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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영 Feb 18. 2021

감정이 전부야

글의궤도 4호

관객의취향에서는 매일매일 글쓰는 모임 '글의궤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글의궤도 멤버들의 매일 쓴 글 중 한편을 골라 일주일에 한번씩 소개합니다. 아래의 글은 매일 쓴 글의 일부입니다.


「싸이월드 감성 같아.」


프로필에 걸린, 펜으로 문구를 적은 사진을 보고 날아온 메시지였다. 이어지는 부연은 대충 감성이 풍부하다, 감성왕 같다는 평이었다. 칭찬이라 차마 부르지 못하는 까닭은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펜으로 적힌 문제의 부분은 누구나 다 알 법한 소설에 등장하는 마냥 유명하지만은 않은 구절이었다. 그저 흔하게, 사랑이나 슬픔을 말하는 부분이었고, 절절히 공감돼서 걸어놓은 것이 아니었다. 프로필 사진을 고를 당시, 나에겐 그저 임시방편으로 삼을 무언가가 필요했을 뿐이고, 난 그 방패로 문장을 골랐던 것뿐이었다. 순식간에 흘러가는 음악이나 눈 감으면 기억하지 못하는 그림보다 두고두고 볼 수 있고 잊기도 했다가 나지막이 되뇌어보면서 다시 떠올릴 수 있는 글이 그냥 좋았다. 튼튼해보였고 떠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문구는 호흡을 골라가며 직접 써내려간 글씨도 아니었다. 어딘지 기억도 안 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주워 온 것이었다. 그런데도 왜 마음 한 구석이 자꾸만 철렁할까.


그놈의 '힙' 때문일까. 인터넷 역사가 열리고 한때 '**가족의 태그 교실' 등의 카페를 필두로 손글씨가 잠깐 인기를 끈 적이 있었다. 그 짧은 순간을 제외하고는 '감성'에 좋은 말이 뒤따르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다. 생각이나 느낌을 조금만 적어도 - 그것의 구체성이나 추상성은 고려하지도 않고, 그러니까 일말의 문학성도 따져보지 않고 - 비꼬는 것 같은 말들이 들렸다. 혹시 감성이나 감상을 '감상적'이다와 헷갈리는 것일까.


감성(感性)


1.자극에 대하여 느낌이 일어나는 능력


2.감각적 자극이나 인상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성질



감상1(鑑賞)


예술 작품이나 경치 따위를 즐기고 이해하면서 평가함



감상2(感想)


마음속에 느끼어 생각함



감상3 (感傷)


사물에 대해 느낀 바가 있어 마음속으로 슬퍼하거나 아파함



감상적(感傷的)


어떤 일에 대하여 지나치게 슬퍼하거나 쉽게 감동하는 것



내가 하는 감상은 감상1 아니면 감상2인데 사람들은 이를 감상3으로 읽는다. 감성이 1이든 2든 떠오르는 것뿐인데 내가 느끼는 것, 받아들이는 것,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거나 쉽다는 의미가 되어버린다.


힙합도 락도 음원차트 TOP 100도, 범죄도 수사도 스릴러도 SF도 자극이고 입력(input)인데 이러한 소비는 감성이나 감상적이지 않게 된다. 무대를 찢는 퍼포먼스에는 '대박'이라거나 속어가 섞인 코멘트가 주로 달리는데 이 '감성'적이지 않은 댓글에 '좋아요'는 수백 개다. 그들이 은연중에(절대 의도한다고는 인정하지 않을 것이므로) 추구하는 힙하거나 쿨한 것 역시 사실은 '감성'의 한 부류인 것을, 그들은 인정하지 않는다. 미드나 주식, 게임을 좋아하지 않고 소설이나 사랑이 주류인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만 '감성'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과연 느끼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느끼지 않는 기계미,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인공지능만 같게 되는 것이 그들이 진정 지향하는 바일까? 시간과 돈이 세상을 지배하는 전부라면, 가진 자 중에 자살하는 사람들은 무엇이 되며 예술은 왜 분초마다 소비되는가? 감정을 배제하고도 살아갈 수 있는 거라면, 범죄의 희생양, 굶주리는 아이들, 핍박 받는 노동자와 참혹한 전쟁을 보고도 그들은 왜 쉽게 고개를 돌리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라고는 말 못할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윤리를 지키기 위해. 시간을 내서 예술 사조를 달달 외우고 윤동주와 김영랑 이육사 서정주, 그리고 황순원과 김동리 염상섭 박태원 현진건을 공부하는, 공부시키는 까닭은 감정이 시간과 돈에게 없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시간과 돈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포용하기 때문이다. 미적분과 코딩으로 우리 삶을 조합할 수 없고, 시사 뉴스나 재무제표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시간과 돈은 생이 마감되는 동시에 사라진다. 때문에 살아있는 동안 적절히 소비하지 않으면 낭비나 낭패가 된다. 그러나 감정은 남길 수록 생을 채우는 수단이, 과정이 된다. 단순한 생존에 삶을 불어넣는 것이 감정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어느 영화에서 말하는 것처럼, 감정이 전부가 된다.





영화 <유스 Youth> 中


"감정이 과대평가됐다고 했지. 다 헛소리야. 감정이 전부야. You say that emotions are overrated. But that's bullshit. Emotions are all we've g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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