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차. 나는 왜 다시 고용주의 품으로 돌아가는가

by 연옥

솔직히 자존심 상했다. 패배자가 된 것 같기도 했다. 아니, 당장 제시간에 일어나서 출근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아르바이트 모집 공고에 커서를 올리고 클릭을 망설이는 동안 오가는 수많은 생각들.


퇴사 후 홀로서기 2년 차, 본업에 대한 극심한 번아웃과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누적되어 손을 놓은 지 3주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말이 3주지, 성수기 한가운데에 놓인 자영업자가 모객을 포기했다는 건 연말까지 돈을 벌 의지가 없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 위기감을 누구보다 절절하게 느끼면서도 이토록 완강하게 휴업을 고집한다는 건, 분명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신호였다. 바로 그 타이밍에 내 귀를 팔랑거리게 만든 아르바이트 추천을 받은 건 우연이라고 해야 할지, 혹은 신호에 맞춰 방향을 틀어야만 하는 운명의 순간인지. 하루 3시간, 집에서 20분 거리의 학교에서 급식실 방역을 담당하는 일인데 시급도 넉넉하고, 근무 시간도 점심 때라 아무리 늦잠을 자도 도저히 지각할 수 없는 조건이었다. 심지어 3개월 단기 근무라 여행을 계획한 연말 일정과도 겹치지 않았다. 추천해준 지인의 말로는 급하게 구인 중이고, 일하는 시간이 애매해서 지원자도 거의 없을 거라 대충 서류를 준비해서 내도 무조건 합격할 거라고 했다. 슬쩍 보겠다는 말과 함께 모집 공고 링크를 전달받았다. 이제 클릭해서 열기만 하면 된다.


열기만 하면 되는데, 한 톨 남은 나의 마지막 자존심이 마우스에 올린 손가락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다. ‘네가 원래 하던 일에 비하면 5분의 1도 안 되는 시급이야. 정말 너의 가치가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매일 출퇴근을 한다고? 컨디션 따라서 하루 종일 쉬기도 하고, 훌쩍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던 너의 자유를 그렇게 포기할 거야?’ ‘다른 사람이 너한테 일 시키는 걸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면서. 회사 다닐 때처럼 굽신거리면서 어른들 비위 맞추는 거, 혼자 일할 때엔 할 필요 없었잖아.’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모든 노파심을 꾹 삼키고 일을 하게 된다면, 나는 월 최저 생계 비용의 절반 정도의 돈을 안전하게 확보할 수 있다. 힘들게 고객을 찾아다니거나 가격 협의에 실패하고 실망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몸을 지하철에 싣고 왔다 갔다 하기만 하면 하늘이 두 쪽이 나도 월말에 들어오는 돈, 내가 회사를 그만두고 유일하게 그리웠던 월급의 장점이다. 지금의 나는 왠지 그게 매우 절실하게 필요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난 떨리는 손가락을 들어 공고를 누르고, 서류를 작성하고,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듯한 속도로 면접을 보고 합격 통보를 받아버렸다. 첫 출근 전날, 무슨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종신계약이라도 한 사람인 것처럼 무거운 마음에 짓눌려 잠이 오지 않더라. 해봤자 하루에 세 시간짜리 일이 날 얼마나 고통스럽게 하겠냐만, 그럼에도 하려면 하염없이 할 수 있는 게 걱정이다. 그러고 보니 난 ‘방역’이 정확히 무슨 일을 뜻하는지도 모른다. 선별 검사소에서 일하시는 분들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비닐로 감싸고 내 몸통만 한 통을 끌고 다니며 소독을 해야 하나? 면접에서 물어볼걸. 하지만 너무 늦었구나. 난 내일 출근을 하는구나. 출근…


이 낯선 단어를 곱씹으며 새벽까지 잠을 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