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글은 도구, 본질은 내면

1만 시간의 법칙

by 유심희

말과 글은 도구, 본질은 내면


어디에 가서 국어 교사라 소개하면 흔히 말도 잘 하고, 글도 잘 쓸 것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다. 실제 말과 글솜씨가 뛰어난 국어 교사들도 많이 봤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렇지 않다.

물론 다른 직업군에 비해, 그리고 다른 교과에 비해 정제된 언어 표현을 자주 보고 익힐 수 있긴 하다. 나는 말과 글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 조금 더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잘 쓰기 위한 훈련은 특별히 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말과 글에 실릴 내면이 잘 가꾸어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나이를 먹으면 자연스럽게 나아질 줄 알았다. 연륜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있어서, 중견교사가 되면 자연스레 말과 글의 품격이 높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 들어 마주한 나의 말과 글은 예전에 비해 단정적이고 날카로웠다.

약간 아는 상태가 가장 무섭다던데, 현재 모습을 되돌아보니 지나치게 자신만의 생각과 판단에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경험을 쌓는다는 건 다양한 경우들을 많이 마주하고 여러 가지 가능성들을 확인해 가는 과정일 텐데, 내가 걸어온 길만 옳다고 믿어왔으니 말과 글도 그렇게 나올 수밖에.


다행스러운 것은, 직업 특성상 자신의 언어 습관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환경에 있다는 점이다. 학교는 평소 바른 언어 생활을 하려 노력해야 하는 공간이며, 교과서에 실린 화법과 작문 자료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엄선한 것으로 좋은 말과 글을 표현하는 방법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그러나 말은 마음의 거울이라는 말처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면의 성장이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화려한 기교가 아니라 성숙하고 정제된 마음이 담긴 말과 글이다. 이미 말과 글을 다듬을 수 있는 환경은 충분히 갖추어졌으니, 내면의 성숙에 힘써야 할 때다.


이 점은 브런치스토리에서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을 때도 크게 느끼는 부분이다. 자연스러운 내용 전개, 참신한 비유 표현, 적절한 인용 등이 녹아 있는 글을 보며 ‘글 잘 쓰는 사람이 참 많구나.’ 싶었다.

그럼에도 오랫동안 여운이 남았던 글은 다소 어휘나 문장력이 서툴더라도 글쓴이의 따뜻하면서도 성숙한 내면이 느껴지는 글이었다. 그러한 내공은 화려한 기교가 뒷받침되지 않아도, 일면식도 없는 낯선 독자의 마음에 닿을 수 있는 것 같았다.


나도 언젠가 내 이야기를 책으로 전하고 싶지만, 아마 한참 먼 미래의 일이 될 것 같다. 머릿속에 흩어진 생각들을 한 줄기로 엮는 것도, 이것을 독자에게 닿을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하는 것도 지금으로서는 너무나 서툴고 어려워서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 수 있는 성숙한 내면도 갖춰져 있지 않다.


그렇지만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첫 직장을 구하기까지 오랜 시간 노력한 것처럼, 책을 쓰는 것에도 그만한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면 나만의 이야기를 세상에 선보일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나를 들여다본다. 누군가의 호기심을 불러올 만한 다양한 경험이 있는가. 누군가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성숙한 내면이 있는가.

지금은 없다. 오늘의 이 다짐이 내일의 말과 글을 바꿀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내 안의 이야기도 완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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