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위선자』 맥스 비어봄, 사자와 어린양, 2025
조각가 피그말리온은 아름다운 여인상을 조각하고, 갈라테이아(Galatea)라 이름 지은 뒤 마치 살아 있기라도 한 것처럼 진심으로 사랑한다.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는 피그말리온의 지극한 사랑에 감동하여 갈라테이아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준다. 진짜 여자 사람이 된 것이다. 간절히 원하고 기대하면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그리스 로마신화로, 예언이나 생각이 이루어질 거라고 강력하게 믿음으로써 그 믿음을 실제로 이루어지게 만드는 자기 충족 예언 또는 피그말리온 효과라고도 한다.
영국의 유명한 풍자화가이며 극평가인 맥스 비어봄의 소설 『행복한 위선자』에는 또 다른 피그말리온이 있다. 그의 이름은 ‘조지 헬’. 그는 부유하지만 허랑방탕하고, 무시무시한 인상 때문에 ‘도깨비 왕’이라고 불렸다. 어느 날 그는 오페레타(소형 오페라) 공연에서 어린 무용수 제니 미어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갑자기 무언가가 그의 심장을 날카롭게 찔렀다. 너무 아파 벌떡 일어난 그가 고개를 돌렸을 때, 날개를 단 웃는 아이가 손에 활을 들고 어둠 속으로 재빨리 날아가는 것을 본 듯했다.”
자신의 부유함을 자랑삼아 사랑을 고백하지만, 제니는 “저는 성자와 같은 아름다운 얼굴을 갖고 있는 남자에게 저의 참사랑을 바칠 거예요”라고 답한다. 조지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세상에서 가장 성스러운 얼굴 형태를 한 밀랍 가면을 쓰기로 결심한다. 성자의 가면을 쓴 뒤 ‘조지 헬’에서 ‘조지 헤븐’으로 이름을 바꾼다. ‘헬’에서 ‘헤븐’이라니, 가면이 지옥에서 천국으로 가는 열차라도 된 듯 조지의 세상은 돌연히 달라진다. 가면을 쓰고 조지는 제니와 사랑을 나눈다. 그러던 어느 날 조지는 놀랍게도 가면과 똑같은 얼굴로 변하게 된다. 제니가 그토록 바라던 성자와 같은 얼굴로 말이다.
피그말리온과 조지 두 남자의 공통점은 구애다. 그토록 갈망한 ‘사랑’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이며, 성자의 얼굴 타령을 하는 제니의 ‘참사랑’은 진실한가. 그들의 사랑은 얼마나 한심한가. 만약 지금 조각상을 마치 살아있는 여자라고 생각하며 사랑한다면 아마 그는 변태나 오타쿠라는 말로 비웃음을 살지도 모른다. 가면을 쓰고 여자의 마음을 사려는 남자와 또 가짜 얼굴을 보고 성자의 얼굴이라며 사랑에 빠지는 여자는 어떤가. 그런 사랑이 과연 참사랑일까? 제목처럼 그들은 행복한 위선자일 뿐이다. 그들을 위선자라고 손가락질하고 있는 우리는 어떤가. SNS에서 보이는 가짜를 진짜로 믿으며 가면 쓴 서로의 모습에 환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추구하는 사랑이 과연 참다운 사랑인지, 우리가 쓰고 있는 가면을 들춰 내리를 직시해야 한다.
인스타그램에 ‘옥주부’라는 인플루언서가 있다. 그는 자신의 팔로워들을 ‘내 사람’이라고 칭하며 내 사람들을 위해 만들기 쉬운 반찬 레시피를 올려주고 가끔은 자신이 만든 김치나 밀키트를 팔기도 한다. 밤늦은 시간에 내 사람들을 위한 음악방송도 한다. 처음에는 그의 판매 활동이 자신의 이익을 위한 행동으로 비쳤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진심이 느껴졌다. 그는 자신의 이익뿐만 아니라 내 사람들의 노고와 쉼을 생각하며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려고 애썼고, 그런 모습을 꽤 오랫동안 보여주고 있다.
어느새 팬이나 팔로워가 아닌 그의 ‘내 사람’ 범주에 들어가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어느 날은 그의 바뀐 헤어스타일이 잘 어울린다며 ‘오늘따라 옥주부 멋있다’는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그는 바로 개그맨 옥동자, 정종철이다. 그가 내 사람들을 위해 하는 작은 행동들이 애정과 관심의 표현이라는 것을 아는 이들에게 그의 외모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만약에 제니가 겉으로 드러나는 조지의 외모가 아닌 그의 마음을 들여다보았더라면, 그의 얼굴 그대로를 사랑했다면 어땠을까?
인간의 가장 강한 욕구이자 행복을 결정짓는 딱 하나의 욕구가 무어냐고 묻는다면 바로 ‘사랑받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랑받고 싶어서 사랑받기 위한 행동을 하는 것. 이보다 더 명징하게 우리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없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인간의 모든 행위는 사랑받기 위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피그말리온과 조지와 제니, 옥주부와 내 사람들 그리고 나. 우리는 모두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에서 출발했지만 사랑을 이루는 방식도 관계를 맺는 방식도 다르다.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 상대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 사랑받고 있다고 느낌을 주고 또 받는 것, 서로의 불완전함을 조금씩 감당하려 노력하는 것, 멀어지다가 가까워지는 것, 나아지기를 바라는 것, 본질에 다가가려고 애쓰는 것,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닐까?
이제 당신은 어떤 사랑을 선택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