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이 심어진 곳에 #속초 4

부담과 여행

by 유타에

넷째 날.


이곳에서 혼자 지내는 것도 조금 익숙해졌다. 문이 잠겼는지 딱 두 번 확인했고, 추위와 식사를 능숙하게 해결하고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 밤은 무섭다. 밤 때문인지 속초로 여행을 온 지 사흘이 지났는데도 아직 바다에 가지 못해서 오늘은 꼭 바다와 노을을 봐야지 다짐했다.


귀찮음과 추위를 이기고 해변에 다녀왔다. 바다는 항상 '부서진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파도를 뱉어내는데 그 멀리서부터 밀려오는 울렁거림이 다른 때보다 더 크다고 생각했다. 바람이 차서 그런가. 조금 떨어져 앉았다. 해는 보이지 않고 희미한 노을 색만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다. 시간은 맞춰갔지만 날씨가 따라주지 않아 오늘은 이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노을이 꼭 보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해가지는 짧은 시간 동안 그 빛 안에 앉아있으면 왜 인지 모든 게 느려지는 것 같다. 느릿느릿 해변을 걸으며 조개 몇 개를 주웠다. 몇 개라고 하기엔 좀 많다. 줍다 보니 그렇게 됐다. 주머니 안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좋다.




마지막 날.


어제 노인과 바다를 끝으로 가져온 책 4권을 모두 읽었는데 타이밍 좋게 그 애가 찾아왔다. 내가 무서워한다는 걸 알고 낮에 할 일을 마치자마자 깜깜해질 때까지 달려와준 그 애가 고맙고 반가웠다. 내가 혼자 자던 고요한 집과 마당을 소개해주고 내내 싸우기만 하던 고양이들과 인사시켜 줬다. 그리고 우리가 여태까지 했던 식사 중 가장 비싼 저녁을 먹었다. 철도 아닌 게였지만 맛보다 여행중에 먹는 값비싼 식사였다는 것이 더 의미 있었다. 그전에 날들과 다른 건 그 애 하나뿐이었는데 나는 특히 편안하고 배부른 밤을 보냈다.


오늘 아침에 쟤가 내 조개들 중 가장 작은 것 하나를 부쉈지만 괜찮은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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