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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ur Sera Oct 25. 2023

코가 솔깃

냄새로 말을 거는 것들이 있어요


작업실이 생겼다. 에어컨이 빵빵하고 스낵바도 빵빵하다. 쾌적하고 조용해서 집중도 잘 된다. 집에 있으면 빨래도 아우성이고 거실의 먼지도 나에게 말을 거는데 여기 나오면 오직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어서 '너무너무너무너무'좋다.  최대의 단점은 집에서 조금 멀다는 점. 지하철 1번 환승해야 하고 사람이 많은 2호선을 타야 한다는 점. 자리가 없어서 서서 와야 한다는 점. 집에서부터 1시간이나 걸린다는 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매일 와서 글을 쓰고, 생각을 하고, 꿈을 꾼다. 비로소 나를 만난다.


개찰구에 카드를 찍고 나오면  맨 처음 나를 반겨주는 가게는 꽃집이다. 꽃을 사고 싶지만 눈으로 보고 지나친다. 꽃 가게와 그 옆 옷 가게를 지나면  빵집이 나온다. 지하철 역사 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빵집이다.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에 비해 값이 조금 저렴하지만 꽤 다양한 종류의 빵을 판다. 'OO베이커리'보다는 '빵집'이라는 말이 왠지 더 잘 어울리는 곳. 지하철 문이 열릴 때부터 나를 유혹한다. 후각이 예민한 나는 늘 빵 굽는 냄새에 끌린다. 냄새만 맡아도 지금 무슨 빵을 굽고 있는지 대번에 알 수 있다.


어제는 배도 조금 고프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커피 번의 향기가 나를 홀렸다. 나도 모르게 크림치즈 커피 번 앞에 서서 손을 내밀고 있었다. 손가락을 아주 살며시 대보니 역시나 따듯했다. 안 살 수가 없게 끌렸다. 크림치즈 커피 번은 매우 달았고 맛은 냄새에 못 미치는 그런 맛이었다. 냄새가 끝내주는 아니 아니 냄새만 끝내주는 번.


오늘은 든든하게 밥도 먹고, 비타민까지 챙겨 먹고 왔다. 운이 좋게도 드문드문 앉아서 왔다. 지하철 문이 열리고, 내려서 두어 발자국 걸어가니 안 봐도 보인다.  오늘은  소보로가 나를 부른다. 귀를 닫아도 코로 들리는 소보로의 목소리

"나 지금 막 오븐에서 나왔거든. 자기 알지? 소보로 딱지 얼마나 바삭하고 달달한데. 그것만 떼서 먹어도 완전 jmt이잖아?"


냄새를 이기지 못한 나는 결국 소보로를 샀다.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또 빵의 유혹에 넘어가고 말았다. 아메리카노와 따뜻한 소보로를 먹으면 딱 좋겠다고 생각하며 커피를 사서 부지런히 걸었다. 소보로 딱지만 살살 떼서 먹으며 행복한 미소를 짓는 나를 상상했다. 작업실에 들어와 가방도 풀지 않고 앉아서 소보로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속았다"  


역시 그랬다.  소보로 딱지는 달기만 달고, 빵은 얇아서 먹을 것이 없었다. 내가 상상했던 소보로의 맛이 아니었다. 또 냄새에 속았다. 어제는 번에 속고, 오늘은 소보로에 속았다.


한갓 소보로에게도 속는 나는 가끔 당신에게도 속는다. 당신이 웃으면 그게 내 행복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저 당신이 좋으면 나도 좋다고 애써 다짐한 적도 더러 있었다. 매번 그렇게 넘기고 또 넘기다가 정작 내 행복이 뭔지 모르겠는 나를 만났다. 당신 때문에 힘들었던 날도 있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런 날도 그냥 흘러 가게 두기로 했다. 흘러가서 자연스러워지기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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