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이 먼저일 때 비로소 따라오는 것들
꽤 오랫동안 이 문장을 믿고 살았어요.
기분이 준비되면 운동을 하고, 마음이 정리되면 밀린 업무를 처리하겠다고요.
기분이라는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기를 기다리는 것이니까요.
문제는 그 신호등이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미루고 나면 편해질 줄 알았어요.
하지만 경험적으로 그 반대였습니다.
해야 할 일을 뒤로 밀어둔 날이면 퇴근 후에도 머릿속에서 그 일이 계속 맴돌았어요.
쉬고 있는데 쉬는 것 같지 않은 이상한 피로감.
월요일에 처리하면 될 일인데 토요일 저녁부터 슬슬 무거워지는 마음. 아시는 분은 아실 거예요.
잘 해내지 못할 것 같은 불안, 시작조차 부담스러운 일의 크기, 그날의 감정 상태.
그것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어요.
기분이 좋지 않으니 미루고, 미루니 죄책감이 생기고, 죄책감 때문에 기분이 더 나빠지는 순환.
저는 이 고리 안에서 꽤 오래 머물렀어요.
전환점은 사소한 경험에서 왔어요.
어느 날 아침, 몸도 마음도 무거운 상태로 출근했어요.
처리해야 할 보고서가 있었는데 컴퓨터 앞에 앉아서도 한참을 멍하니 있었어요.
'오늘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그런데 습관적으로 엑셀 파일을 열었어요.
별 생각 없이 지난달 수치를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5분쯤 지나자 손이 움직이는 대로 머리도 따라 돌아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점심 전에 초안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로 비슷한 경험이 반복되었어요.
운동이 하기 싫은 날 일단 운동복만 입어봤더니 어느새 밖으로 나가 있었고,
쓰기 싫던 글도 제목 한 줄만 적어보면 다음 문장이 이어졌어요.
기분이라는 조건을 충족시키려 했을 때는 시작조차 못했던 일들이, 순서를 뒤집으니 의외로 풀리더군요.
요즘 저는 출근길에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요.
'오늘 가장 미루고 싶은 일이 뭐지?'
그리고 그 일을 하루의 첫 번째 업무로 놓아요.
잘 해내겠다는 각오가 아니라, 2분만 손대보겠다는 가벼운 마음으로요.
2분이면 이메일 한 통의 첫 문장을 쓸 수 있어요.
보고서 파일을 열고 목차를 잡을 수 있어요.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2분 후에 멈추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물론 매일 성공하지는 못해요.
여전히 기분에 끌려다니는 날도 있고, 2분조차 시작하지 못한 채 하루가 끝나기도 해요.
하지만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런 날에 자책하지 않게 되었다는 거예요.
하루를 100% 생산적으로 보내야 한다는 강박 대신,
어제보다 한 가지라도 더 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기분은 날씨와 같아서 내 의지로 바꿀 수 없지만, 우산을 들고 나가는 행동은 선택할 수 있어요.
의욕이 차오르기를 기다리느라 소모되는 그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행동 하나에 손을 대보는 것.
기분은 그 뒤에 조용히 따라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