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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r Sera Jun 02. 2023

회만 당일바리가 맛있는 게 아닙니다


고등학교 때 성당 주일학교에서 매주 간식으로 소보로 빵을 줬다. 그날따라 소보로 딱지가 두툼하고 바삭하니 참 맛있었다. 소보로빵을 맛있게 먹었는데, 급하게 먹어서 그랬는지  급체해서 고생을 했다. 보통은 어떤 음식을 먹고 체하면 그 음식은 잘 먹지 않게 되지만 다음 주에도 또 소보로 빵을 맛있게 먹었다. 빵 먹고 체했는데도 너무 잘 먹는다며 신부님이 나를 "빵순이"라고 불렀다.


빵이 밥 메뉴만큼 다양해진 요즘 맛있는 빵이 많다. 빵순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여전히 빵을 좋아한다. 유행하는 빵은 꼭 먹어야 직성이 풀린다. 도넛 맛집, 에그타르트 맛집, 크로플 맛집, 스콘 맛집 등 유명한 빵집은 꼭 빵지순례를 떠나야 한다. 질릴 때까지 먹어야 더  찾지 않게 되는 냥 하나만 질릴 때까지 먹는다.


오랜만에 만난 D가 '네가 좋아하는 빵'이라며 봉지를 내밀었다. 시오빵 세 개가 들어있었다. 요 근래 꽂힌 빵은 시오빵이다. 시오빵은 소금빵의 또 다른 이름인데, 일본말로 시오가 소금이라는 뜻이다. 빵 위에 제법 굵은소금 알갱이가 뿌려져 있다. 손가락 두께만 한 스틱버터를 반죽 안에 넣고 굽는데, 반죽 안의 버터가 녹아 빵 안쪽에는 터널처럼 빈 공간이 생긴다. 겉껍질은 얇고 바삭하며 소금 알갱이가 씹혀 짭조름하다. 안은 발효빵답게 씹을 때마다 쫄깃하면서도 고소한 버터의 풍미를 느낄 수 있다. '겉바속쫄' 이것이 바로 소금빵의 매력이다.


앉은자리에서 한 개를 맛있게 먹고, 남은 두 개는 아껴먹으려고 봉지에 넣어 두었다가 다음 날 꺼내 먹었다. 어제의 그 맛이 아니었다. 겉면은 눅진해져서 특유의 바삭함을 잃었고, 속의 쫄깃함도 사라졌다. 봉지를 꽉 묶어서 밀봉하면 빵이 가진 자체의 수분으로 빵이 눅눅해지고, 또 봉지를 열어두면 전분의 노화현상으로 인해 빵이 퍽퍽해진다. 부득이 당일에 먹지 못하는 경우에는 냉동보관했다가 먹기 전에 해동해서 먹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어떤 방법도 구운 날의 맛과 같을 수는 없다. 빵순이로 산 빵생 30년 동안 수많은 빵을 먹어봤지만 빵을 가장 맛있게 먹는 최고의 방법은 오직 당일에 먹는 것뿐이다. 사랑하는 빵을 대하는 자세이다.


그 자리에서 먹지 않고 넣어두면 굳어지거나 질겨지는 빵 같은 말이 있다.


"미안해요."

"사랑해요."

"고마워요."


마음의 말이다. 말하지 않으면 좀처럼 알 수 없는 마음의 말들. 꺼내어 보여줘야 하는 마음의 말은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무뎌진다. 감정의 농도는 연해지고 절박함은 흐려진다. 물론 시간을 두고 익혀서 전해야 하는 말이 있다. 같은 말이라도 나중에 하면 좋은 말도 있다. 하지만 마음의 말들은 아끼지 않는 게 좋다. 소금빵처럼 질겨지지 않게 얼른 건네야 하는 말이 있다. 특히 이런 말은 바로 하는 게 좋다.


"오늘 함께 해 줘서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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