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발판 하나가 아이를 다시 일으킨다
뒤집기.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최초로 스스로 해낸, 가장 역동적인 성장이 아닐까 싶다.
현재 거실 바닥을 구르고 있는 초등학생 아이를 보며 '얘는 언제까지 구르려나' 싶기도 하지만, 갓난 아가일 적 뒤집기 성공의 그 순간은 참으로 벅찼다. 지금이야 이 아이에게 구르기가 일상이지만, 당시에는 지상 최대의 과제였으리라.
사실 뒤집기가 성공하기까지는 많은 전 단계들이 있었다.
뒤집을 방향에 아이가 관심 있어하는 물건 두기,
티 안 나도록 등 살짝 밀어주기,
너무 푹신하지 않은 이불 깔아놓기,
그리고 엄마아빠의 하이텐션 응원까지.
가장 큰 원동력은 주변을 돌아보고자 한 아이의 호기심이었겠지만, 앞선 단계들 중 하나라도 부족했다면 첫 뒤집기 성공의 감격은 더 늦춰졌으리라.
뒤집기뿐인가. 그 다음으로는 되집기.
엎드리기, 혼자 목 가누기,
제자리에 앉고 서기, 그리고 한 발짝씩 걷기
손으로 음식을 집어, 자기 입을 찾아서 넣기
그리고 처음 '엄마, 아빠'를 부르기까지.
아이가 매순간 성장하는 동안, 엄마아빠를 비롯한 주변에서는 아이의 성장에 필요한 작은 발판들을 적절하게 건네 주었다. 현재 당연하게 느껴지는 아이의 모든 행동들은, 갓난 아가일 적부터 열심히 쌓아온 성공 경험들의 결과물이다.
갓난 아기일 땐 웃기만 해도, 심지어 방귀만 뀌어도 칭찬 받았다.
아이의 성장에 필요한 발판을 열심히 찾으며
이를 딛고 성장해가는 아이를 기쁘게 바라보았다.
유치원을 거쳐 초등학생이 되니
아이의 다음 성장을 도울 수 있는 발판이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면서도,
또래 아이들의 상태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다른 집 아이가 무엇을 어느 정도로 하고 있는지를 보게 되고
우리 아이보다 무언가를 더 잘 하는 또래를 보면,
그 아이가 밟아온 발판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졌다.
어떤 때는 '우리 아이도 저런 면이 있었으면' 싶기도 해서
우리 아이가 자라온 과정과 무관하게,
막연히 그 아이와 닮으려 노력해보길 권했던 적도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엄친아같은 아이와의 차이가 크다고 느낄수록,
우리 아이를 그 자리에 주저 앉게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장래희망이 뭐야?'
학생들에게 항상 조심스럽게 묻는 질문이다.
어릴 때야 그게 이루어지지 않아도 당차게 이것저것 얘기할 수 있었지만,
이제 자신의 꿈이 현실성이 없다 싶으면 얘기하지 않는 학생들이 많다.
그 날 배운 내용을 익히고 교우 관계를 원만하게 쌓는 것도 쉽지 않은데,
어른이 되었을 때 뭐 해먹고 살 지까지 생각해보라는 건 너무 막연한 일이다.
갑자기 나타난 '너무 높은 언덕'이랄까.
가뜩이나 수행평가도 너무 많아 허덕이는 학생들인데 너무 보채는 느낌이 있다.
'장래희망과 관련된 대학 학과를 빨리 정해야 한다'
'학과와 관련된 교과 수업을 듣고, 비교과 활동도 미리 열심히 해야 유리하다' 등
요즘 학교에서 장래희망을 묻는 건,
순수하게 앞으로의 미래를 상상해보라는 의미보다도
'너 아직도 안 정했어? 그럼 대학 입시에서 불리해' 라는 느낌을 주는 것 같아서 조심스럽다.
작은 구릉을 넘는 경험도 미처 하지 못했는데 높은 언덕들이 첩첩산중으로 펼쳐지면
결국 주저 앉아버리리라.
자신감은 나 자신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다,
내 안에 나를 믿을 수 있게 만드는 근거들이 있어야 한다.
작은 성공 경험이 쌓일수록 나 자신을 믿게 된다.
"난 이런 것도 해냈어. 할 수 있어. 이것도 할 수 있을 거야."
성장하는 동안 아이 스스로가 알아보고 해내야 하는 것도 있지만,
나 스스로에게 반문해본다.
현재 내 아이의, 그리고 우리 학생들의 성장 단계를 잘 알고 있는가.
다음 단계로의 성장을 위해 어떤 발판이 필요한지 사실 내가 잘 모르고 있진 않은가.
열심히만 하면 장래희망을 이룰 수 있다고 막연하게만 말하고 있진 않은가
'너무 높은 언덕'은 아이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든다.
그러나 낮은 발판 하나가 아이를 다시 일으킨다.
그 낮은 발판 하나를 건네어 아이를 다시 일으킬 수 있는 그런 어른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