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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솔티 May 05. 2023

지리산 백호랑이

지리산에는 백호랑이가 산다. 

백호랑이가 지리산 기슭 어딘가에 살고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않다. 백호랑이 같은 신비의 동물은, 사람들이 먼저 찾아낼 수 있는 동물이 아니다. 찾는다고 찾아지는 동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찾고 싶다면, 간절함의 크기만큼 가치를 지불 해야만 한다. 때문에 백호랑이가 거기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유명한 기업가, 국회의원, 엄청난 부자들 뿐이었다. 


백호랑이는 허리까지 오는 백발의 머리를 단정하게 묶고 다닌다. 덩치는 작은데, 큰 보폭으로 아주 아주 느리게 걸어다니고 목과 어깨 허리가 곧게 서있어 외관만 보고는 나이가 가늠 되지않는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눈에 띄는 그의 특징은 호랑이 같은 눈빛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 때문에 모두 그를 “백호랑이” 라고 불렀다.


그의 직업은 무면허 한의사다. 백호랑이는 지리산 어딘가에 5칸의 방으로 나뉘어진 초가집에 산다. 그리고 그곳에서 불법 의료행위를 하고있다. 아마 그 집도 허가되지 않는 불법 건축물일 것이다. 무면허 한의사, 무허가 한의원. 그것이 그가 가진 것들이다. 그런 그가 "그냥 머리 하얗고 눈빛 사나운 자연인 할아버지"가 아닌 백호랑이가 된 이유는 무면허 무허가일지언정 그의 실력이 대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실력을 알고 있었으나, 그걸로 돈을 벌고 싶어하지는 않았다. 언젠가 한 번 내가 그에게 “백호 할배가 서울에 한의원 냈으면 엄청 부자 됐을 텐데” 라고 말했다가 성인이 된 나이에 무릎 꿇고 손을 들고 있었던 적이 있다. “맞는 말이잖아요!” 라고 말했지만 “입술에 침 맞으면 그런 소리 안할래!” 타박을 했다.


백호랑이는 돈을 벌고싶어하지 않는데도 돈을 많이 벌었다. 세상에는 어떻게든 그를 찾아 내고 싶었던 기업가, 국회의원, 부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백호랑이는 그런 사람들이 찾아올 때마다 “너는 내 타입이 아니여! 가!” 하고 소리를 질렀다. 깊은 산 속까지 비싼 검정색 세단을 끌고 찾아온 사람들은 늘 흙으로 더럽혀진 차를 끌고 다시 먼 길을 돌아가야만 했다. 그래도 포기 하지않고 계속 찾아오는 사람이 있다면 백호랑이는 아주 내키지않는 표정으로 그들에게 거액의 치료비를 받고 치료를 해주었다. 백호랑이한테 진맥 한 번이라도 받으려면 큰 거 몇장 쯤은 지불 해야했으므로, 그에게 부자들 두어명만 찾아와도 돈이 떨어질 일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부자들은 재빨리 치료하고 내쫓아버렸고, “진짜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을 더 즐겼다. 


그에게 진짜 환자란, 백호랑이와 순리적으로 만난 사람들이다. 환자는 백호랑이와 ‘신비로운 동물과의 조우 클리셰’를 그대로 따라야만 했다. 백호랑이가 먼저 찾아간 사람만 그에게 “진짜 환자”로 인정받았다. 


그는 종종 읍내 장터에 들려 줄담배를 피우다가, 난데없이 어떤 사람에게 다가가서 “이보쇼! 나 저기 지리산 백호랑이인디 당신 나한테 침 좀 맞아야 할 것 같으니 나중에 시간되면 나한테 오시오! 내가 싫으면 다른 병원이라도 가시고!” 라고 말했다. 그의 “이보쇼!” 소리는 장터에 쩌렁쩌렁 울릴 정도여서 그가 이보쇼! 라고 할 때 마다 장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쳐다보고는 했다. 그렇게 그가 환자를 길거리 캐스팅을 하고나면, 그들은 백호랑이의 진짜 환자가 될 수 있었다. 지리산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그의 룰을 알기에 읍내에서 그와 마주쳐도 먼저 말을 걸지않았다. 다만 그의 앞을 왔다갔다 하며 백호랑이가 먼저 자신을 발견 해주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서른 다섯살의 우리 아빠는, 그의 룰 따위는 몰랐다. 그래서 백호랑이를 마주친 순간 그에게 달려가 나를 거의 던지듯 앞에 내보였다. 


내가 태어나기 전까지 우리 아빠는 가난했지만 행복했다. 그러나 첫 아이가 선천성 희귀 심장병이라는 것을 알고난 뒤, 그는 가난은 커졌고, 행복을 느낄 시간따위 없이 처절했다. 아빠는 내가 태어나고 10년 간 피우던 담배를 단박에 끊었다. 자신이 담배를 피워서 내가 그렇게 된 것은 아닐까하는 죄책감 때문이었다고 한다. 

당시 의사는 내가 수술을 안하면 무조건 죽고, 수술을 해도 살 확률이 30% 밖에 되지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현대의학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시술과 수술 약물치료를 마친 나는 다행스럽게도 30% 정도의 운은 있었던 것인지 살긴 살았다. 건강하게 남들처럼 살진 못했고, 어찌저찌 목숨은 붙어있는 수준으로 살았다. 혈액순환이 안되서 얼굴은 늘 파랬고, 조금만 온도가 바뀌어도 덜덜 떨고 땀을 흘렸다. 언제나 숨 쉬기 버거워하며 색색 소리를 냈고, 또래들 보다 머리 하나가 더 작았다. 세상에 있는 모든 잔병치레는 다 한 번씩 걸리는 딸을 키우던 우리 엄마는 그 때 목욕탕에서 나온 애기들의 볼이 빨간 게 세상에서 제일 부러웠다고 한다. 내 볼은 언제나 창백하고 파랬으니까.


그러던 중 지리산에 백호랑이라는 실력 좋은 한의사가 산다는 사실을 알게 된 우리 아빠는, 그런 나를 데리고 지리산의 모든 기슭들, 주변 읍내들을 돌아다녔다. 백호랑이에게 장침이라도 한 번 맞으면 적어도 내가 목욕탕에서 나왔을 때만큼은 볼이 빨개질 수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두 달 정도 백호랑이를 찾아 헤매던 어느 새벽, 드디어 아빠가 장을 보러 온 백호랑이와 마주쳤다. 

아빠는 백호랑이를 보자마자 “어르신!” 하고 달려갔다. 들처업은 나를 던지듯 백호랑이 앞에 세웠다. 아빠는 백호랑이를 만나면 ‘우리 애가 심장병인데요 어디가 어떻게 아프고요 뭘 해도 좋으니 지금보다는 낫게 해주세요’ 라고 말해야지 하고 준비 해둔 말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빠는 머리가 새하얘져 숨을 헉헉 내몰아쉬며 “그.. 우리 애가.. 아니 저기..” 하고 말을 더듬기만 했다고 한다. 그리고 백호랑이는 내 얼굴을 찬찬히 보다가 아빠에게 “니 이거 들어라” 하고 양파와 감자가 담긴 검정 비닐봉투를 내밀고, 내 손을 잡았다. 

“어르신 그게요..” 하면서 말을 더듬는 우리 아빠에게 백호랑이는 “아침부터 시끄럽게 하지마라. 그 봉투 내가 들까?” 말했다. 아빠는 조용히 백호랑이 할아버지의 짐꾼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백호랑이는 장을 모두 보고난 뒤, 나와 아빠를 데리고 다방에 갔다. 설탕 넣은 블랙커피 두잔이 나오기 전까지 우리 아빠는 혹시라도 양파와 감자가 든 검정봉투를 빼았길까 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마음 좀 정리 됐는가. 이제 애가 어디가 아픈지 말해도 된다” 백호랑이가 먼저 말을 꺼내자 아빠는 그제서야 준비해온 말들을 했다. 백호랑이는 내가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우리 가족이 얼마나 처절한 지, 얼마나 방법이 없었는 지를 듣다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 그 순간 아빠는 백호랑이에게 “어르신 담배는 안피우시면 안되겠습니까?” 라고 말했다. 순간 얼음이 된 백호랑이와 아빠. 


백호랑이는 “자네 내가 산에 살면서 기쁨이라고는 하나 없고 읍내 나올 때만 담배 피우는 거 알고 있나? 근데 피지말라고? 지금 자네가 나한테 그런 걸 말할 입장이 된다고 생각하나?” 하고 가만히 아빠를 쳐다보았다. 아빠는 덜덜 떨면서 “부탁하는 입장인 거 압니다만 저희 애가 먼저 걱정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하고 사과했다. 백호랑이의 룰을 어기고 먼저 말을 걸어놓고, 담배까지 피우지 말라고 하다니. 그런 미친놈이 있다니. 그러나 백호랑이는 웃었다. “자네 미치게 간절한가 보네 아주 미친 놈이야 이거 그냥” 하며 껄껄 웃었다. 큰 거 몇 장은 무슨, 작은 거 몇 장도 없던 우리 아빠가 가지고 있던 유일한 것은 간절함이었고, 백호랑이는 그것을 사기로 했다. 그렇게 이른 아침 다방에서 백호랑이는 아빠에게 다음의 조건을 말해주었다.


[백호랑이 한방치료 센터 입소 조건]

1. 딸은 지리산에 놓고갈 것.

2. 치료 기간은 1년, 그러나 그보다 더 걸릴 수도 있음을 염두할 것

3. 오고싶을 때마다 오지말고 한 달에 한 번만 찾아올 것

(대신 한 번 오면 2박 이상 백호랑이의 집에서 자고 갈 것)

4. 절대 백호랑이에게 돈을 주지말 것


대체 백호랑이의 무엇을 믿고 그 조건에 동의했는지 모르겠지만, 난 다방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백호랑이의 무면허 무허가 한방 의료 센터에 가게 되었다. 아빠는 나를 내려다주고서야 처음으로 열악한 백호랑이의 집을 보게 되었는데, 차라리 안심되었다고 한다. 그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에서 내가 더 아파질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내가 백호랑이의 집에서는 약 1년 3개월 정도 지내는 동안, 두 명의 또래 아이들이 잠시 나처럼 그 집에 살다갔고, 방에서 잘 나오지 않던 중학생 언니, 삐쩍 마른 아주머니 한 분, 발가락에 동상 걸린 할아버지, 와사풍 환자(안면마비) 아저씨, 다리에 어떤 문제가 있어서 잘 못 걷던 삼촌 등등 다양한 사람이 백호랑이 한방 의료센터에 다녀갔다. 어떤 사람은 이틀만 자고가고, 어떤 사람은 일주일, 혹은 한 달도 같이 있었다. 일주일에 두 어번쯤 자기도 치료해달라며 사람들이 찾아오고는 했지만 대부분 백호랑이에게 쫓겨났다. 그리고 그동안 그곳에서 가장 오래 있었던 사람은 나였다. 


나는 새벽마다 닭장에서 달걀을 꺼내고, 작은 밭에서 상추와 호박잎도 길렀다. 매일 침과 뜸을 맞았고, 매일 한 시간씩 뜨거운 온돌방에 가만히 누워있었다. 마당에서 한약도 달였고, 환 종류의 약을 만들 때 옆에서 보조 하기도 했다. 그런 나는 백호랑이의 환자 중 유일하게 백호랑이와 함께 읍내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이었다. 엄마 아빠도 보고싶고, TV도 보고싶고, 과자랑 아이스크림도 먹고 싶던 나는 늘 백호랑이 한방 의료센터에서 나가는 길만 쳐다보고 있었다. 덕분에 내게는 백호랑이의 집에 누군가가 오고있는 것을 제일 먼저 알아차리는 능력이 생겼다. 


처음 한 두번은 “백호 할배 누구와요” 라고 말해도 아무 소리도 안들리는데 무슨 헛소리를 하냐고 귀에 침 좀 놔줄까 하는 타박을 들었지만, 내가 누구 온다고 말을 할 때면 반드시 사람들이 찾아왔다. 내가 계속 나가고싶어 해야만 그 능력이 유지 될 수 있었기 때문일까, 백호랑이는 읍내에 갈 때마다 나를 데려가 맛있는 걸 먹이고 오락실에 데려갔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냥 할배가 나와 놀아준 것이었다.) 백호랑이에게 내 능력을 인정 받고, 내게 중요한 임무가 생겼다. 누군가 집 근처에 오는 게 느껴지면 백호랑이에게 달려가 사람이 온다고 말해주는 것. 인기척이 느껴지면 나는 “백호 할배 누구와요!” 말했고, 백호랑이는 아주 고상하지 않은 몸짓으로 우당탕 빈 방에 달려가 숨었다. 그럼 나는 백호랑이가 들어간 방 앞에 항아리와 빗자루를 가져다 두고 쓰지 않는 방인 것처럼 위장을 했다. 


그리고 백호랑이가 알려준 대로 크고 비싼 차를 탄 사람들에게는 “백호랑이 지금 집에 없어요 약재 사러 나가서 일주일 뒤에나 와요 ” 라고 말했고, 낡은 차를 탔거나 걸어온 사람들이 오면 “따뜻한 차 좀 드릴게요 다 먹으면 백호랑이 와요” 라고 말했다. 정장 입은 아저씨들이 백호랑이를 기다리겠다고 버티면 “백호랑이 이런거 엄청 싫어하니까 아저씨들 가세요. 지금 안가면 얼굴 기억했다가 할배한테 이를거에요 나중에 오세요 여기 우리 집이에요!” 하며 소리를 질렀고, 차를 마시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어디가 아파서 왔어요?” 물어보고 방에 숨어있는 백호랑이에게 가서 말해주기도 했다. 


백호랑이는 병자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내가 “백호 할배 저 사람은 진짜 아픈것 같아요” 라고 말하면 그 사람만큼은 꼭 진맥이라도 하고 돌려보내주었다. 그게 백호랑이가 싫어하는 비싼 차를 타고 온 사람이라 해도 말이다. 백호랑이 한방 의료센터에서 퇴원하고 나는, 엄마의 소원대로 볼이 빨간 아이가 되었다. 


퇴원 하는 날, 어떻게 한 푼도 안받으실 수 있냐며 현금 다발을 싸들고 간 우리 엄마 아빠에게 백호랑이는 먹던 옥수수 알갱이를 던졌다. “자식 다 치료 끝나니까 이제와서 약속을 어기는 거야! 자네 내가 뭐라고 그랬어 나한테 돈 줄 생각 하지말랬지!” 소리질렀다. “그렇게 감사하면 너보다 가난한 놈들한테 베풀고나 살어 나는 돈 뒤지게 많아” 옥수수 알갱이를 주우며 백호랑이는 궁시렁거렸고 여기랑 저기랑 저어기랑 그기랑 거기에 베풀어 하면서 고아원들과 어느 동네 이름들을 읊었다. 나의 치료비는 모두 그곳에 전달되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백호랑이는 큰 거 몇장을 주고 간 사람들에게도 치료 후 A/S가 필요하면 기부를 먼저 하고 찾아오라고 말했었다고 한다. 퇴원 후에도 나는 종종 백호랑이에게 불려갔고, 어떤 날은 백호랑이가 부르지 않아도 내가 먼저 찾아갔다. 나는 큰 거 몇 장 대신 그가 좋아하는 크리스피크림 도넛을 사간다. 그는 앉은 자리에서 도넛 한 박스를 다 먹고 입이 텁텁하다며 담배를 한 대 피운다. 


그 때마다 백호랑이는 “니 아빠가 예전에 건방지게 말이야 나한테 담배 피우지말라고 했는데 말이다.” 하면서 했던 얘기를 또 하고, 또 한다. 그리고 언제나 그 이야기의 끝은 “니만큼 귀 밝은 애도 없는데 그냥 여기서 이 집이나 지키고 살면 안되나 평생 침은 공짜로 놔줄게” 하는 그의 농담이다. 


그럼 나도 언제나처럼 말한다. 

“할아버지! 사람들이 백호랑이라고 한 게 아니고 개또라이라고 했는데 할배가 잘못 들은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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