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간명한 사랑

『고양이들』 이은혜, 꿈꾸는인생, 2024

by 북칼럼니스트 윤정



마리 앙투아네트 같은 도도함과 고아함을 발산한다. 자태는 꼿꼿해서 고혹적이고 눈빛은 장미 가시처럼 날카로워 치명적이다. ‘묘수를 부려서 나의 집사로 만들 테야’라고 눈으로 말하는 존재가 있다.


사람들은 고양이를 좋아하는데 정작 고양이는 인간에게 쉬이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다. 가끔은 주인을 외롭게 만들기도 하지만 세상의 모든 고양이가 집사의 모든 순간을 외롭게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무심한 듯 걸어가다가 어느새 틈을 비집고 곁으로 다가온다. 동그랗게 말아 쥔 집사의 손이 이마를 만지고 머리를 쓰다듬고 목 뒷덜미를 스치면 마침내 고양이의 눈은 가늘고 작아진다. 손길에 묻은 다정함을 온몸으로 만끽할 때, 더 행복한 것은 집사다. 그 교감은 온전히 고양이와 집사 둘만의 것이다. 다른 존재들은 절대 눈치채지 못한다.


볕 좋은 어느 낮, 창가에 나란히 앉아 서로에게 등을 기대고 하늘을 올려다본다. 각자 다른 일을 하다가 불현듯 눈이 마주친다.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을 몰래 훔쳐보기만 해도 좋다. 살며시 다가와 따스한 품을, 부드러운 손길을 원한다면? 아! 아! 그것은 아마도 구원.


고양이를 키워보지 않은 내가 ‘구원’이라고 칭한 그 미묘한 기분을 말해주는 책이 있다.

이은혜의 『고양이들』은 저자가 그동안 지면에 기고했던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를 모은 책으로,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를 통해 그가 느끼고 배운 모든 감정의 기록이다. 그가 가진 애정의 일부는 고양이에게 물려받았는데, 고양이와 주고받은 애정은 그 어떤 경험과도 다르며 “고양이와 함께 산다는 건 미처 구하지도 못했던 구원을 매일 받는 기분이라는 것”이라 말한다.


우아하고 당당하게 집사의 모든 것이 제 것인 양 누리는 존재, 평균 15년의 짧은 생을 살지만 평생 그리워지게 만들고 마는 존재, 집사를 햇살 아래 아이스크림처럼 흐물흐물 녹게 만드는 존재, 그저 존재함으로 불면의 긴긴밤을 버틸만하게 해주는 존재. 고양이의 불가해한 존재론에 대해 끊임없이 들려준다. 이은혜 작가는 인간의 시간보다 빠르게 흐르는 고양이의 시간을 붙잡을 수 없기에, 반려동물과 살아가는 건 ‘나보다 먼저 늙는 아이를 키우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내 어린 고양이가 어느새 나를 앞질러 늙고 있음을 절감하는 나날들이다. 사랑하는 존재의 늙음을 보는 건 정말 쉽지 않지만, 그만큼 생의 유한성과 소중함을 절절하게 깨닫는 일도 없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감정은 자신이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완전하게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모성애나 부성애,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의 상실감이나 그들은 향해 품은 측은함 같은, 관계에서 오는 감정들이 특히 그렇다. 그런 감정들은 때로 사람이 아니라 반려동물과의 사이에서 느끼기도 한다. 저자를 비롯한 모든 집사들은 고양이와의 관계를 통해 글만으로는 도저히 배울 수 없는 인간을 사랑하는 태도와 생명체에 대한 예의와 존중을 체득한다. 상실과 애도를 배우고, 만남 그 너머에 도래할 이별까지도 기꺼이 감내하고 기다리는 법을 알게 된다. 순리에 우리의 생을 맡길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하찮음을 깨닫는다.


살아가는 것은 죽어가는 것이라는 생의 아름다운 질서가 숨겨져 있는 문장에 밑줄을 그으며, 눈물을 흘리며,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집사가 되지 않을 테야’라고 다짐한다. 그러나 죽은 이후에도 내내 마음은 살아 있어서 조금씩 죽어감이 마냥 슬프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선생으로는 단연 묘 선생과 견 선생이 최고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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