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차. 그들은 그녀의 허리를 부여잡으며 깔깔댔다

by 연옥

첫 출근을 한 날, 나는 영양사 선생님의 뒤를 쫓아 ‘임시 휴게실’이라고 적혀있는 문 앞에 섰다. 원래는 조리 실습실로 쓰는 곳인데 나와 같은 방역 담당자를 비롯해 급식실 청소를 하는 분들이 짐을 보관하고 쉴 수 있는 공간이라고 했다.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나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이 문 너머에 과연 어떤 사람들이 있을 것인가, 그들이 나에게 호의를 보일 것인가, 앞으로 매일 볼 자신이 있을 것인가. 그 짤막한 찰나에 온갖 걱정으로 머릿속을 어지럽히며 내가 왜 2년 전에 퇴사를 했는지 생생하게 곱씹을 수 있었다. 맞다, 나는 사람들을 무서워했지. 그런 내가 앞으로 잘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하지만 근무 의사를 번복하고 도망치기엔 너무 늦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나는 이내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세 쌍의 눈앞에 서서 꾸벅 인사를 했다. “인사하세요, 오늘부터 급식 방역하실 분입니다.” 영양사 선생님의 소개 뒤로 내 입에서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말이 떠나려는 순간, 신입에 대한 첫 번째 질문이 귀에 꽂혔다.


“미스예요?”


미스? 이건 무슨 말인가. 너무도 낯선 단어와 질문 앞에서 동공이 흔들렸다. “어… 네?” 내가 우물쭈물하고 있으니 다른 분들이 말을 얹는다. “미스네, 미스.” “딱 봐도 젊구먼.” “어머, 이렇게 젊은 사람이 이 일을 하러 왔네. 웬일이야.” 그제야 ‘미스’란 미혼 여성을 뜻한다는 걸 깨달았지만, 이미 나의 결혼 여부에 대해 그분들 사이에 합의가 이루어진 것 같아 굳이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쑥스럽게 웃으며 다시 한번 고개를 푹 숙이고 속으로 생각했다. ‘여긴 이렇구나. 이런 분위기구나. 적응을 해야겠지.’


그러고 보니 나는 이 정도 나이대와 성별의 사람들과 일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50대 여성. 학생 때 아르바이트를 할 때 다른 직원들은 모두 내 또래, 나를 고용한 사장님은 대개 30대에서 40대 남성이었다. 회사에서 같이 일하던 분들도 그랬고, 40대를 넘어 여전히 회사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임원이었기 때문에 마주칠 일도 거의 없었을뿐더러 한 명도 빠짐없이 남자였다. 그렇다, 내가 지금까지 50대 여성과 마주했던 기회는 바로 이들의 일터에 손님으로 스쳐 지나갈 때가 전부였다. 지하철 화장실에서 대걸레를 빨고 쓰레기통을 비우거나, 회사 식당에서 배식할 음식을 부지런히 나르던 그들. 난 언제나 그들을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위치에 있었지, 그들의 옆에 나란히 서서 걸레나 배식통을 쥐어본 적은 없었다.


50대 여성의 일터에는 어떤 문화가 있을까? 그 구성원들은 어떤 역할을 요구받을까? 거기에 아무 생각 없이 걸어 들어온 30대 여성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내가 정말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실감이 났다. 그나마 먼 기억 저편에서, 이들과 비슷한 연배의 친척들이 명절 때 내게 던지던 안부 비스무리한 것들을 끌어오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었다. “아이고 왜 이렇게 살이 쪘나, 이래서 어떻게 결혼하려고.” “옷은 또 무슨 넝마짝을 입고 왔노. 요즘은 또 뭐 이런 게 유행이가?” 외모에 대해 거침없이 쏟아지던 피드백이 아직도 생생하게 짜증이 난다. 나와 같이 일하게 될 분들도 이런 감성을 공유하시려나.


나의 내적 질문에 대답을 해주려는 듯, 한 분이 벌떡 일어나 영양사 선생님을 향해 입을 열었다. “볼 때마다 허리가 한 줌이야, 아주! 보면 꽉 쥐어보고 싶다니깐!” 그러더니 선생님께 성큼성큼 다가가 두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진짜로 꽉 움켜쥐었다! 그걸 보는 분들도, 영양사 선생님도 모두 깔깔대며 웃는 것이다! 다른 상황이었으면 정말 두 손안에 쏙 들어오는 선생님의 허리 두께에 마음 놓고 깜짝 놀랐겠지만, 나는 이게 앞으로 나에게도 닥칠 신고식 같은 것일지 혼란스러웠다. 서둘러 나의 허리를 더듬어보았지만 두 뺨은 무슨, 열 뺌 둘레 정도의 물컹한 튜브가 느껴지며 쓸데없이 치욕스러웠다.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채용 공고에 ‘n인치 이상 허리 지원 불가’ 같은 문구라도 걸어두던가… 아무튼 나의 몸이 그들의 공공재 취급을 받을 건 분명해 보였고, 나는 그걸 받아들이기에 몸도 마음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이젠 이름도 기억 안 나는 먼 친척님들, 저를 볼 때마다 방댕이라도 두들겨주며 저를 더 하드 트레이닝 해주시지 그랬어요.


하지만 여기가 단식원이 아닌 이상, 서로의 허리둘레를 재며 칭찬을 해주는 게 조직 문화의 전부 일리는 없었다. 앞으로 하루 세 시간 동안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 나는 도무지 예상할 수 없었다. 멀뚱 거리는 내게 한 분이 비닐장갑을 내밀었다. “이거 껴요, 곧 배식 시작하니까.” 그래, 이제 시작이다. 난 여기서 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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