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듬더듬 찾아가기에 재미있는 삶

길위의청년학교 5기 민수현

by 길위의청년학교

커서가 깜빡이는 지금, 제목 없이 무작정 글쓰기를 시작한다.

쓰다 보면 제목도 나오겠지.

나의 인생도 그랬다.


거창한 인생 계획은 없지만, 순간을 열심히 살았고 그러다 보니 매번 답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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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것

어릴 적 나의 취미는 엄마를 따라 미용실 가는 것이었다. 미용실에는 주부용 잡지가 많았고 그 안에는 인테리어 섹션이 항상 있었다. 예쁘게 꾸며진 공간 사진을 보는 게, 그게 그렇게 재미있고 좋았다.

‘그래, 난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될 테야.’ 나의 결심은 그 당시 TV 프로그램 화제작 ‘러브 하우스’와 맞물려 더 견고해졌다. 여차여차 실내디자인과를 가게 되었지만, 나의 부푼 기대와는 달리 학년이 올라갈수록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이 일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또 알아버렸다. 못 하면 재미가 없다는 것을.

내가 되고 싶은 것과 잘하는 것의 현실적 간극은 컸고, 그게 내가 먹고사는 일이라면 더욱이 억지로 터덜터덜 걸어갈 수 없는 길이었다.


# 나, 뭐 먹고 살지?

대학 졸업 후, 본격적인 인생의 첫 시련이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막연히, 그러나 견고하게 쌓아왔던 나의 꿈은 실패로 돌아갔고

플랜B는 없었기에 덩그러니 사막에 혼자 있는 신세가 되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길은 몰랐지만, 알려줄 사람도,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다.

아, 한 사람 있었다. 우리 아빠. 그의 입에서 나온 답은 공.무.원.

공무원의 장점을 논리정연하게 말씀하시는 아빠 덕분에, 사막에 길이 하나 생기는 듯했다.

그쯤에 우연히 힘겹게 살아가는 저소득층 가정의 사연을 TV에서 보게 되었고 어떻게 하면 저들을 도울까 생각에 사로잡히게 된다.

그때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사회복지공무원이 되어 사회에 이바지하는 것이었고 사회복지사 자격증 취득과 공무원 시험 준비에 돌입하였다.

‘나름’ 1년간 열심히 공부했지만 ‘나름’ 수준으로는 합격할 수 없었는지 시험에 낙방하였고 그렇게 두 번째 시련은 시작되었다.


# 나, 정말 뭐 먹고 살지?

대학 졸업 후 어느덧 20대 중반이 넘어가고 있었다.

사회복지사 자격증은 취득해 놓았으니 그걸로 취업해야지 싶었다. 그러나 학점이수제로 자격증을 취득한 나에게 취업은 어려운 길이었다.

그래도 사회복지에 뜻이 있으니 이참에 대학원을 가서 좀 더 제대로 공부를 해보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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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어떻게 살지?

지역 대학 사회복지 대학원을 가니 백수는 나밖에 없었다. 현장 사회복지사들과 관장님들이 대부분이었고 그들이 힘겹다며 이야기하는 사회생활은 나에게 부러울 따름이었다.

그래도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장학생이 되었고 장학생에게 주어지는 2주간 해외 실습 기회를 얻게 되었다. 물론, 장학생 중 백수는 나뿐이라 나만 신청했고 나만 붙었다.

세상 모든 일의 장단점은 100대 0일 수 없는 법! 백수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감사했다.

학부생 4명과 방글라데시 장애인시설에서 원아들 대상 프로그램 진행과 시설 개보수 등을 진행하였는데 처음 며칠은 괜히 왔다며 정말 후회하였다. 각오는 했지만, 우리나라와 너무나 다른 환경과 중증 장애인을 대하는 일이 그러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돌아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그곳에 빠져들었다. 그 나라의 느릿느릿한 특유의 여유로움이 좋았고 나만 바라보며 웃어주는 원아들의 순수함이 좋았다.

한가지 정말 궁금했던 건, 그곳으로 파견되어 일평생 시설을 꾸려나가고 계시는 연로한 수녀님의 마음이었다. 정말이지 어떤 마음이면 머나먼 타국에서 한 평생을 바칠 수 있을까? 그 마음이 궁금했다. 돌아가기 전날 저녁, 그동안 고생했다며 손수 차려주신 정갈한 밥상을 함께 나누며 수녀님께 물었다. 무한한 찬사와 존경을 담아서. 그러나 수녀님은 별거 아니라는 듯 단순하게 대답하셨다.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건 큰 등불이 아니라 사람들이 각자 켠 촛불이 모여서다. 나는 나의 촛불을 켰을 뿐, 내 주변만 밝게 빛났다면 그만이다’

맞다. 거창한 꿈은 꾸기 쉬워도 내가 속한 곳에서 보탬이 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은 하기 어렵지 않은가.

남들보다 취업이 늦은 나는 사회에서 정한 표준시간에 맞춰 취직한 사람들이 부러웠다. 꿈과 비전 없이 헤매는 내가 부끄러웠다. 다들 바삐 어딜 가는데 사막에 가만히 서 있는 내가 답답했다.

그러나 수녀님과 대화 이후 나는 그 속박에서 벗어났다.

나 뭐 먹고 살지에서 나 어떻게 살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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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느리지만 더듬더듬 찾아가는 길, 그래서 더 재밌다

그렇게 서른이 다 되었던 때 나는 청소년수련관에서 인생 첫 면접을 보게 되었다. 면접관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없냐고 물었다. 그 때 그냥 목이 메어 울었던 건 흑역사일까. 그만큼 간절했고 진심이었으니 창피하지 않은 에피소드이다. 방과후아카데미팀에서 4~5학년 아이들과 원 없이 놀았고 정을 주었다. 잊을만하면 연락 와서 밥 사달라는 것도, 20살이 넘어 술 사달라는 것도 나의 지갑을 무장해제 만드는 아이들이다.

이후, 지금 일하고 있는 센터에서 계약직으로, 팀원으로, 팀장으로 청소년지도사 인생 십 년이 훌쩍 지났다. 나는 이곳에서만 채용시험을 3번 보았다. TO가 생길 때, 내부 승진이 아니라 공개모집으로 채용했기 때문에 항상 아슬아슬하였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 내가 있는 그 자리에서 항상 최선을 다했다. 내가 속한 곳에서 정말이지 보탬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뭐 먹고 살지 고민하며 직장인이 마냥 부러웠던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세상 고민 다 해결한 듯 보일 테지만 아직도 나는 내 인생을 찾아간다. 내가 만나는 청소년들이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어떻게 촛불을 켤 것인가, 그렇게 어떻게 살지 고민하다가 길청까지 왔다. 길이 없어, 길을 몰라 헤매었던 20대부터 지금까지도 내 인생은 더듬더듬이지만 그래서 인생은 재밌다. 이제 사막에 혼자가 아니라 함께 이야기 나누며 걸어가는 이들이 있어 더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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