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과 독서
나에게 그 하루하루들은 그저 소설이었다. 매일 이 작은 방을 벗어나고 싶어서 누군가가 지어낸 세상으로 도망쳤고, 일기에도 적을게 없을 만큼 무료하고 무감정한 그 하루를 살았다는 증거를 독후감으로라도 남겨놓아야 했다.
하루하루는 지내기에는 물론 길지만, 하도 길게 늘어져서 결국 하루가 다른 하루로 넘쳐나고 말았다. 하루하루는 그러하여 제 이름을 잃어버리는 것이었다. 어제 혹은 내일이라는 말만이 나에게는 의미가 있었다. - 알베르카뮈 「이방인」, 민음사, p100
하루하루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루하루가 어떤 결말로 데려다 주나. 그래서 그렇게 무감각히 지내면 안되는 것인가. 그렇게나 매일이 무거운가.
아침이 되면 일어나서 일과를 보내고 밤이 되면 잠에드는 하루. 나에겐 좀처럼 그런 하루가 없었다.
새벽 2시50분.
엄마의 출근을 위한 알람이 울리면 가물거리던 잠이 달아나고 불이 켜지면 정신이 든다. 이부자리를 정리할때 부는 바람,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는 소리, 변기물이 내려가는 소리, 방까지 걸어오는 걸음의 진동, 가방을 여닫는 지퍼소리. 그리고 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 이 별것아닌 소음들은 내 귀를 뚫고 들어와 뇌 깊숙이 깊숙이, 결국에 온 몸이 소음에 지배당하도록 만들었다. 한번도 눈을 뜨지 않았지만 전부 알 수 있었다.
아침 7시.
그렇게 말짱히 깬 머리로 몇시간을 뒤척거리고 결국 해가 뜨면 동생의 스무개쯤되는 알람이 한시간동안 차례로 울리기 시작한다. 동생이 간신히 몸을 일으키면 요란하게 샤워를한 후 엄마가 누워있던 내 이부자리 옆에서 머리를 말렸다. 후덥지근한 바람은 귀마개로 막을 수 없다.
아침 9시.
모두 외출하고나면 정말로 잠을 자야했지만 그럴수는 없었다. 아무도 없는 그 시간에만 할 수 있는 일을 해야했으니까. 가끔은 안대를 축축하게 적시며 몸을 일으켰지만 하루중 유일한 그 몇시간이 너무 간절해서 울음도 금방 그쳐지더라.
책상에 앉으면 옆집 할머니의 기침소리가 들려왔다. 계단에 앉아서 한참을 콜록거리신다. 옆집 괘종시계는 한참 고장났는지 늘 정각만 피해서 댕댕거린다. 집엔 나뿐이지만 다른 소음들이 자꾸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럼에도 유일한 내 시간임엔 틀림이 없었다. 누가 내 목소리를 듣거나 말거나 신경 쓸 여유도 없이 큰소리로 연습을 하고 기록해두었던 것들을 곱씹으며 곡을 만들었다. 이 시기에 만든 곡들엔 희망은 커녕 웃음조차 없었다는걸 최근에 깨달았다.
정오.
쫓기듯 오전을 보내고 점심을 먹는다. 배가 고프면 먹고 아니면 건너뛰기도 했다. 어차피 에너지를 소비할 일도 없으니 한끼정돈 아무 상관도 없었다. 오히려 끼니도 건너뛸만큼 집중해서 일을 하는게 더 나았지.
오후 2시30분.
점심시간이 지나고 한시간쯤을 더 보내고나면 엄마가 돌아왔다. 그리고 나는 할일을 잃었다. 처음부터 없었던것처럼. 흐트러진 집중력을 다시 붙잡는게 어려워서 엄마가 집에 오면 꼭 세상을 빼앗긴 기분이었다. 내 세상을 준 사람에게 느낄 수 있는 가장 처참한 감정이었다. 나에게 오는 평범한 물음부터 꺼지지 않는 티비소리, 전화 통화, 앓는 소리. 눈을 흘기는 소리까지 나는것같았다. 그 날카로운 것들이 나를 방 구석으로 몰아넣고 차가운 벽안까지 밀어넣으려 무심하게 밀쳤지만 나는 안간힘을 써도 벗어나기가 어려웠다. 쓰러지는 내 시간을 일으켜 세울 힘이 없어 함께 주저앉을 수 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