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관계가 만들어 낼 변화의 힘

길위의청년학교 5기 김재호

by 길위의청년학교

1.

젊은 시절, 세상을 바꾸겠다는 일념으로 운동에 뛰어들었다. 먼지 쌓인 차량의 앞 유리창이 와이퍼로 말끔하게 닦이듯, 사회과학의 눈으로 본 세상은 이전과 달리 너무나 명확했다. 진보적인 사상에 취해 세상을 바꾸는 혁명가가 되겠다고 일찌감치 결심했다. 학생운동, 급진적인 조직운동,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부조리한 세상에 분노하며 새로운 평등세상을 꿈꾸었다.


사회주의권이 몰락하면서 많은 사람이 운동을 떠났고, 남은 사람들은 휘청거렸다. 자신이 지킨 깃발이 옳다는 고집스런 주장도 힘을 얻었다. 외부의 적과 싸우면서, 내부의 운동조직들과 싸우면서 어느 새 괴물이 되어가는 모습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이게 뭔가 싶었다. ‘적들과 싸우면서 닮아간다’고 했던가. ‘신념의 감옥’에 갇혀 아집에 사로잡힌 개인과 조직들 사이에서 몸도 마음도 서서히 지쳐갔다.


어느 순간, ‘저항하는 모습은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의 모습을 닮아야 한다.’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배제하고 공격하는 운동권의 문화에 ‘이 사람들이 정권을 잡으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름이 끼쳤다. 관계는 파괴되고, 아귀다툼과 이해관계만 남은 운동의 현장에 크게 절망했다. 운동을 함께 하던 아내가 울면서 말했다. “사람 미워하고 싸우는데 지쳤다. 이제 그만 시골로 내려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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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003년, 고향인 전남 화순으로 가려다가, 부모님이 “동네 창피하다.”며 반대하고 나서 연고도 없던 장수로 귀농했다. 생태마을에서 유기농으로 농사지으며 얼마간 소박하고 행복하게 지냈다. 어느 날 아침 아내가 말했다. “누군가를 미워하지 않아도 되니 참 좋다.”


소박하고 생태적인 삶을 꿈꾸며 내려온 마을에서 마음의 평화는 오래 가지 못했다. 생태적인 가치와 지향이 같은 줄 알았더니 마을 구성원들의 생각은 천차만별이었다. 나무 한그루 베는 일부터 마을농장 운영, 공동판매, 마을화장실 위치를 결정하는 것도 생각이 너무나 달랐다.


소박하게 살자는 이상은 실상 돈 때문에 쩔쩔매는 상황을 만들곤 했다. 소박한 삶, 말이 좋지, 생계문제로 힘들어 하다 나중에는 작은 이해관계에 예민한 사람이 되곤 했다. 먼저 입주한 선배 주민들이 이상과 현실사이에서 모순된 태도를 보이는 것에 화가 났다. 여전히 나는 옳고 다른 주민들은 나빠 보였다. 마을회의만 가면 불편하고 화가 났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분명한데 왜 사람들은 저렇게 복잡한 이야기를 할까’ 싶었다. 서로간의 다름과 여러 사정들을 내세우는 선배 주민들의 태도, 얽혀있는 이해의 실타래에 ‘생태적인 지향이 방향이 맞는지’ 의문이 갔다. ‘생태공동체? 웃기고 있네.’ 이전과는 다르게 살아보자는 결심은 얼마 지나지 않아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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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갈등이 심해질 무렵, 4박5일 마음수련 프로그램에 반강제로 참여하게 되었다. 내 돈 주고 간 것도 아니고, 마을주민들이 돈을 모아 보내 준 수련이었다. 끌려가다시피(?) 한 수련이었으니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마음수련? 웃기고들 있네.’ 불만에 가득 찬 얼굴로 팔짱을 낀 채 꼬박 하루를 보냈다. 이를 지켜보던 안내자가 조용히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마음 내려놓고 한 번 믿고 따라와 보세요.” 자포자기 심정으로 몸과 마음을 맡겼다.


다음 날, 차 유리창 닦이듯 선명하게 비춰진 나를 만나게 되었다. 마치 유체이탈 된 것처럼 천장 위에서 내려다보이는 선명한 나의 실체. 내 모습은 ‘괴물’이었다. 그토록 벗어나고자 했던 신념과 아집에 갇혀 있는 괴물. 그 모습을 접하면서 서럽게 울었다.

겉옷은 초록으로 바꿔 입었지만 실상 속옷은 그대로인 채, “나는 변했노라!”를 외치고 있는 모습을 보며 놀랐다. 여전히 남이 문제라고 여기며 손가락질 해 대던 모습에 부끄러웠다. 그 충격이 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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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비로소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된 농촌생활. 소중한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장수지역 시민사회운동을 이끄시던 장수중학교의 김인봉 선생님. 남민전 활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장수에서 인문운동가로서 살아가시던 이남곡 선생님. 장수YMCA 이재명총무님. 전교조 선생님들, 마을학교, 교육네트워크의 수많은 활동가들...... 서로를 비난하지 않고 차이를 인정하며, 청소년들과 함께 지역의 변화를 만들어 가는 분들을 만났다.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청소년들과 인문학, 인권, 페미니즘, 청년 정착과 자립을 주제로 만나기 시작했다. 장수교육네트워크는 교육 허브의 역할을, 교육협동조합 마을학교는 대안적인 마을교육, 지역연계 진로탐색을 만들어 갔다. 장수YMCA는 민주시민교육, 회복적 생활교육, 평화교육에 힘을 썼다. 장수민중의집[우리동네]는 인권, 노동, 성평등, 건강한 지방자치, 정의로운 지역전환을 위해 힘을 모았다. 초록누리협동조합과 지역에너지연구모임은 문화유산 교육, 에너지 자립, 지역의 생태적 가치를 지키며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교육활동에 열심이었다.


청소년 활동을 함께 하는 장수의 교육공동체는 서로 연대하는 힘이 있었다. 차이를 인정하고 함께 하는 문화가 잘 만들어져 있다. 가치와 철학을 바탕으로 관계의 성장을 통해 지역의 변화를 도모한다. 건강한 관계를 통해 행복해 하는 경우를 많이 경험했다. 선한 영향력을 주고받으며 함께 성장하고, 느리지만 건강한 변화를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보았다. ‘함께 지역의 변화를 일구고 있다.’는 뿌듯함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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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몇 년 전 어느 날, 청년이 내게 물었다. “제 멘토가 돼 주실래요?” 왜냐고 되물었다. “어른 중에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샘은 마음의 성장을 계속 하는 분 같아요.”


청년의 말을 듣고 얼굴이 화끈거려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점점 속 좁은 사람이 돼 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는 일이 잦은데, ‘마음의 성장을 계속하는 사람’ 같다니······. 때 묻은 속살을 들킨 것 같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지난 겨울, 길청 4기 회장인 이재명 선생님이 조용히 다가오더니 “길 위의 청년학교 한 번 참여해보실래요?” 하셨다. 마음의 성장을 계속하는 어른을 한 명 고르라면 “이 분이요!”라고 말 할 수 있는 바로 그런 분. 길청을 졸업하신 분이 그런 제안을 해 주시니 선택된 사람이라는 뿌듯함이 컸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길청과의 인연은 사주팔자에서 말하는 ‘의인을 만날 운세’의 느낌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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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길 위의 청년학교]를 통해 나는 다시 청년이 되었다. 장수에서 활동하면서 느꼈던 ‘그 무엇’을 이곳 길청에서도 느낄 수 있어 놀랐다. ‘어? 우리랑 비슷한 게 참 많네!’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랄까. 70세가 되어서도 청소년들과 격이 없이 어울리고 싶다고 말했다. 길청에서는 이미 나이와 상관없이 그런 삶을 살아가고 계신 분들이 많았다. 소중한 경험이었다. 이사장님과 교장선생님, 간사님, 함께 한 동료들. 같은 꿈을 꾸며 함께 걸어가고 있더라.


이미 마음의 스승인 그분들을 통해 ‘죽을 때까지 청년으로 살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나이와 상관없이 청년의 삶을 살아가며 건강한 사회, 건강한 지역변화를 위해 힘 모으고 있는 분들. 이들을 만난 건 ‘의인을 만날 운세’ 같은 행운이 아닐까 싶었다. 나이 들어 바라던 모습이 있다면 바로 저 모습이 아니었던가. 삶을 성찰하고, 관계를 성찰하고, 신뢰를 통해 변화를 만들어 나가는 모두의 성장.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어려움이 왜 없겠는가. 그 ‘성장통’을 함께 나누는 분들의 모습에서 나는 “행복”을 보았다.


우연히 다가온 길청. 5기가 끝날 무렵, ‘세상을 보는 또 한 번의 깨달음’이 무엇인지 잘 정리해 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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