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문장들』, 박산호, 샘터, 2025
같은 행동이라도 해석은 같지 않다. 반응은 때에 따라 혹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더운 여름이니까 반가운 마음에 얼음이 가득한 시원한 음료를 건넸다. 보통의 사람은 호의로 받아들인다. 설령 나의 지금 상황에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고 해도 상대의 행동에 감사의 마음을 표시한다. 그런데 혹 누군가 ‘차가운 건 못 마시는데 어떻게 이런 걸 마시라고 주냐’라고 말한다면 음료를 건넨 이는 무안해지고 말 것이다. 어린아이의 말이었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는 아이들은 상대의 행동에서 마음마저 알아차릴 수 없다. 하지만 어른이 그랬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무안함을 감추고 당신이 그렇다는 걸 미처 몰랐다고, 미안하다고, 사과할 수는 있지만 뒤돌아서며 느끼는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솔직함과 무례함의 아찔한 경계에서 우리는 얼마나 위태로운가.
어른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다. 모든 아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지만 나이가 어른임을 증명해 주지 않는다. 나이를 먹었다고 해서,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어른은 아니다. 단지 성인일 뿐이다. 누군가 ‘어른이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느냐’라고 질문했을 때,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것보다 좋아하지 않는 사람, 또는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다정하게 대해 주는 사람이 어른인 것 같다고 대답했다. 좋음을 표현하기보다는 싫음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 어른스럽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말이 입 밖으로 빠져나가는 순간, 아차! 말과는 다르게 내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아차렸다. 싫음을 표현하지 않는 것이 자신의 감정을 꾸미거나 감추는 것이 아니고 애초에 그런 감정이 없는 상태라면 어떨까? 어쩌면 진짜 어른은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호오의 감정이 없는, 순수한 마음의 소유자가 아닐까 생각했다. 세상의 어떠한 편견도 없이 내 눈앞의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태도를 지닌 사람, 보이지 않는 면을 보려고 애쓰는 사람 말이다.
“보이지 않는 인간을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때 필요한 건 상상력이다.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해 보면, 세상엔 나와 내 가족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걸 인식하게 되고 그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눈에 보이면 그때부터 세상이 달라 보이고 더 넓어진다.”
번역가이면서 작가인 박산호의 『어른의 문장들』 속 한 구절이다. 진정한 어른이 무엇인지 오래 생각하고, 수많은 어른을 만나며 삶을 번역해 온 그는 자신이 고른 단단한 문장을 통해 어른의 자세와 태도를 일러 준다. 나아가 사회가 정하는 정상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해서 보이지 않는 존재로 밀려나고 소외되는 사람들이 늘어가는 시대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어렸을 때는 마흔쯤 되면 누구든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하해와 같은 마음을 갖게 될 줄 알았다. 살아 보니 도무지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내 안의 아이를 발견하고 같은 편이 되어 주는 일도, 타인의 어깨를 토닥이는 일도, 시간을 위로로 가져다 쓰는 일도 모두 어렵기만 하다. 그럼에도 매일 어른이 되려고 노력하는 우리는 서로의 응원이 필요하다. 언젠가 분명 어른이 될 거니까. 고요하고 단단한 어른의 문장들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