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사이
일로 만난 사이였다. 갑과 을이 명확히 정해진, 사적인 감정이 개입되어 좋을 게 없는 그런 사이.
남자의 취미는 골프였다. 동남아 여행을 다녀왔다는 내 말에 손을 보자고 하더니, 골프 치는 사람은 손만 보면 안다며, 내가 내민 손을 아무렇지 않게 만졌다. 사소한 스킨십이었지만, 이렇게 쉽게 닿는다는 사실이 당황스러웠다.
그는 렌즈를 끼고 있었는데, 눈에 뭐가 들어갔는지 계속 눈을 깜빡였다. 나는 괜찮냐고 물었고, 그는 뭐가 들어갔는지 봐달라며 얼굴을 가까이했다. 너무 가까운 거리였다. 잠시 망설였지만, 정말 불편해 보였기에 다가가 그의 눈을 잠시 들여다봤다. 속으로는 능숙하다는 생각과, 원래 이런 식으로 사람을 대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그리고 곧, 아무렇지 않은 척 넘겼다.
그를 안 지 6개월이 되었지만, 나는 늘 놀아나는 기분이었다. 사회적으로 그는 ‘갑’이었기에, 관계의 주도권은 그에게 있었다. 계속 봐야 하는 사이에서, 내 의지로 관계를 바꿀 엄두는 낼 수 없었다.
관심이 있는 것 같은데 관심이 없고, 분명 계속 신경 쓰고 있는 것 같은데 다음 날이 되면 또 아니었다. 대체 이 사람은 왜 이럴까.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 사람의 의도가 궁금하다면 나 역시 싫지 않은 게 아니냐고 했다.
그는 ‘업무상’ 계속 내 프로세스를 지켜보고 도왔다. 이게 단순히 ‘일’때문만으로 가능한가 싶다가도, 그렇게 고민을 반복하다가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면, 보여주지 않는 게 진심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굳이 속에 있는 마음을 궁금해할 필요가 있을까.
사람의 마음은 단칼에 잘리지 않아서, 애매한 감정은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결국, 더 큰 마음을 선택하게 된다.
작은 관심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의미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붙잡고 있는 내가 애처롭다. 이 정도의 관심에 희망을 갖는다는 건, 참 잔인한 일이다.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계속 봐야 하는 사이라 완전히 돌아서지 못한다. 눈에 보이면, 다시 마음이 약해진다.
그는 자신의 말과 행동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충분히 아는 사람이다. 알면서도 이렇게 애매하게 행동하고, 어쩌면 내 마음 역시 이미 눈치채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 눈치채고도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다면, 그것이 그의 진심일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왜 안 보여주는 마음에 희망을 걸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