘 안되었다. 콜롬비아 출신 이민자 2세라는 설정이니까 영어를 미국인처럼 구사할 필요는 없어도, 그럼 최소한 중남미 악센트를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가장 헉스러웠던 건 전요환에게 변절자로 지목받아서 머리에 총을 맞았을 때. 분명 총알이 이마를 뚫고 지나갔는데 어떻게 살짝 웃고 쓰러져서 몇 발 더 맞을 때까지 정신을 차리고 있을 수 있지? 즉사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건 내가 제대로 못 봐서 그런건가..


꼭 여자가 등장할 필요는 없지, 근데 보는 여자 입장에서는 재미없다

출처: 티브이데일리

그리고 쓸데없는 로맨스가 없어서 좋았다는 평을 봤는데, 여자 캐릭터가 사실상 등장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드라마에서 뭘 바라겠는가. (그렇다고 여자가 ‘오직’ 로맨스만을 위해서라도 등장해서 소모되어야 한다거나, 남자들만 나오는 드라마에서 로맨스를 기대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전자는 여전히 후졌고, 후자를 기대할 정도로 우리나라 드라마 시장이 성숙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뿐.) <수리남>은 PC를 위해 어설프게 여자 캐릭터를 등장시키느니 차라리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남자들로만 판을 깔자는 전략을 취한 것 같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여자는 강인구의 와이프(=집에서 충실히 애들 보고 남편 갈굼), 국정원 요원1(=존재감 없음), 전요환이 과시용 및 접대용으로 몰고 다니는 미녀 군단(=마약왕은 돈이 많다는 거 보여주기)이 전부다.


세상 모든 작품의 주연이 여자로만 채워져야 한다던가, 남자들이 주연이 되는 드라마는 그 사실만으로 무조건 쓰레기라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그냥 여자 입장에서는 ‘굳이 남자들끼리 치고 받고 브로맨스 주고받는 걸 봐서 무얼 하나? 내가 공감하고 이입할 수 있는 포인트는 어디에? 우린 또 집에서 밥이나 하든가 양성평등 실천 과시용 직원1이거나 비키니 입고 마약왕 옆에서 아양 떠는 역할인가?’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혹은 계속) 보고 싶은 생각이 많이 사라질 뿐이다.


같은 의미에서 난 사람들이 <파이트클럽>에 열광할 때 어리둥절했다. 그래, 반라의 브래드 피트와 에드워드 노튼이 땀을 흘리며 야성을 뿜는 건 비주얼적으로 섹시하지.. 그런데 그거 이상으로 남자들이 괴성을 질러대며 서로 피떡이 되도록 패는 게 그렇게 아름답고 감동을 주고 명작이라고 칭송할 만한 장면인가? 뭐 이런 생각이었다. 폭력 자체를 필요 이상으로 영광스럽게 표현한 것도 거북했지만 그 주체가 전부 남자들이라 나와 그들의 판타지간의 거리를 좁히기 힘들었다. 그리고 <수리남>을 볼때 그 기시감이 되살아났다. 여기에 대해서는 내가 더 길게 적는 것보다는 위근우 칼럼니스트의 이 리뷰를 읽는 걸 추천한다. (원래 제목에 ‘알탕 영화’라는 표현을 썼다가 편집부에서 순화했다는데, 그 단어를 통해 무슨 의미를 전달하려고 했는지 잘 알겠다.)


정리하자면 적당히 예측 가능한 전개와 액션 등등, 다른 거 하면서 배경으로 틀어놓고 한 번쯤 대충 보고 여러 번 볼 만하지는 않은 타임킬링물이었다. 그나마 비교적 신선하게 느껴지는 요소들이 있어서 이렇게 리뷰를 적게 됨. 끝.


<이미지 출처>

- 한국일보: https://m.hankookilbo.com/News/Read/A2022092209470000490

- 디스패치: https://www.dispatch.co.kr/2075934

- 티브이데일리: http://m.tvdaily.co.kr/article.php?aid=16607821601650091002#_enli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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