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처음 일을 시작한 지 일주일이 넘었다. 말이 일주일이지 휴일을 빼면 일에 익숙해지기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회사 신입사원이었을 때에도 그랬듯, 스킬이 부족한 저연차는 그 대신 노력과 열정을 부으면 된다고 믿었다. 그래서 분무기로 알콜을 한 번이라도 더 뿌리며 부지런히 움직였고, 운동화가 다 젖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걸레를 팍팍 밟아 야무지게 빨았다. 이렇게 계속하다 보면 늘겠지. 그리고 최소한 뺀질거린다는 욕은 안 먹겠지. 생각보다 같이 일하는 분들은 나에게 큰 관심이 없어 보이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뜻밖의 변화가 찾아온 건 그다음 날이었다. 2인 1조로 한 구역을 맡아 대걸레질을 하고 있었는데, 모두 마치고 화장실로 걸레통을 옮기는 동안 나의 파트너가 슬쩍 말을 걸었다. “연옥 씨는 말이야-“ “예?” 드디어 꾹 참았던 잔소리가 튀어나올 타이밍인가? 손에 꾹 쥔 걸레통을 움찔거리며 걸음을 멈춰 섰다. 그분도 나의 긴장을 읽었는지, 마스크 위로 눈웃음을 보이며 나의 어깨를 친근하게 툭툭 두드려주었다. “연옥 씨는 팔다리가 길어서 대걸레질을 아주 잘해.” 아, 칭찬이었구나! 반사적으로 머리를 조아리며 “아이구, 아닙니다”라고 하는데 뒤로 지나가던 다른 직원도 한 마디를 보탰다. “역시 키가 크니까 멀리서 봐도 움직임이 시원시원하더라고.” 그분들보다 내가 머리 하나 정도 큰 건 사실이었지만 그게 청소에 있어 이득일 줄은 몰랐다. 설령 그게 그렇게 대단한 경쟁력이 아니더라도, 이들이 나의 기를 살려주고 싶은 의도인 건 분명했으니 상관은 없었다. 그날은 마스크 안에서 몰래 히죽거리며 어느 때보다도 신명 나게 대걸레를 빨 수 있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며 나는 이 조직 문화의 핵심이자 대단한 장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기 일만 제대로 하면 된다.’ 본인이 담당한 업무만 제대로 소화하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었고, 그 외에 말없이 눈치를 주거나 부당하게 짬처리를 시키는 건 엄격히 금지되었다. 각자 쓴 행주는 각자 알아서 빨고, 소독용 알콜이 떨어지면 자신이 알아서 채웠다. 청소 구역도 다른 구역에 비해 허리를 많이 숙여 낮은 곳을 닦거나, 음식물이 많이 떨어진 배식구 근처가 포함된 곳은 모두가 돌아가며 공평하게 담당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맡은 곳만 청소하고 먼저 끝나면 일찍 갈 수 있다는 것이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걸 몰랐던 근무 초반에는 내 일이 다 끝난 뒤에도 다른 분들 주위를 얼쩡거리며 “저… 제가 더 할 게 있을까요?” “그거 도와드릴까요?”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다들 웃으면서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 문자 그대로 안 도와도 된다는 뜻이었던 거다. “몸이 많이 힘든 일이잖아요. 각자 담당한 일만 하는 것도 힘든데 굳이 다른 사람 일까지 해줄 필요가 뭐 있어. 먼저 간다고 서운해하고 그런 거 없으니까 그냥 가도 돼요, 진짜.” 아, 대한민국에서 이렇게나 건강한 개인주의를 실천하는 집단이 있다니! 난 꾸벅 고개를 숙이며 “네, 알겠습니다”라고 한 뒤 정말로 짐을 챙겨 귀가했다. 그리고 그들이 약속한 대로, 그다음 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런 근무 분위기에는 또 하나의 커다란 장점이 있었다. 바로 감정 노동이 일절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청소를 하는 동안 내가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존재는 다른 직원이 아닌 행주와 대걸레였다. 그러다 보니 일하는 시간 내내 누군가의 기분을 의식하거나 웃으며 비위를 맞출 일이 있으래야 있을 수 없었다. 우리가 업무 시간 동안 나누는 대화는 겹치지 않는 동선을 짜기 위해 3초 정도 회의를 하고, 가끔 서로의 옆에 있는 테이블을 닦을 때 스파게티 소스가 끈질기게 안 지워지지 않냐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전부였다. 그걸 제외한 청소일은 똑같은 테이블을 똑같은 움직임으로 닦는 것이었기 때문에, 주변의 소음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일종의 동적 명상을 하는 것 같은 편안함마저 느껴지기도 했다. (물론 이건 배식 속도에 쫓기지 않을 정도의 스피드를 터득한 뒤에야 가능했지만 말이다.) 눈치가 부족하고 타인의 감정과 표정을 잘 오독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근무 환경이 무척이나 고맙게 느껴졌다.
이처럼 애써 점수를 따기 위해 방긋거리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기에, 일 잘한다는 얘기를 듣는 방법 역시 굉장히 단순했다. 그냥 일을 잘하면 됐다. 여기서 말하는 일이란 내가 맡은 구역을 주어진 시간 안에 깨끗하게 닦는 것이 전부다. 윗사람에게 말 이쁘게 하기, 사근사근하게 웃으면서 주변 챙겨주기, 시키지 않아도 눈치껏 어려운 일에 자원하기 등은 업무 범위에 포함되지 않았다. 청소를 잘하는 게 되게 쉽고 하나도 힘들지 않다는 게 아니라(청소=몸을 갈아 넣는 일. 이건 다른 에피소드에서 다룰 예정.) 일’만’ 잘해도 아무 문제없는 직장이 처음이라 기분이 좋다는 말이다. 직원들의 성별과 나이대 때문에 무조건 딸 같이 굴어야 하고, 나의 허리나 엉덩이를 공공재로 내주는 것도 업무의 일부일 거라고 생각했던 편견도 슬그머니 거두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이 일을 아주 오래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문제의 종이 한 장을 받아 들기 전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