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궤도 1호
관객의취향에서는 매일매일 글쓰는 모임 '글의궤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글의궤도 멤버들의 매일 쓴 글 중 한편을 골라 일주일에 한번씩 소개합니다. 아래의 글은 매일 쓴 글의 일부입니다.
어린시절 주말 저녁 티비 앞에 엄마, 남동생과 옹기종기 모여 앉아 봉지과자를 먹는 시간이 좋았다. 김장봉투마냥 커다란 비닐봉투에 여러 과자들을 한꺼번에 섞어놓고 골라먹는 거였다. 과자 각각이 섞여서도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감자칩처럼 연약한 과자들은 쉬이 제외되기 일쑤였다. 살아남은 것은 늘 새우깡, 포스틱, 자갈치, 꿀꽈배기, 알새우칩 등이었다.
달달한 과자 먹다가 질리면 짭짤한 과자만 골라먹고, 다시 달달한 과자로 돌아가고, 짭짤한 과자, 단과자.. 그렇게 정신없이 먹다보면 어느새 열손가락 끝엔 정체를 알 수 없는 가루들이 한데 뭉쳐있었다. 그 손가락을 쪽쪽 빨아먹는 것으로 그날의 과자타임은 끝이었다. 내 인생 단짠의 첫경험은 어쩜 그 비닐봉투 안에서 이루어진 게 분명하다.
과자 다음엔 아이스크림에 빠져 들었다. 지금은 날이 갈수록 덜해지고 있지만 10대의 난 더위를 정말 정말 많이 탔다. 한여름에는 입맛이 똑하니 떨어져 하루를 아이스크림으로만 보낸 적도 있었다. 겨울의 아이스크림이 맛을 느끼며 먹는 것이라면 여름의 선풍기와 아이스크림이야말로 살기 위한 생존 필수 아이템이었다. (최근 할미입맛이 유행하면서 흑임자, 팥, 인절미, 쑥 맛이 아이스크림 사이에서도 인기던데 원래부터 비비빅, 캔디바, 메로나 좋아하던 1인은 내적 환호를 질러버려,,,)
고등학교 때의 다음 타깃은 초콜릿이었다. 혀끝이 아릴 정도의 달달함만이 입시의 고단함을 씻어 주(준다고 믿)었다. 지금은 잘 보이지 않는데 도브 헤이즐넛맛 초콜릿을 너무 좋아해 친구들이 박스로 선물해주곤 했다. 물론 하루 15시간 이상의 좌식생활+초콜릿 중독은 전에 없던 체중을 안겨주었지만 그때 난 인생이 매우 썼으므로(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닌 것들이 그땐 세상의 전부 같았다) 초콜릿을 먹으며 행복함을 느꼈다.
20여년에 걸쳐 과자-아이스크림-초콜릿을 거친 내 군것질의 역사는 20대 중반을 넘어서며 젤리로까지 닿았다. 용돈 500원으로 새콤달콤과 마이쮸를 사먹던 어린이는 이제 세계과자할인점을 참새방앗간처럼 드나들며 하리보와 트롤리에 한번에 4만원도 척척 쓰는 어른이 되었다. 편의점 2+1은 사랑,,, 알록달록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젤리를 구경하면 무게로 가격을 매기는 놀이공원 젤리가게에 처음 갔던 그날처럼 우와우왕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엄마는 매번 지금 나이가 몇갠데-로 시작하는 잔소리를 하지만 나는 굴하지 않는다. 알록달록 새콤달콤 말랑쫀득을 생각하며 찾는 마음의 평화,,, 왜 그런 책제목도 있지 않은가. <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구할 거야.>
사는 게 슬쩍 달고 많이 짜게 느껴질 때 군것질을 좋아하는 내 마음이 나를 구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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