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에는 항상 작은 불씨가 있었다.

길위의청년학교 5기 양유진

by 길위의청년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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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우연히 본 tv프로그램에서 건축가라는 직업을 알게 된 후 나는 건축가가 되고 싶었다. 학교가 없어 교육을 받지 못하는 어려운 나라에 학교를 지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된 꿈이었다.

그 후 단 한 번도 다른 진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건축계의 노벨상 프리츠커상을 받는 원대한 꿈을 꾸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코쓱머쓱할 정도로 너무 큰 꿈이었지만.

건축 아이디어를 내고, 협동해서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은 어려웠지만 꽤나 성취감이 있었고 즐거웠다. 건축이라는 본질은 내 적성에 잘 맞는다 생각했다.


청소년 시기가 참 중요하다는 것을 일찌감치 느낀 나는 대학교 수업을 25학점씩 들으며 밤새 과제를 하는 중에도 청소년관련 교양수업을 들었고 주말에는 방과후청소년들을 위한 교과목 봉사활동을 하며(가장 에너지 있었던 시간이었다. 지금은 절대 못한다.)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졸업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 취업하게 되었지만 녹록찮은 타지생활에 낮·밤 없는 근무로 인해 몸과 마음은 지쳐갔다. 건축을 처음 시작하게 된 이유는 어려운 나라에 학교를 지어주고 싶다였지만, 현실에서의 건축은 돈 있는 자들의 전유물처럼 느껴졌다. 건축을 배우는 것은 즐거웠지만 실무는 즐겁지 않았다. 그러나 배운 게 건축밖에 없어서,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에 쉽사리 일을 그만두지도 못했고 항상 긍정적이고 밝았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이 길이 맞는가? 이 일을 계속해도 될까? 고민을 반복하며 자꾸만 작아졌다. 확신도 없었다.


위기는 한 번에 닥친다고 했던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시 다니던 회사가 자금유통이 어려워져 월급이 밀렸고 나는 직업이 있음에도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어떤 때는 버스비 돈 천원이 없어서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걸어가는 일도 있었다. 그래도 힘들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은 감히 나를 절망하게 할 수 없었다. 이런 고난과 어려움의 과정들을 통해 나는 더 단단해지고 강해지리라고 굳게 믿었다.


그러나 많은 우여곡절 끝에 건축 또한 타의로 그만두게 되면서 건축이라는 꿈은 큰 상실감으로 바뀌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생에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던 것 같다.

중1 때부터 10년 넘게 꿈꾸던 목표가 사라진 그 상실감을 받아들이는 일이 나에게는 가장 힘든 시간들이었다.(그 인고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쉽게 쓰러지지 않는 강인함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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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보면 힘든 일이 가득했던 20대, 그 와중에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 당시 만난 청소년들 덕분이었다. 서울에서 일하면서 주말마다 교육봉사, 건축봉사를 다녔는데 그 때 만난 청소년들이 나에게 쉽게 마음을 열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어려워하지 않고 나누는 모습을 보며 오히려 내가 많은 위로와 도전을 받았다. 그 힘으로 버텼다.


그러나 타의로 건축까지 그만두게 된 나는 더 이상 서울에 있어야할 이유가 없었고 힘든 타지생활과 사람들에 대한 피로감으로 지쳤기에 건축을 그만두고 본가로 내려왔다. 내가 해본 것이라고는 건축뿐인데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건축을 계속 할 수 있을까. 만약 건축을 그만둔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고민하던 내게 어느 날 한 친구가 이야기했다.

“요즘 학교에서 상담교사를 많이 뽑는데 우리 학교에서 상담교사를 뽑으면 난 꼭 널 추천할거야. 학생들이 너 같은 상담교사라면 정말 좋아할 거 같아.”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자석에 끌린 마냥 ‘청소년들을 위해 학교를 짓겠다 했는데 그럼 청소년과 관련된 일을 하는 건 어떨까? 좋아. 해보자!’ 생각했다.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넘치는 물을 보고 유레카라고 외쳤던 순간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목표가 생긴 나는 부산에서 직장을 다니며 청소년 관련 공부를 시작했고 학사와 자격증을 취득하고 흘러 흘러 충북까지 와 청소년활동을 하게 되었다.


20살에는 내가 어른 같았고 25살에는 다 철든 것 같았고 28살에는 뭐든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패기가 있었다. 그래서 도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늦다고 하면 늦은 시기 20대 후반(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다.)에 이과에 가까운 건축을 그만두고 문과에 가까운 청소년활동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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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에 난 스크래치는 장미문양으로 만들면 그만이다.]

멋모르고 시작한 일이지만 삶에서 배운 경험은 버릴 것이 없다고 했던가.

건축을 배우며 고민하고 성찰했던 것들과 프로세스화 하고 활동을 만들어내었던 20대의 그 모든 작업 가운데 버릴 경험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건축을 하면서 배웠던 것들이 나의 강점이 되었다. 아이디어를 내고 무언가를 기획해 만들어내는 것은 20대의 내가 늘 하던 일이었고, 분석하고 실행하는 일 또한 나에게는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포토샵, 일러스트를 활용해 수치를 도식화하고 다이어그램화 하는 건 학교 다니면서 밥 먹듯이 한 것들이 아닌가!

또한, 항상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마음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건축을 그만두고 다른 직업을 선택한 것에 대해서는 후회도 미련도 없었다. 건축은 내가 꾸었던 꿈의 ‘도구’였지 목표가 아니었기 때문에.

다만 학교를 지어주고 싶다는 하나의 꿈이 막연해졌다에 대한 아쉬움은 늘 있었다.


큰 도시에서 취업해 활동할 수도 있었지만 10대 때부터 크고 복잡한 도시에서 살며 사람들 속에 치여 온 나로서는 더 이상 그렇게 아등바등 살고 싶지 않았다. 또한, 사람들은 모두 큰 도시에서, 큰 기관에서 일하고 싶어 했다. 그럼 도시가 아닌 작은 지역 청소년들은 젊은 선생님들과 함께 활동할 기회를 가질 수 없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작은 지역에서 청소년들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을 고민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활동이 어느덧 이곳에서만 5년이 흘렀다.


함께 일하는 선생님들이 나에게 이 일은 선생님에게 천직인 거 같다고 말할 정도로 청소년들과 함께하는 모든 활동이 즐겁고 행복하다. 누군가는 당장 효과가 보이지 않는 활동에 애쓸 필요 있나? 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르겠으나 한 기관에 있으며 청소년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내가 하는 이일과 청소년 활동은 무척이나 의미 있다고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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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함께 성장한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우리 기관에서 함께 활동한 친구가 어느덧 고3이 되었다. 처음에는 내성적이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을 어려워하던 친구였는데 이제는 자치단체장 앞에서도 자신의 의견을 정리해 발표하며 어린 동생들에게 멘토로서의 역할을 하는 청소년.

성장한 모든 부분이 청소년활동의 효과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기관에서 활동한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고 덕분에 내가 생각한 것들을 말하는데 어려움이 없어졌다.’ 라고 이야기하는 청소년을 보면 때로 뭉클하다.


함께 활동할 때는 기관에 큰 애정이 없는 것 같아 보였던 또 다른 친구는 고3이 되고나서 자주 찾아와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그러면서 수줍게 ‘저도 선생님같이 멋진 어른이 되고 싶어요. 선생님 덕분에 활동하는 기간 동안 너무 행복했어요.’ 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니 이 일을 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도 든다.


청소년들의 성장을 바라보는 것은 기쁜 일이지만 나는 성장하고 있나? 고민한다. 어른이라는 이유만으로, 피곤하다는 이유만으로 성장을 게을리한 건 아닌가 늘 생각한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배우려고 늘 애썼지만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라고 말한 공자의 말처럼 배우기는 하지만 사색하는 시간이 부족하지는 않은가. 담당자의 역량에 따라 청소년활동의 질은 달라지는데 공부가 필요하다! 라는 생각으로 배움에 목말라있던 어느 날, 우연히 길위의청년학교 모집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이름부터가 왠지 사명감 가득해 보이는 집단. 청소년활동에 대한 청년연구회뿐만 아니라 내가 늘 꿈꾸며 소망했던 국제교류 활동도 진행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청했다.


‘교육할 수 있는 학교를 짓는 건축이 하드웨어라고 한다면 청소년활동은 소프트웨어가 될 수 있겠다. 건축이 목표가 아니라 직업적 수단이었다면 청소년활동가 또한 수단으로써 활용하여 내 역량이 커진다면 청소년과 지역사회에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지 않겠는가.’


끊임없이 공부하고 발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청소년활동가로서 직업과 삶을 깊이 있게, 폭넓게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건축을 시작하며 가졌던 학교를 짓고 싶다고 하는 막연한 꿈이 실현할 수 있는 인프라가 되고 힘이 생기지 않을까.

예상치 못한 순간에 마음먹은 대로 삶이 흘러가기도 하니까. 앞으로 마주하게 될 모든 일들이 기대된다.


내가 10대에 생각한 마음, 내가 20대에 느낀 감정, 내가 30대에 느낀 경험을 토대로 현장에서 청소년들의 성장과 성찰의 순간을 함께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움의 무게를 견디라는 길위의청년학교 슬로건처럼 앞으로도 끊임없이 배우고 성찰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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