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깍두기> 제작기 #01. 들어가며
2023년 10월 12일, 내가 설립한 1인 출판사 ‘제로페이퍼’의 두 번째 책 <깍두기>가 세상에 나올 예정이다.
내가 쓴 책은 아니기 때문에 나의 독립출판물이라고 부르기는 어렵겠다. 하지만 원고를 쓰는 것 말고 나머지 모든 작업을 내가 혼자 해냈고, 출판사 이름으로 내는 거기는 하지만 그 출판사의 유일한 직원도 나 혼자라서 내가 만든 책인 건 맞다. (‘내 책’이 아닐 뿐.)
자연히 내가 원고 작성부터 모든 걸 혼자 해냈던 인생 첫 독립출판물 <지워지는 나를 지키는 일>과 비슷한 과정을 밟아서 책을 만들었다. 기획을 하고, 편집을 하고, 또 편집하고, 또 하고, 또 하고, 갈아엎고, 또 하고, 책 사양을 결정하고, 디자인을 하고, 외주를 맡길까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하지만 통장 잔고를 보고 겸허히 마음을 접고, 마저 디자인을 하고, 종이를 고르고, 견적을 받고, 견적서에 찍힌 일곱 자리 숫자를 보고 억장이 와르르 무너지고, 하지만 마음을 이내 추스르며 예약 판매 페이지를 만들고, 굿즈를 디자인하고, 예약 판매를 오픈하고.
하지만 동시에 차이점도 굉장히 많았다. 전보다 훨씬 더 힘든 점이 많았다. 당연히 시행착오도 적지 않았다. 책을 만들다가 많이 울었다. 작가와도 대판 싸웠다. 아무도 날 찾지 않는 섬으로 도망가는 상상도 자주 했다.
하지만 그렇게 상상 속에서 도착한 섬에서도 노트북을 챙겨간 내가 계속 책을 쓰는 모습 밖에 상상이 되지 않았다.
결국 그 어떤 섬에도 가지 못했다. 그래도 괜찮다. 어쨌든 약속된 기한을 지켜 책이 완성될 예정이다. 지금은 예약 판매 페이지를 열어두고 추석 연휴를 맞아 잠시 숨을 돌릴 수 있을 정도의 여유도 찾았다. 그리고 솔직히 연휴만큼은 책 생각을 하지 않고 쉬고 싶었었다.
하지만.
미래의 내가 또 책을 만들게 될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위에서 저렇게 고생을 했다고 징징거려놓고 이미 차기작과 차차기작 기획까지 해놓은 사람이 나다.) 물론 운이 좋으면 출판사에 투고를 하거나 공모전에 입상을 해서 나 대신 책을 만들어줄 사람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기에 A부터 Z까지의 모든 고생을 오롯이 혼자 끌어안게 될 거다. 그런 미래의 나를 위해 두 번째 책 제작기를 기록해두려고 한다. 무엇이 가장 힘들었거나 예측 불가능했는지, 다음에 할 때에는 어떤 걸 더 잘해야 할지. 나뿐만 아니라 독립출판을 고민하거나 준비하는 분들에게도 작게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 (겨우 두 권 만들어 본 애송이라 사실 나도 독립출판을 잘 모른다. 알찬 정보를 얻어간다기보다는 그냥 누군가의 피, 땀, 눈물이 담긴 솔직한 후기, 그래도 어쨌든 참고 읽다 보면 독립출판의 전 과정을 대충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시리즈가 될 것이다.)
아, 물론 지금 예약 판매 중인 문제의 책을 홍보하는 목적도 있다. 이 글을 2023년 10월 12일 혹은 그 이전에 읽고 있다면 책은 여전히 절찬리에 예약을 받고 있다. 예약 판매의 목적은 당연히 인쇄 자금 조달이다. 300페이지가 넘는 책을 풀컬러로 인쇄하는 데에 얼마나 많은 돈이 드는지는 아쉽게도 밝힐 수 없지만(견적은 대외비니깐), 확실한 건 전액 현금박치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기에 진지하게 쿠팡 물류센터 알바를 고민해야 할 정도로 좀 막막한 상황이긴 하다.
그럼에도 무리해서 이 책을 만드는 이유가 궁금하다면? 앞으로 이어질 글을 재밌게 읽어주길 바란다. 영세업자, 그리고 이제 세상에 첫 책을 내놓는 작가에게 마음을 보태고 싶다면? 이왕이면 책 구매 내지는 금전의 형태로 후원을 해주면 진심으로 고맙겠다. 아래에서 책을 예약 구매하거나 출판사 대표 앞으로 후원금을 보탤 수 있다.
책을 만들면서 달라진 나의 모습 한 가지. 염치가 없어졌다. 근데 염치없이 이렇게 책을 사달라고 당당히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좋은 책이기는 하다. 그거 하나만큼은 자신이 있다.
서론이 길었다. 다음 글부터 본격적으로 책을 만든 이야기로 만나 뵙겠습니다. (갑자기 공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