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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Feb 18. 2021

나는 나를 좋아해

글의궤도 4호

관객의취향에서는 매일매일 글쓰는 모임 '글의궤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글의궤도 멤버들의 매일 쓴 글 중 한편을 골라 일주일에 한번씩 소개합니다. 아래의 글은 매일 쓴 글의 일부입니다.


내 취미는 '누군가를 좋아하기'다. 뭐, 쉽게 말하면 덕질이다.

나의 유구한 덕질의 역사는 내 인생의 역사와 일직선 상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취향이라는 것이 형성되기도 전인 6살 때, 호텔리어에 나온 '배용준'을 보며 좋다고 티비에 뽀뽀를 하기도 했고,

중학생 때는 투피엠의 '장우영'과 결혼할 거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정말 장우영과 결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누군가를 좋아하며 에너지를 얻는 편이었고, 내 자신이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면 그 순간부터 그 대상에게 마이너스 요소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오이를 싫어하면 오이를 싫어해서 귀엽고, 자다가 침을 흘리면 인간적이어서 좋다.

한 가지 모습에 꽂혀서 좋아했으나, 결국 그 사람의 모든 점이 화살이 되어 내 심장을 콕콕 찌른다.

어느 때와 다름없이 트위터를 하며 좋아하는 배우의 짤을 저장하다가 뜬금없이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나를 좋아하나?

좋아하는 사람이 밥을 먹다 밥풀을 흘리면 어벙해서 좋다고 말하지만, 내가 밥풀을 흘리면 나는 내 자신이 칠칠맞지 못해서 싫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차고 넘치지만 그 대상에 나는 포함되지 않았다. 모순이었다. 

그렇게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은 사랑하지 않는다니.

하지만 그 사실을 자각했다고 해서, 바로 그 순간부터 나를 좋아하진 못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어떤 배우의 팬인 것처럼, 내 자신의 팬이 되어보기로 했다.

나를 덕질하는 방법은 단순하다. 실수를 하거나 내 자신이 싫어지는 순간에 혼자 '~하다니 귀여워ㅠㅠ'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는 거다.

예를 들어 계산을 하다가 계산 실수를 하게 되면, '헐 계산 실수를 뭐 저렇게 귀염뽀짝하게 하냐ㅠㅠ 진짜 귀엽네'라고 속으로 되뇐다.

미친 사람 같겠지만 덕질 이즈 마이 라이프인 나에겐 이 방법이 꽤 먹혔고, 나는 이제 어느 정도 나를 좋아한다. 적어도 예전처럼 내 탓이 아닌 일을 가지고 자책하진 않으니까.

덕질엔 '탈덕'이란 루트가 있지만 나로 사는 이상 나에 대한 탈덕은 불가하다. 

나는 영원히 내 팬클럽 회장으로 살아야 하고 그 어느 덕질보다 애정을 많이 쏟아야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실수하는 나에게 '귀여워'를 연발하며 나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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