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무던한 위로

『볼 수 있는 동안에』 차경, 책과이음, 2025

by 북칼럼니스트 윤정

어린 시절 뚜렷하게 기억나지 않는 사고로 인해 사시가 되었고, 점점 한쪽 눈의 시력을 점점 잃어가는 사람이 있다. 그는 어릴 때 친구들로부터 자주 놀림을 받았고, 상대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왼쪽 눈의 이상을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으려고 부단한 노력을 해야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의 직업은 포토그래퍼다.


『볼 수 있는 동안에』를 쓴 차경 작가의 이야기다. 한쪽 눈으로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정상적인 눈을 가진 사람들보다 몇 백 배의 노력을 들여야 했을 것 같다는 생각과 어차피 뷰파인더는 한쪽 눈을 감고, 다른 한쪽 눈으로 봐야 하니까 눈이 이상하다는 것이 티가 덜 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는 세상의 수많은 편견과 싸워야 했지만, 가장 큰 적은 바로 자신이었다. 좋아하는 장면을 찍고, 웃는 얼굴이 가득한 순간을 찍고 싶으면서도 자기 눈의 이상을 들키지 않을까 항상 노심초사하고, 상대의 얼굴을 쳐다보는 용기를 내지 못하며 살아왔다. 그러다 보니 상대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것도 어려웠고, 누군가의 마음에 기대는 일도 그에게는 힘든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특정한 색을 구분하지 못하는 색약을 가진 지인과 친오빠에게 흑백사진을 찍어 주게 되었다.


“아마도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을 것이다. 나는 한 번도 나를 성심껏 위로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눈이 불편한 나를 진심으로 배려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사진으로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은 곧 사진으로 나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기도 했을 거라는 뒤늦은 자각이 찾아왔다.”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타인의 위로를 목말라 하는가. 그러나 때로 타인을 위로함으로써 자신이 위로받기도 한다. 똑바로 보고 싶지만 그렇지 못해 늘 자신의 한계에 부딪혀야 했던 그는 더 이상 숨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으며, 마음 안에 숨겨 놓고 싶었던 부끄러움이 먼지가 되는 순간을 맛 보았을 것이다.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을 때 ‘위로’라는 단어가 주는 오묘한 안정감으로부터 자신의 집착을 끊어낼 수 있다.


‘눈으로 대상의 존재나 형태적 특징을 알다’라는 사전적인 뜻이 있는 ‘보다’라는 동사는 눈으로 본다는 뜻 외에도 아주 많은 뜻으로 쓰인다. 기회를 노리거나, 아이를 맡아서 보살피는 일도, 상황을 미루어 짐작하고, 상대의 형편을 헤아리는 일도 ‘보다’라는 단어를 쓴다. 그런가 하면 먹다, 가다, 하다 등의 동사 뒤에서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시험 삼아 행하는 의미의 보조 용언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결국 ‘본다’는 말은 ‘안다’는 말과 같다.


차경의 ‘본다’는 이제 ‘안다’이다. ‘본다’는 말의 의미를 끊임없이 자문하던 상대를 알기 전에 자신을 먼저 잘 아는 사람이 되었고, 자신을 깊이 알기에 피사체의 온전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눈을 가지게 되었다. 벽을 허물고 마음을 딛고 타자의 얼굴 앞으로 다가간다. 자기 앞의 피사체에 스며들어 있는 빛나는 면모를 발견한다.


세상을 향해 한 발짝 나아간 그는 ‘파이널리 미’라는 이름으로 영정사진을 찍는 프로젝트를 10년 이상 해왔다. 산 사람이 죽음에 대해 알 수는 없지만, 잘 살아냄으로 좋은 죽음을 마주할 수 있도록 지금 ‘잘’ 살고 있는 나를 기록하자는 권유다. 아무런 지시나 가이드 없이 촬영하지만, 분명 그는 기억되고 싶은 얼굴을 발견하려 몹시 애썼을 것이다. 세상 떠날 때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새겨질 얼굴을 남겨 놓는 일은 기억의 작업이고, 포옹의 작업이며, 도래할 죽음에 대한 애도의 작업이다. 과거를 어루만지며 앞으로 걸어가는 일이다.


화면 가득 웃는 얼굴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차경 작가는 자신의 눈이 보이는 한 그들의 얼굴에 웃음이 머물렀으면 좋겠고, 그 웃는 장면을 선물하고 싶다고 한다. 그것이 그들이 자신에게 보내준 넓은 마음에 보답이 될 것만 같아서, 마음의 빚을 갚기 위해 그는 오늘도 사진을 찍는다. 나는 차경의 피사체가 되고 싶다. 뷰파인더 밖으로 나의 무던한 미소를 발견하게 하고 싶다.


tempImage9wmXA2.heic 『볼 수 있는 동안에』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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