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는 천하무적』 우치다 다쓰루, 유유, 2025
짧지 않은 인생을 살면서 여러 선생을 만났다. 유아 교사 시절, 이상한 내 젓가락질을 따라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밥을 먹는 데는 지장이 없었지만, 아이들이 평생을 이렇게 젓가락을 사용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아찔했다. 아이들에게 가르쳐 주기 위해서 나는 올바른 젓가락 사용법을 다시 배워야만 했다. 서른 살에 젓가락질을 새로 배웠다. 가르치기 위해 배워야 했던 나의 젓가락질 선생님은 7살 꼬마 친구들이다.
‘선생’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진짜 ‘선생’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제자 된 사람의 자세라고 생각한다. 누구를 만나든지 상대방이 나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하며 무엇이든 그에게 배우겠다는 태도를 갖는 것이다. 겸손과는 다른 마음이다. 나를 낮추지 않으면서 상대를 높일 수 있다. 배움의 자세를 가지면 아이도 선생이 되고, 고양이도 선생이 된다. 세상 도처에 무수한 선생이 생긴다.
소크라테스는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에서 앎이 출발한다고 했다. 상대가 무엇을 얼마나 더 많이 알고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배우고자 하는 ‘나’의 상태이다. 나의 상태를 내가 알아차리는 것이 배움의 시작이다. 우치다 다쓰루의 문장을 읽었을 때 소크라테스의 말이 생각났다. 고대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이미 죽고 없지만, 우치다 다쓰루는 살아있다. 현재를 사는 우리는 현대의 철학자가 보내는 시그널을 알아들어야 한다.
우치다 다쓰루의 『목표는 천하무적』은 30년 넘게 수련하며 체득한 무도에 관한 이야기를 모은 책으로 무도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와 힘을 기르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삶의 능력은 남과 비교하는 것이 아니며, 비교의 대상은 오직 ‘어제의 나’뿐이라고 말한다. 그의 수많은 저서 중 겨우 세 편만 읽은 사람으로서 그에 대해 말하는 것은 성급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본 그는 죽을 때까지 배우면서 배우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아직도 누군가를 스승으로 모시고, 또 마르크스와 레비나스를 그들의 언어가 아닌 온전히 자신만의 언어로 말하는 사람, 살아감으로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사람.
“가르친다는 것의 본질은 ‘오지랖’이다. 교육이란 ‘배우고 싶은’ 사람이 오기를 쭉 기다리는 일이다.”
남들이 교육의 사상이나 기술, 목적이나 효용을 말할 때 그는 가르치는 일에 담긴 숭고한 마음을 오지랖이라고 말한다.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을 뜻하는 오지랖은 관심의 다른 말이고 애정의 다른 말이다. 그는 ‘제자를 들인다’는 말은 ‘모르는 것’이라도 다음 세대에 전해야 하는 절박한 포지션에 서는 일이라고 했다. 그 말은 모르는 상태에 있는 상대를 내 적수나 하수로 보지 않고, 내가 다독이고 함께 정진하여 끝내 다음 세대에게 앎을 전달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오지랖이 넓은 사람일수록 많은 것을 덮어 줄 수 있다. 그것은 삶을 대하는 태도이고, 자세이다.
그는 천하무적을 세상에 겨룰 만한 적수가 없다는 뜻이 아닌 세상의 그 누구도 나의 적으로 두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모르는 것이라도 덮어 주겠다는 오지랖의 마음이야말로 곧 천하무적의 마음이다. 그럼 세상 모두가 다 내 편이 된다. 오지랖의 승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