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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r philosophy Feb 06. 2022

February'sBook1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다른 직업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건 설레는 일 중 하나입니다. 그중에서도 세속적으로 중요하게 여겨지는 가치인 돈, 명예, 권력과 멀리 떨어져 미지의 분야에 대한 탐구와 발견, 세계의 확장을 향해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가는 직업군에 선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소명' 같은 것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해야만 해서 하는 일이 아닌, 자신의 내면의 부름에 따라 응당 그래야만 해서 하는 '신성함' 말입니다.


한평생 식물을 연구한 미국의 지질학자이자 생물학자인 호프 자런의 책 '랩 걸(Lap Girl)'을 인생 책으로 꼽는 이유도 그런 맥락에서 입니다.


물론 그들의 이야기도 결국 한 인간의 역사(인생사)여서 가까이 들여다보면 고귀한 소명에 이끄는 삶이라기보다는, 생을 유지하기 위한 고군분투에 가깝습니다. 큰 뜻이 있어 그 길을 선택했다기보다는 좋아하고 잘하는 게 그것밖에 없어서, 포기할 시기를 놓쳐서, 남들보다 조금 더 끈기가 있는 탓에 처음 선택한 길을 여전히 가고 있다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누구나 원하는 일을 하고 싶지만 현실과 타협해서 진로를 선택한 경험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는 마음이 조금은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기에 사회가 선망하는 직업과는 거리가 먼, 자신이 선택한 길을 묵묵히 가는 사람들은 존경의 대상이겠지요.


별이 인생의 관심사였던 적은 없다, 하지만 그때의 두근거렸던 기억은 남는다


사실 저는 별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인생에서 별을 본 기억이 별로 없을뿐더러, 학창 시절 지구과학에 큰 흥미를 못 느낀 학생이었어요. 그래서 인생에서 관심 있는 주제로 치자면 별은 못 먹는 음식보다 살짝 앞에 있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그런 저에게도 별이 주인공이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바로 제주도와 단양에서 친구들과 별을 보았을 때입니다. 계획에 없던 일정이었죠. 최대한 하늘과 가까운 높이까지 올라가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이 정말 쏟아질 것 같더군요. 적재의 '별 보러 가자' 노래와 어우러진 그날의 밤 분위기는 평생 잊지 못합니다.


인생의 설렘의 빈도가 확연히 줄어들어가던 때, 오랜만에 자연의 신비로움 앞에 두근거렸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꼭 다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별이 제 마음에 아름다움과 사랑스러움을 한 방울 떨어뜨려준 거 같달까요.


서점의 평대에서 이 책의 발견했을 때, 그때의 설렘이 스쳐갔습니다. 좋은 추억은 그와 관련된 대상을 만났을 때 기분 좋은 반응을 일으키는 모양입니다.


대체 제게 뭘까 싶은 것에 열정을 바치는, 무해하고 아름다운 사람들


그 자리에 서서 열 페이지 가량을 빠르게 읽었습니다. 그때 이 문장에 꽂혔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좋았다. 남들이 보기엔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싸움을 만들어내지도 않을,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요,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꿔놓을 영향력을 지닌 것도 아닌 그런 일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만 수백 년 걸릴 곳에 하염없이 전파를 흘려보내며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  


우리는 살면서 타인에게 상처 주는 사람들을 접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에 둘러싸여, 그들이 던진 말과 행동에 마음이 한껏 다친 날에는 사람과 세상이 전부 미워지기도 합니다. 무해한 존재가 참으로 귀해진 세상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악의도 없는 동물의 존재에 인간이 더 큰 기쁨과 위안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어떤 대상에 순수한 열정을 가진 무해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 듭니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바로 그런 인물들의 이야기여서일지 모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는 적어도 세상살이의 각박함, 사람들의 야박함, 이기에 의해 움직이는 세상의 생리들은 잠시 잊게 되니까요.


천문학과 노교수처럼 나이들 수 있다면


 앞에 있는 상대가 귀여워 보일 때가 있습니다. 바로 자기가 흠뻑 빠져있는 대상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할 때이죠.  책을 읽으며 오늘도 새로운  하나를 가져 봅니다. 저자의 지도교수님처럼 나이가 들어서도 어린아이의 왕성한 호기심으로 천진하게 몰두하고 탐구할  있는 대상이 있다면 그것만으로  좋은 인생이었다 싶을  같아요. 나이가 들어서도 탐구하는 대상에 대해 신나게 이야기할  있는 귀여운 노인이 되고 싶습니다.


"귀엽기로는 내 지도교수님도 만만치 않았다. 일주일에 한 번 대학원생 제자들과 회의를 하셨다. 학생들이 일주일 동안 각자 얼마나 멍청한 일을 했는지 보고를 마치면 교수님은 씩 웃으며 당신께서 일주일 동안 한 일을 자랑스럽게 소개하셨다. 목성이나 토성의 관측자료를 얻은 것에서부터, 동료 학자 누구와 어떤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행성 대기 모델 계산 코드를 어떻게 개선했는지에 대해서, 마치 일주일 동안 그 순간만을 기다려온 사람처럼 즐거워하며 랩 미팅의 마지막 발표를 장식했다. 대학생 시절부터 사용해온 당신의 모델을 육십이 넘도록 끊임없이 바꾸고 고치고 손보는 사람이었다. 그것도 그토록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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