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색칠해 나가는 과정

『무채색 삶이라고 생각했지만』김동식 지음, 요다, 2024.1.11.)

그를 처음 만난 것은 7년 전이다. 한꺼번에 세 권의 소설책을 낸 김동식 작가의 북토크 자리였다. 그는 소개팅에 처음 나온 시골 총각 같은 순박한 얼굴에 어색함이 역력했다. 고개를 숙인 그는 앞에 앉은 사람과 눈도 잘 맞추지 못했다. 김동식 작가의 자리에 작가는 없고 전혀 ‘작가’스럽지 않은 그가 앉아 있었다. 그가 바로 김동식 작가였다. 첫 만남은 신선했다.


‘중학교 중퇴의 주물공장 노동자’, ‘첫 단편 소설을 쓰고 그 후 일 년 반 동안 소설 300편을 쓴 작가’라는 알려진 사실 말고 좀처럼 그에 대해 알 수 없었다. 그의 SNS에는 자신의 이야기는 거의 없고 식당에서 혼자 먹는 밥상 사진과 가끔 검정 비닐봉지 사진이 올라왔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의 셀피가 올라왔다. ‘검은 봉지 사진 말고 작가님 얼굴이 반갑네요.’라고 댓글을 남겼다. 드디어 자기 자신을 좋아하기 시작한 것 아닐까.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무채색 삶이라고 생각했지만’은 어린 시절부터 작가가 되기까지 ‘김동식’에 관한 이야기다.


“사실 제가 주물 공장 노동자가 아니었다면 제 책이 이렇게 잘될 일이 없었죠. 책이 좋아서 잘됐다기보다는 10년 넘게 공장에서 일만 하던 사람이 책을 냈다는 서사 때문에 잘된 거죠. 그 지점을 잘 이용해서 덕을 본 거죠.”


누군가 김동식에게 그가 공장 노동자였기 때문에 뜬 거라고 한다면, 그게 사실이긴 하지만 남들의 공격이 두려워 먼저 인정해 버리며 아무렇지도 않은 척 철벽을 쳤다고 한다. 선함과 두려움이 함께 담겨있었던 오래전 그의 눈빛이 비로소 이해가 가는 순간이었다.


“근데 왜 꿈도 아닌 주제에 작가가 될 수 있었을까?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내가 글쓰기를 시작한 인터넷 게시판에 답이 있다. 지극히 사소한 우연이었다.”


지극히 사소한 우연이 필연이 되게 하는 묘수는 무엇일까. 그가 소설을 써서 올렸던 인터넷게시판에는 ‘반말 & 욕설 금지’라는 규칙이 있었다. 그는 비난이나 악플 대신 자신의 글을 읽어 주고 지지해 주는 응원의 댓글에서 매일 쓰는 힘을 얻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나는 그게 다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집 앞 골목에서 놀던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다가, ‘저 아저씨도 나처럼 머릿속에서 생각을 하겠네?’라는 질문과 함께 모든 사람의 머릿속에 ‘생각’이 들어 있다는 깨달음에 불현듯 큰 충격에 휩싸였다고 한다.


생각은 아무나 할 수 있지만, 생각을 글로 쓰는 일은 누구나 하지 않는다. 격려의 댓글이나 그의 노동 환경은 단지 생각을 더 많이 하는 데 도움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보이지 않는 생각을 꺼내어 살아있는 이야기로 만들어 내는 사람이 된 것은 ‘생각’을 발견한 어린 시절의 김동식 덕분이다.


처음 소설을 쓸 때는 ‘설마 사람이 그렇게까지?’라고 항변할 수 있는, 살면서 겪고 싶지 않은, 평범하게 악한 인간의 모습들을 썼지만, 요즘에는 인간을 사랑해서 생기는 감정들과 인간의 좋은 점을 탐구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그의 관심사는 사람이다. 사람을 탐구하는 사람, 김동식은 어마어마하다. 2년 전, 등단 5년 만에 1,000편을 넘는 소설을 썼다. 그의 소설에 외계인이 종종 등장하는데, 가끔 ‘김동식이 진짜 외계인이 아닐까’하는 의심이 든다. 7년 전 그를 처음 만난 날, 사람에게 애정을 가지고 꾸준히 글을 쓰겠다는 그에게 나는 앞으로 당신의 행보를 지켜보겠다고 했었다. 생각을 멈추지 않는 그가 있기에 나의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다.


나는 글 잘 쓰는 세상 모든 작가를 질투하는데, 김동식에 대해서만은 눈곱만큼의 질투심도 생기지 않는다. 가장 순수하고 열렬하게 김동식을 응원한다. 왜 그럴까? 아마도 그의 순수함에 우리가 순식간에 물들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는 재밌는 글만 써서 보여주는 작가가 아니라 읽는 자들을 모두 물들이는 작가다. 그래서 특별하다.


22.무채색 삶이라고 생각했지만 표지.jpeg 『무채색 삶이라고 생각했지만』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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