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차. 정신차려이각박한급식실에서

by 연옥

내게 주어진 임무는 얼핏 들었을 때 단순하게 느껴졌다. 학생들이 밥을 먹고 나가면 자리를 행주로 닦고, 분무기로 알콜을 뿌려주면 끝. 빈자리가 생길 때까지는 학생들이 스스로 배식하는 반찬 옆에 서서 조금 도와주는 게 전부였다. 마침 그 주에는 일부 학년이 수학여행을 가서 평소보다 학생들이 훨씬 적다고 했다. 나의 어설픈 행주질로도 쉽게 일을 끝냈고, 예상보다 20분이나 더 쉴 수 있었다. 뭐야, 전날 잠을 설칠 정도로 걱정할 일이 아니었네. 혹은 내가 청소에 재능이 있는 건가. 괜히 우쭐거리며 휴게실에서 핸드폰을 보던 중 갑자기 궁금해졌다. 아직 퇴근까지 두 시간이 남았는데, 앞으로는 뭘 하는 거지?


눈치를 보며 슬쩍 급식실로 돌아왔더니 이상하게 아직도 분주한 분위기였다. 분명 방금 배식이 다 끝났는데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반찬을 들고 오가는 조리실 직원분들이 보인다. 지나가는 한 분을 붙잡고 더 남은 일정이 있냐고 여쭤봤더니 돌아온 명쾌한 대답. "아까는 고등학생 배식이었고, 지금은 중학생들 밥 먹어야죠."


예? 중학생이요?


그제서야 불현듯 몇 시간 전에 통과한 교문의 모습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양쪽에 'ㅇㅇ고등학교' 그리고 'ㅇㅇ중학교'라는 현판이 붙어있었던 것만 같다. 뭔가 다른 학교들보다 건물도 많아 보였고, 지나가면서 마주친 학생들의 나이대도 들쭉날쭉해 보였고... 갑자기 미스터리가 풀렸다. 여긴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같이 있고, 급식실을 공유하는구나. 오케이, 괜찮아. 똑같은 청소 한 번 더 하면 되지 뭐.


하지만 왠지 모르게 전보다 한층 더 비장한 분위기가 감도는 것으로 보아, 중학생 배식은 고등학교 배식과 확연히 다른 것이 분명했다. 방금까지 웃고 떠들던 직원분들이 순식간에 적진 앞에서 무기를 가다듬는 군인으로 변한 것만 같았다. 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반찬통 뚜껑을 열어제끼고, 2배속으로 잡채를 비비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난 좀 더 긴장했었어야 한다. 하지만 어쩌겠나, 난 이 학교에 중학생들이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한낱 신입이었고 대체 왜 이렇게 다들 바짝 힘이 들어간 것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위생모와 마스크 사이로 눈알만 도륵도륵 굴리던 와중...


급식실 문쪽에 서있던 영양사 선생님이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을 올렸다. "들어와 얘들아!"


"끼요요오오오오옷!!!!!!!!!"


급식실로 쏟아져 들어오는 중학생 무더기의 뜻을 알 수 없는 괴성에 고막이 찢어지는 줄 알았다. 정신을 미처 차리기도 전에 그들은 내 앞에 바글바글 줄을 서더니 빛의 속도로 밥을 받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너무도 빠르게 움직이는 나머지, 내가 퍼주는 김치를 받는 동시에 자꾸만 빈자리를 향해 뒷걸음질을 쳐서 몇 번이고 바닥에 흘릴 뻔했다. '얘들아 제발 밥 받을 때 만큼은 가만히 있어줘...'하고 속으로 애원했지만 눈앞에 나타나는 아이들이 휙휙 바뀌니 누구를 향한 푸념이었는지도 잊어버렸다.


그리고 대망의 청소 타임. 드디어 다른 직원분들의 비장한 표정의 뜻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 한 학년만 배식을 했던 고등학교 점심과는 다르게, 전 학년이 모두 식사를 하는 중학생들은 모두가 동시에 앉을 자리가 부족했다. 즉, 일찍 온 사람이 먹고 나간 자리를 내가 빠르게 닦아야 그 자리에 새로운 사람이 앉아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학생들이 식판을 든 채로 급식실을 배회하지 않고 제때 식사를 할지 여부가 오직 나의 손에 달려 있었던 것이다! 이제 겨우 일을 시작한 이 새파란 신입의 손에 말이다! 아직 몇 자리 비지도 않았는데 끝이 보이지 않는 학생들의 행렬을 보며 정신이 아득해졌다. 숨이 자꾸 멎는다... 네가 날 향해 걸어온다... 계속 계속 걸어온다... 여긴 전교생이 한 5만 명은 되는 곳인가...


그렇게 급식실은 소리 없는 전쟁터가 되었다. 나는 마치 컨베이어 벨트에 실린 사람처럼 엉거주춤 직진하면서 옆의 모든 자리를 훑듯이 닦았다. 18개 자리를 닦으면 코너를 돌아 반대편의 18개 자리를 닦고, 똑같은 동선을 돌며 36개 자리에 알콜을 따발총처럼 뿌려댔다. 그렇게 내가 지나간 자리마다 새로운 학생들이 속속들이 앉았기 때문에 얼른 다음 구역으로 옮겨가 마저 닦아야 했다. 꺾인채로 짓눌리는 손목과 허리가 점점 아파왔다.


식판을 든 아이들이 오는 속도를 보아하니 배식을 하는 직원분들도 나만큼 분주할게 분명했다. 하지만 곁눈질로 관찰한 결과, 베테랑인 그들은 학생들의 움직임보다도 더 빠른 손놀림을 자랑하며 각종 반찬을 식판에 착착 올렸다. 손은 모터를 단 듯 현란히 움직이지만 눈에는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고 다른 직원과 몇 마디를 나누는 듯한 모습에서 넘쳐 흐르는 짬바... 허겁지겁 청소하는 내 옆에서 친구들과 떠드는 학생들도 나와 완전히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았다.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머리를 한껏 젖힌 채 시조새같은 고성을 터뜨리기도 하고, 젓가락을 튕겨 친구 식판 위로 반찬을 넘기는 장난을 치기도 했다. 그들이 서로에게 토스하려다가 실패한 김치 조각이 식판과 식판 사이로 힘없이 떨어지는 걸 보며 이를 꽉 깨물었다. 저거 내가 치워야 하잖아.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마스크 속 인중에 땀이 가득 고인 채로 허둥지둥 정신을 못 차리는 사람은 이 공간 속에서 나밖에 없다는 걸.


좀 외로웠다. 괜히 서러웠다. 하지만 이런 감정을 곱씹을 시간은 없었다. 나는 200개가 넘는 테이블을 박박 닦으며 눈 대신 인중으로 미친 듯이 울었다. 난 대체 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가. 왜 이곳은 이렇게 빡센 포지션에 단 한 명만 채용을 한 것인가. 원래 하던 일을 굳이 내팽개치고 여기까지 온 이유가 뭐였는지 벌써 기억나지 않았다. 똑같이 생긴 의자, 테이블, 말라붙은 국물 자국, 흘리고 간 콩나물 대가리, 행주질, 행주질, 분무질, 반복. 나의 모든 움직임과 그 주변을 둘러싼 수많은 학생이 마치 빨리 감기로 재생한 영상처럼 우르르 몰려왔다가 흩어졌다.


마지막 학생이 떠난 자리에 흥건히 쏟아진 물을 닦은 뒤, 난 소심하게 행주를 집어 던졌다. 휴, 역시 쉬운 일 하나 없고 먹고 사는 건 각박하구나. 그래도 이제 끝났으니 됐다.


"새로 오신 선생님, 청소 다 끝내셨어요?"

"어어.. 네. 방금 마지막 자리 닦았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이제 화장실 가서 대걸레 챙겨오시면 됩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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