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2020년이 얼마 안 남았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게 시간이라고 하던데, 나는 공짜로 2020년을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해도 다시 돌아가지 않을 거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이 이렇게 힘든 일이었나. 몰라도 너무 몰랐다. 강도 높은 돌봄 노동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이번 한 해에 단 하루라도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다. 테트리스 레벨 업을 하듯 매일 하루하루가 레벨업의 연속이었다.
"이제 그만 나도 쉴래."
라는 말이 안 통하는 육아의 세계였다. 지 자식 키우는 데 뭐 그리 힘드냐고.. 왜 그렇게 찡찡대느냐고 할 수도 있다. 나는 3명도 키우는데 너는 겨우 한 명 키우면서 우는 소리 하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한 해는 상황이 너무 안 좋았다. 아기도 나도 가끔은 바람도 쐬고 사람도 만나고 산책도 가야 하는데 망할 코로나 때문에 문화센터는 취소되고 마스크를 계속 벗으려는 아이 때문에 실내에서 하는 건 할 수도 없었다. 그저 답답한 하루였다.
봄이면 벚꽃 보러 가고 여름이면 시원한 바다로 가을이면 단풍 구경에 겨울이면 눈 구경하던 좋은 때는 이미 지나가고 없었다. 다시 그런 시절이 오긴 올지... 변종 코로나는 더 전염력이 세다고 하던데.. 코로나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이를 안고 갈 곳이 없었다. 매일 사람이 어떻게 집콕만 할 수 있겠나.. 어느 날은 집이 감옥같이 느껴졌다. 나가고 들어올 자유가 있다면 감옥이 아니지만 일단 들어오면 나가는 게 어려우니 나에겐 감옥이었다. 그리고 아이의 장난감이며 육아용품으로 남편도 나도 각자의 공간을 잃어갈 때 이사를 결심했다. 나도 내 책상이 필요했다. 글도 쓰고 책도 읽고 다이어리도 끄적일. 근데 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사를 하고자 하니 집값 폭등이다.
한 달 정도를 아기를 안고 집을 보러 다녔다. 열심히도 보러 다녔다. 네이버 부동산을 수시로 들락날락하고 부동산에 전화도 돌리고...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내가 살고 싶은 동에 햇빛은 잘 드는지 보러 다녔다.
겨우 겨우 그나마 원하는 집을 구했다. 대출을 내고 이사 준비를 하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이제 막 대출을 다 갚았더니 내가 가고 싶은 집에 가려고 하니 또 대출을 내야 했다. 나에게 부동산은 투자 목적이 아닌데 집은 쉼터인데 맘에 드는 쉼터 찾는데 너무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모두들 집에 있으라고 한다. 조금만 더 참으라고... 매일 조금씩 조금씩 참았다. 근데 이제 더 참으면 폭발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좀 구해줘"
이 지옥에서 나 좀 구해줘. 나의 복직 그리고 남편의 휴직은 나의 sos에 대한 남편의 구조작업이었다. 우리 집에 나와 오빠의복직과 휴직을 결정한 다양한 이유가 있었지만 이게 가장 크고 솔직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