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명(命名)함으로 명명(明明)하기를

『식물의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김영희 지음, 행성B, 2024

“짝은언니님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스타벅스가 다른 커피 전문점처럼 진동벨을 쓰지 않는 이유는 고객의 이름을 부르면서 한 번 더 눈을 맞추며 소통하기 위한 의도이다. 주문한 음료를 건넬 때 스타벅스 애플리케이션에 등록된 이름을 호명하는 ‘콜 마이 네임’ 서비스는 전 세계 스타벅스 중에서 한국이 최초로 시행하였다고 한다. 이름을 짓는 것은 나지만 부르는 것은 상대방이다. 이름은 관계의 문을 여는 문고리이다.


식물의 이름은 다양한 이유로 탄생한다. 향기가 천리를 간다고 해서 천리향, 사람을 살리는 무환자나무, 줄기가 댕강댕강 잘 부러진다고 해서 댕강나무, 꽃이 피는 모습이 고봉으로 담은 쌀밥 같아서 이팝나무, 노란 좁쌀로 밥을 지어 놓은 것 같다는 뜻의 조팝나무 등 주로 생김새, 생태, 전설, 먹을 수 있는지 등에 따라 지어진다. 이 책은 국립수목원 등에서 연구자로 일하면서 이름 없는 들꽃에 ‘쇠뿔현호색’이라는 이름을 지어준, 식물 전문가가 쓴 이름에 관한 이야기로 식물들의 이름과 이름에 얽힌 역사, 식물이 태어나고 살아가는 모습, 그 식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섬세하게 안내한다.


봄이 오면 어디서든 흔하게 볼 수 있는 꽃 중에 민들레가 있다. 민들레는 누가 부러 심지 않아도 바람에 날려 씨를 퍼트리는 식물인데, 국가표준 식물목록 2020년 개정판에는 민들레의 이름이 없어졌다. 2017년 개정판에는 있었는데, 털민들레의 이명(정식 이름 외에 달리 불리는 이름을 말한다)으로 처리되어 하루아침에 이름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름이 바뀐다고 해서 민들레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있던 호적에서 사라진 것 같고 왠지 쫓겨난 것 같아 마음이 쓰라렸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후 2024년에 민들레의 이름이 다시 돌아왔을 때, 흔하게 자라는 풀 한 포기에도 마음이 든든해지고 감격스러워지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동네 산과 골짜기, 풀밭들을 혼자 휘적거리고 다니는 것을 좋아했던 저자는 식물학자가 될 운명이었는지, 혼자만의 탐사를 즐기곤 했는데 난생처음 본 꽃을 마주하게 된 후로 매년 봄마다 그 꽃이 피기를 기다렸다. 그 식물이 ‘현호색’이라는 식물과 비슷한데, 솔잎처럼 가늘다는 특징이 있어 ‘솔잎현호색’이라고, 나름대로 작명해서 불렀다. 아무리 식물도감을 뒤져도 솔잎현호색은 없었고, 자신의 동네 바깥에서는 솔잎현호색을 만나지 못한 김영희 작가는 그 식물에 ‘쇠뿔현호색’이라고 명명하여 신종 식물로 발표하게 된다. 쇠뿔현호색의 학명(세계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생물의 이름을 말한다)은 이 Corydalis conupetala Y.H.Kim & J.H.Jeong이다. 쇠뿔현호색의 이름 안에는 명명자 김영희의 이름도 들어있다.


이름 짓는 행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행동이다. 명명하는 것 자체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아무 사이가 아니었던 사이는 조금 가까워지고, 각별한 사이에서는 그 의미가 더욱 커지기도 한다. 내가 이름 붙이는 것은 나만의 것이 되는 마술 주문 같다. 이름은 그저 글자이지만 입으로 소리 내어 부르면 곧 살아있는 말이 된다. 어떤 이름으로 불러주느냐에 따라 그 말은 살아서 빛을 내고, 불리는 내내 그렇게 살게 한다. 이름이란 얼마나 좋은 위안인가. 명명(命名)함으로써 명명(明明)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름의 신비이다.


tempImageUOx4EN.heic 『식물의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김영희 지음, 행성B,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