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의 순간, 행복의 다른 이름

『모든 존재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 강남순, 행성B, 2025

by 북칼럼니스트 윤정

휴대전화의 카메라가 지금만큼 좋지 않을 때, 그리고 디지털 카메라가 나오기 전, 그때는 필름 카메라가 참 귀했다. 카메라가 집에 없는 이는 멀리 여행이라도 떠나게 되면 카메라가 있는 집에 가서 빌려오기도 했다. 일회용 카메라가 나왔을 때는 더 이상 카메라를 빌리지 않아도 되었다. 가격이 그다지 비싸지 않았고 누구나 쉽게 구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일회용 카메라는 말 그대로 일회용이라 안에 들어 있는 필름을 한 번만 사용할 수 있었다.


사진이 잘 찍혔는지 확인한 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삭제하고 다시 찍을 수 있는 지금과는 달리 필름 카메라는 인화하기 전까지 사진의 상태를 알 수 없었다. 필름의 정해진 수만큼만 찍을 수 있는 특징 때문에 사진을 찍을 때는 피사체를 바라보는 눈과 셔터를 누르는 손의 합이 굉장히 중요했다. 한 컷 한 컷 신중하게 눌러야만 했다. 24번의 찰나의 순간만을 기록할 수 있었다.


우리는 생의 모든 순간을 기억할 수는 없다. 일생 중에 어느 한 순간순간만을 기억할 뿐이다. 마치 필름 카메라로 순간을 담는 것처럼 말이다. 정해진 수만큼의 컷을 다 찍으면 더 이상 사진을 못 찍는 것처럼, 생은 언제나 유한함을 가지고 있다. 정확한 시점을 모를 뿐 누구나 죽음 앞에 놓인다. 호명의 철학자 강남순은 그의 저서 『모든 존재는 행복할 권리가 있다』에서 죽음을 앞두고 삶을 마감하는 자리에서 비로소 ‘살아감에 대하여 배운다’는 말은 남긴 자크 데리다의 인터뷰를 소개한다. 강남순은 ‘살아감은 그저 저절로 알게 되지 않으며, 죽음에 이르기까지 계속 배워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고 고백한다.


죽음 앞에서 주마등처럼 스치는 인생의 순간들, 그 ‘순간’이야말로 자신이 살아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증거이지 않을까? 죽음에 이르기까지 계속 배워야 하는 살아감이라는 것은 매일매일 우리가 필름에 담고 싶은 순간을 고르는 일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순간을 필름에 담아야 할까? 아마 자신에게 의미 있는 장면을 고르지 않을까? 그 장면은 초등학교 입학식 날이거나 부모가 된 날 또는 아이의 첫 이가 빠지던 날일 수도 있다. 화분에서 자라는 나무의 새 잎이 나온 사진이거나, 비행기에서 내다본 구름 사진일지도 모른다. 한라산 정상에 올라갔던 날과 할머니의 생신날 온 가족이 둘러앉아 찍은 단체 사진을 고를 수도 있다. 이런 순간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묻는가.


“당신은 행복한가. 무엇이 행복의 경험과 감정을 갖게 만드는가. 내가 행복한가 아닌가에 대한 정답은 없다. 행복의 외적 기준이 있어서, 누구나가 다 측정할 수 있는 ‘행복 평가 지수’도 없다.”


강남순의 말처럼 행복은 정답이 없다. 그는 돌연한 죽음 앞에서도 우리는 모두 ‘죽음을 향해 가는 존재’임을 깨닫고,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존재론적 물음을 던지며 나에게 다가올 죽음을 마주하라고 권고한다.


“나는 행복한가.

무엇이 나를 행복하게 하는가.

나의 행복을 지켜내고 만들어 가기 위해서,

나는 무엇을 결단하고 행동해야 하는가.”


이러한 물음과 조우하는 것이 절망적인 세계의 늪에 침몰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창출하는 내 삶에로의 초대장이라고 강남순은 힘주어 말한다. 삶의 의미와 내가 살아있는 의미 나아가 내가 살아가는 의미를 주체적으로 질문하고 계속해서 그 질문과 끊임없이 씨름하는 일. 그 찰나의 순간을 발견하는 것이 바로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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