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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r philosophy Mar 06. 2022

오늘 하루로 지난 내가 없어지지 않아

자신을 증명하는데 피로감을 느끼지 말아요

 신입 시절 제 자신의 어리숙함과 멍청함에 좌절할 때가 많았습니다. '왜 나는 한 번에 이해하지 못하고 또 질문할까', '팀장님 질문에 왜 그런 멍청한 답을 했을까', '이런 거 하나 제대로 못해서 혼자 야근하고 있을까' 등.


속상함에 마음이 한껏 얼룩진 날이면 제 자신이 그렇게 작게 느껴질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경험이 쌓이고 더 성숙해지면, 그때는 더 이상 이런 걱정은 하지 않겠지'라고 위로했던 것 같아요. 마치 '서른 살에는 이런 어른이 되어있겠지'와 같은 막연한 기대랄까요.


나를 증명하는데서 오는 피로감


일을 한지 만 8년, 9년 차에 접어들어서 깨달은 것은 '일을 오래 해도 똑같더라'라는 사실입니다. 회의에서 생각이 채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뭘 말하는지 모르겠다 싶게 이야기하거나, 답도 없이 문제만 늘어놓는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모습이 나 자신에게서 보일 때면 그렇게 후회될 수 없습니다. 회의가 끝나면 머리를 콩 때리고 싶어 집니다.


사람과의 관계는 또 어떻고요. 내가 먼저 동료들에게 주말에는 무얼 했는지, 오늘 점심은 뭘 먹을지 이야기하는 '흔쾌한 사람'이 되자고 다짐해 놓고는 일에 파묻혀 동료한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는 날이 일쑤입니다. 지쳐 보이는 동료에게 커피 한 잔 하자고 생각하고는 몇 주 째 실천하지 않는 스스로의 무심함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집니다.


이런 생각은 비단 저만 갖고 있는 게 아니더군요.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나를 증명해야 한다는 사실에 늘 피로감을 느낍니다. 누가 강요하지 않는데도 스스로 갖게 되는 자기 검열로, 일하는 자의 숙명과도 같습니다.


오늘 하루로 지난 내가 없어지지는 않아


하지만 그동안 깨달은 사실도 있습니다. 오늘 하루 또는 한 순간의 행동과 말이 나라는 사람을 설명할 순 없다는 거예요. 나라는 사람은 오랜 시간 축적해온 경험과 사고의 산물이에요. 찰나의 순간으로 나의 전부를 보여줄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한 명 한 명 그 어떤 존재보다 다층적이고 입체적이니까요.


최근 베이징 올림픽 쇼트트랙 8강전에서 넘어진 최민정 선수가 이런 말을 했더군요.

"어제 넘어졌다고 해서 내가 4년 동안 준비한 게 없어지지는 않는다. 남은 기간 최선을 다해서 준비한 것을 보여드리겠다."


저 역시 제 자신이 미워지는 날이면 이렇게 되새깁니다. '비록 오늘 내 모습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지난 33년간 쌓아온 나라는 사람의 가치와 존엄이 사라지진 않는다고요.' 그 진정성과 노력을 제 자신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은 분명 찾아오고,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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