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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옥 Apr 13. 2023

결혼식을 마쳤다.

영국에서 날아온 남편 가족들을 만나 편안했고, 행복했다.

역시, 다들 인생네컷 좋아하실 줄 알았다.

지난주 토요일에 결혼식을 마쳤다. 아주 커다란 마침표를 꾹 눌러 찍은 기분이다. 후련하다.


결혼식을 치른 주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영국에서 날아온 남편의 외가 식구들과 서울 구경을 했고, 월요일에는 남편과 시아버지와 함께 부산을 여행했고, 오늘 남편과 둘이 통영으로 왔다.


가족 여행 중간에 잠깐 결혼식을 곁들였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결혼식 전날까지도 남편은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 동생과 자전거를 타고, 다 같이 한강 공원을 거닐었다. 그러고 다음날 식을 마치고 저녁때부터 다시 서울 투어 재개. 상당한 강행군이었다.


가족들이 한국에 도착하기 전날까지만 해도 이 스케줄을 소화할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난 3월부터 끝나지 않는 청첩 모임과 결혼식 준비 관련 행정 잡무로 몸살을 앓고 있었고, 함께 3박 4일 간 부산 여행이 예정된 시아버지는 아직 만나지도 않은 상태라 대체 어떤 분 일지도 몰랐다. 실재하는, 그리고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여러 어려움과 걱정 때문에 몸과 마음이 시달렸다.


하지만 역시 닥쳐보면 다 한다. 그냥 어쩔 수 없이 해낸 것 이상으로,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었고 나도 참 잘했다. 작년 크리스마스 때 이미 일주일을 같이 보낸 적 있었던 외가 식구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유쾌했다. 시아버지는 뭐랄까... 확실히 외가와 텐션 차이는 있는데, 입에 달고 사시는 술과 담배만큼이나 아재 개그에 대한 욕심이 굉장하셨다. 그리고 나에 대해 아주 궁금해하시고 이것저것 많이 묻고, 부산 여행 끄트머리에 가서 내 목소리 다 갈라진 걸 보고 건강을 계속 챙겨주셨다. 뭐랄까, 며느리로서의 적성과 자격을 검증하는 느낌이 아니라 그냥 '앞으로 가족이 될 사이인데 자주 왕래하기는 어려우니 지금 최대한 알아가고 싶다' 느낌.


그러고 보면 남편의 외가, 친가 구분 없이 만날 때마다 대화를 굉장히 많이 하는데, 한 번도 무례하다거나 어떤 시험을 통과하는 느낌의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다. 분명 한국인들에게서도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아봤을 텐데 왜 어떤 상황에서는 존중받고 진심 어린 관심을 받는 느낌이라면, 어떨 때에는 쓸데없는 오지랖과 자격 검증처럼 느껴지는 걸까.


심지어 남편 식구들과 이 문제에 대해서도 얘기한 적이 있는데(진짜 오만가지 이야기를 다 나눴네), 항상 나오는 말이 있었다. "넌 그냥 너면 돼. 우리와 함께 시간을 보낼 때, 너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 말고 우린 바라는 게 없어. 그렇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게 편안하길 바라." 어른들 앞에서는 애써 어려워하는 모습을 티 나게 보여주는 게 예의라고 배웠던 입장에서 참 신선했다. "그냥 너로 존재하면 돼."


그냥 너로 존재하면 된다... 어디 자기 계발서나 다이소 머그컵에 적혀있을 법한, 식상한 문구지만 이걸 정말 진심으로 실천해 본 적이 있던가? 용기 내어 실천했을 때 그걸 환영하는 분위기가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삶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학교에서 난 눈치를 보는 법부터 배웠다. 타고난 천성은 손을 번쩍 들고 발표하거나 튀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학교에선 그러다 보면 재수 없다는 소리를 듣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뒤로는 그 수업 시간에 지금까지 몇 번이나 손을 들었는지 세면서 적당히 조절했고, 친구들 앞에서는 아는 것도 모른척하거나 재수 없다는 소리를 듣는 다른 친구들이 하는 행동을 관찰하면서 나도 그러지 않기 위해 조심했다.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지위가 높은 사람 앞에서 너무 크게 웃거나 실없는 농담을 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는 '슬슬 기어오르는 애' '선배를 만만하게 보는 애' 같은 소리를 들으니까. 탑재된 눈치 수준이 낮아서 내가 왜 욕을 먹는지도 모르던 사람으로서, 후천적으로 이런 센스를 빠르게 학습하는 게 무척 중요했다. 당연히 피곤했지만 당연히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이렇게 상대방과의 관계, 위계, 질서, 분위기에 따라 많게는 수십 가지의 페르소나를 갈아 끼워오던 나에게 갑자기 자신을 마음대로(?) 대하라는 남편 가족들의 주문은... 최대한 어렵게 대하라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다양한 관계 속에서 뉘앙스와 어투를 세심히 조절하는 법을 배웠던 모국어와 다르게 나의 영어는 매우 투박했다. 투박함을 문제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원체 투박하다 보니 뉘앙스나 어투 따위를 신경 쓸 겨를 없이 솔직하고 직설적인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존댓말이라는 개념도 없고 나이 많은 어른도 다 이름으로 부르는 문화도 한몫하고.) 그런 나의 언어는 가족들에게 격한 환영을 받았다. 얼떨떨했고, 아직도 좀 그렇긴 하지만 이젠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그런데 겨우 적응이 되니까 가족들이 다 한국을 떠나버렸다. 아쉽다. 이런 분들과 비행기로 14시간이 걸리는 거리에서 살아야 한다니.


입국 전까지 안절부절못하던 걱정은 기우였다. 많이 행복했다. 결혼식 당일을 포함해 앞뒤로 쏟아지는 사랑을 받았다. 앞으로 통영에서 조용히 보낼 일주일도 기대되지만 지난 한 주도 참 좋았다.


피곤해서 그런가, 아님 글을 안 쓴 지 하도 오래되어서 그런가 너무 주절거리는 느낌이지만... 이 따스한 마음을 기억하고 싶어 적는다. 아마도 차차기작은 결혼 앞뒤로 느낀 점을 적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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