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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옥 Mar 25. 2023

나홀로 짊어져야 하는 고통은 없다

<연결된 고통> 북토크 후기

제목만 보고도 무조건 읽어야겠다고 다짐했던 책이었다. 무아레 서점에서 독서모임과 북토크가 열린다고 했을 때 주저 없이 둘 다 신청했다. 결혼 준비 때문에 숨 넘어가느라 다른 모든 모임은 취소했지만 이 두 개만큼은 놓지 않았다. 나의 차기작을 계속 쓸 동력을 얻으려면 꼭 가야겠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 북토크 후기 겸 책 추천글을 쓴다.


저자인 이기병 작가님은 감염내과 전문의이자 의료인류학 연구자다. 얼핏 보면 의학과 아무 상관없어 보이는 인류학을 대학원까지 다니며 공부하신 이유가 궁금했는데, <연결된 고통>에서 다루는 외노의원(외국인 노동자를 전문으로 진료했던 병원, 현재는 폐원) 근무 경험이 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그곳에서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거나 원인을 규명하기 어려운 병을 앓는 환자들을 수도 없이 많이 만난다. 하지만 이내 진료 중 겪는 어려움이 단순한 언어 장벽이나 문화적 차이 때문이 아님을 알게 된다. 어느 질병을 질기도록 따라다니는 낙인, 고용주가 요구하는 무리한 근로 조건을 차마 거부할 수 없는 불안한 위치, 정신의 문제를 신체의 이상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배경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그럼에도 이러한 환자만의 고유한 질병 서사를 납작하게 단순화하고, 분절된 전문성이라는 좁은 시야로 들여다보는 의학에 대한 회의감을 느낀다. 진료실 안에서 의학적 언어로 표현되는 고통 너머에 더 큰 고통이 있을 수 있고, 그 고통의 총체를 인식하고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진정한 인간다움이 시작한다는 것. 저자가 인간을 연구하는 인류학을 공부하고, 이 책을 쓰게 된 이유라고 했다.


“고통과 통증은 오직 개인적인 것이라고 상상하지만 실제로는 그가 속한 문화와 사회와 역사의 층위 위에서 상연되는 것일 가능성이 높다.”
<연결된 고통> p.15


앞서 ‘차기작을 쓸 동력을 얻기 위해’ 책을 읽고 모임에 참석했다고 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나의 차기작 주제가 바로 내가 개인적으로 겪은 고통의 사회적 맥락을 분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난 유아 시절부터 성인이 되기 직전까지 약 20년의 시간 동안 가정폭력을 경험했다. 오랜 시간 동안 나의 잘못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그 생각에서 벗어난 뒤에도 지극히 개인적이고 특수한 문제라고 생각하며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 나의 역사를 숨겼었다.


그런데 지난 몇 년간 아동학대 사건이 ‘사회 문제’로 대서특필되고, 민법상 부모에게 주어지는 징계권을 폐지한다는 논의가 나오고 나서 나의 과거를 새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게 되었다. 나의 고통은 결코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부모와 선생에게 폭력을 휘두를 권한을 쥐어주고, 가족 문제에 타인이 개입하는 걸 쓸데없는 오지랖이라고 취급하고, 정신적 고통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은 문화와 제도 속에서 나의 고통은 은폐되고 증폭되었다. 정신과에서 진단받은 우울증과 경계성 성격 장애, 그리고 약물 치료의 대상이 되었던 무기력과 자해 행동은 그저 빙산의 일각이었다. 수면 위로 작게 보이는 그런 진단명과 증상 아래에는 이런 복잡다단한 원인과 맥락이 얽혀 있던 거다.


“인간은 어느 누구도 섬이 아니다. 따라서 혼자서만 감당해야 하는 선택이란 사실상 허구다. 우리는 무엇인가 선행된 과정의 결과를 만나 장차 어떤 상황의 원인이 될 만한 선택을 한다. (…) 다른 환경이었다면, 그 어떤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면, 조건이 달랐다면 당연히 결과는 달라졌을 수 있다. 그의 선택은 그가 혼자 만든 것이 아니기에, 잘못이 있었다고 해서 오롯이 짊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다.”
<연결된 고통> p.82-83


위 글은 내가 대학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그 학문으로부터 얻은 위로와 맞닿아있다. 모든 맥락과 환경을 제거하고, 독립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개인은 이론상으로만 존재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으로 보이는 것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에 영향을 미친 수많은 요인의 산물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저자가 주문하듯 그 어떠한 고통도 “(개인이) 오롯이 짊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혼자 짊어졌야 한다고 생각했던 폭력과 학대의 고통에도 나를 방관한 가족과 지인, 그리고 체벌을 정상적인 훈육으로 치부했던 교육 시스템과 법제가 기여한 바도 있었다. ‘나의 잘못이 아니라면 내가 이 고통을 겪은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으려 애쓸 때 이런 관점이 큰 위로가 되었고, 이 책을 읽으며 다시 한번 그 위로를 상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통의 원인을 이해한다고 해서 고통이 완전히 소멸하는 건 아니다. 세상 많은 사람들 중 하필 내가 그 고통을 겪어야 했던 이유도 찾을 수 없다. 존재를 통째로 소멸시키고 싶을 정도의 심적 고통은 여전히 나를 시시각각 괴롭히고, 우연과 확률의 장난으로 나에게 이 운명이 주어진 걸 알기에 신 말고는 딱히 탓할 상대도 없다. 그렇다면 과연 이 고통의 의미가 대체 뭘까? 그리고 삶에 있어서 정말 고통이 필요한 존재일까? 내가 하고 싶었던 질문을 어떤 분이 북토크에서 던져주셨고, 난 답변에 귀를 기울였다. 잠시간의 고민 끝에 작가님은 다른 학자들의 말을 빌려 이렇게 말씀하셨다:


“고통당하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성소가 있다. 그곳은 고통받지 않는 사람은 들어갈 수 없다.”
“고통의 층위를 나누었을 때, 제일 밑바닥에 있는 사람은 전략적 기동성이 없어서 고통을 회피할 능력이 없다. 반면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은 고통에 관심이 없다. 자신의 문제가 아니거나 자신이 고통을 야기하는 세력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맨 아래 층위에 있는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가운데에 위치한 사람이다. 이들에게는 고통을 들을 수 있는 능력과 감수성이 있고, 의견을 모아서 위에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각각 누가 한 말인지 미처 적지 못해 아쉽다.)


학대가 현재진행형일 때 난 고통의 층위의 밑바닥에 있었다. 매일 맞고 기절하고 깨어나서 다시 맞길 반복했기에 나에겐 그 상황을 탈출할 능력이 없었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그 시절의 기억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지만, 덕분에 그런 고통을 겪는 사람을 알아보고 공감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물리적 폭력에서 벗어나 회복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나의 경험을 언어화하고 비슷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용기도 생겼다. 그런 역할을 맡고 싶어서 이런 고통을 선택한 것도 아니고, 선택지가 있었다면 당연히 이 길을 가지 않았겠지만 세상 누가 자신의 운명을 마음대로 택하겠는가. 태어나보니 내 앞에 놓인 길이 이것밖에 없었다면, 그 길 위에 있는 사람만이 세상에 미칠 수 있는 선한 영향력을 찾고 실천하는 게 나의 소명일 것이다. 나의 책이 그저 개인사의 기록으로 남지 않고, 비슷한 경험을 했거나 목격했거나 목격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눈을 틔워줄 수 있길 바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게 내가 겪은 고통에서 뽑아낼 수 있는 최선의 의미이자 가치일 테니까.


이 글에서는 나의 차기작과 맞닿아있는 주제만을 선별해서 다뤘지만, 책 전체를 읽어보면 현대 의학 시스템의 문제, 낙인, 사회적 성원권, 돌봄 의료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니 꼭 일독을 권한다. 책에서는 챕터별로 각 주제에 대한 고민을 일깨워준 환자 사례를 실감 나게 서술하고 있고, 이들이 겪은 질병이나 진료 과정 등을 쉽게 풀어써서 비전문가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 단순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로 소비한 건 결코 아니다. 북토크에서 작가님은 “이 책은 내가 더 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 실패의 기록이기도 하다”라고 말씀하셨다. 매번 진료를 마친 뒤 퇴근하기 전에 진료실에 남아 각 사례를 복기했는데, 그 과정이 많이 고통스러웠다고 하셨다. 과연 내가 최선을 다한 것인지, 놓친 것이 없는지 돌아보며 때로는 후회하고 아파한 감정이 책에도 고스란히 녹아있고 거기에서 진한 휴머니즘을 느꼈다. 환자의 고통을 치유하는 의료인이자,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통찰하고 실천하는 학자인 작가님에 대해 크나큰 존경심을 느꼈다.



이런 분으로부터 힘을 얻으면 책을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북토크를 마치고 사인을 받을 때 내 차기작 주제를 구구절절 설명하고 응원의 문구를 부탁드렸다. 써주신 글을 읽으니 맘 같아서는 당장 하룻밤만에 책을 다 쓸 수 있을 것 같을 정도로 힘이 난다. (물론 그럴 수 없다. 결혼식날 배포할 식순 안내 팸플릿부터 만들어야 하니까…)


모두와 공명하는 시간이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뜨거운 감정을 안고 글을 맺는다.



덧1. 북토크에 참여하신 독자 중 한 분이 '투병하는 청년의 이야기'를 주제로 하는 잡지 매거진병:맛을 만드시는 분이었다. 잡지를 만들면서 만났던 청년 사례를 이야기해 주셨는데 아주 짧은 사연 속에서도 많은 감동과 울림을 느꼈다. 조만간 구입해서 읽어볼 예정.


덧2. 소중한 독서 모임과 북토크 자리 만들어주신 무아레 서점 사장님들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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