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청년학교 5기 안재성
나의 청소년 시기의 목적지는 부모님께서 정해주셨다. 나의 내비게이션이었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나의 장래희망은 교사였다. 하지만 장래희망 작성란에 교사를 적을 때 뜨거움이 없었다. 그냥 정해준 길을 걸었을 뿐이었다.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우리 집은 보릿고개를 겪었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그런지 부모님께서는 안정적인 수입, 쉴 수 있는 삶을 원하셨고, 그의 맞는 목적지를 정해주셨다. 하지만 길을 따라가는 건 무척이나 어려웠다. 친구들과 노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학교, 학원에서 도망쳐 나와 놀았다. 다음 날 등교한 후, 선생님을 대면할 때는 오른손에 회초리가 들려있었다. 그래도 친구들과 노는 게 가장 좋았다.
꾸준히 학원에 다닌 결과, 턱걸이로 인문계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하위 1%였지만 인문계 고등학교에 들어왔기에 성취감은 있었다. 하지만 격차가 커 올라갈 생각은 하지 못했고 여느 때와 같이 친구들과 놀았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슬슬 발등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부모님께서 정해준 목적지를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때마침 친구들 중 몇 명이 공부를 한다고 하여 휩쓸리듯 공부를 했고 경쟁했다. 열심히 하다 보니 하위 1%였던 나는 상위 30%까지 오르게 됐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됐을 때에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공부를 했다. 부모님께서 정해준 전북대학교 사범대에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 갔기 때문에, 친구들과의 관계에서 자존심이라도 세우기 위해선 전북대학교 무슨 과든 가는 걸 목표로 했다. 열심히 공부한 나는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대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비게이션에 찍힌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한 나는 목적지를 잃고 방황을 했다. 대학교에 입학하여 첫 강의를 들었을 때 이미 마음은 떠나 있었다. 같은 과 친구들과 OT, MT를 참여하여 신나게 논 후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보기 전 자퇴를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몇 달 동안 놀아보니 슬슬 다시 걱정이 됐다. ‘앞으로 뭐하지...?’
내가 할 수 있는 건 노는 것 그리고 국, 영, 수 뿐이었다. 그때 쯤 신의 직장으로 칭송받는 공무원에 도전했다. 사실 도전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2년이 넘는 시간을 고시 공부한다는 명목으로 부모님의 큰 잔소리를 피해 지냈다. 결국 아무것도 안 돼 있는 채로 입대를 하게 됐다.
8년 사귄 여자친구와 부모님의 배웅을 받고 군대에 갔다. 2년 동안의 군 생활은 나에게 큰 행운이었다(하지만 두 번은 절대로 안 가겠다). 다양한 또래를 만나면서 나를 알게 됐고, 많은 걸 배웠다. 운전병으로 들어가서 버스를 운전할 때 수송반장님께서 눈여겨보셨다. 열심히 운전하던 중 수송반장님께서 따로 부르셨다. “동진아.” “일병 김동진!” “너 코너링이 좋던데 cp운전병 하자.” 제안에 감사했지만, 같이 버스 운전하는 선임, 동기들과 함께하고 싶어 완곡하게 거절했다. 다음 날, 나는 대대장님과 인사를 나누고 cp일을 배웠다.
배움을 강조하신 대대장님 덕에 여러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없었던 나는 일단 가지고 있으면 먹고 살 수 있는 자격증을 도전했다. 그중 오랜 시간 들인 사회복지 자격증을 도전했다. 수업을 모두 이수하고 아름답게 전역했다.
전역 후 사회복지 실습을 찾으면서 나의 취미생활인 당구를 쳤다. 당구장 어른들과 당구를 열심히 치던 중 한 어른과 대화를 나누게 됐다. 사회복지관 관장님이었다. 엄청난 인연으로 만나게 된 관장님께서 이번 실습이 있으니 잘 준비해서 신청해 보라고 하셨다. 열심히 준비하여 면접을 본 후 합격하여 학산복지관에서 실습을 할 수 있었다.
한 달 동안 복지관 모두학교팀에서 실습을 했다. 아이들과 함께 놀며 청소년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며 배웠다. 실습이 끝난 후 아이들과 인사하고 나오니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그리웠다.
다시 즐겁게 취미활동을 하던 중 이번에도 한 어른과 대화를 나누게 됐다. 이번에는 복지관 법인 이사장님이었다. 이사장님과 긴 대화를 한 끝에 청년혁신가로 복지관 모두학교에서 일을 하게 됐다. 저번 실습과는 다르게 중, 고등학교 아이들과 소통했다. 오랜만에 본 초등 아이들과 인사한 후에 처음 보는 중, 고등학생과 인사를 했다. 초등학생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나의 학창시절과 비슷하게 학습에 목메어 있었다. 이때 나의 고민은 커져갔다.
아이들과 지내며 아이들의 강점을 찾고, 아이들이 주체적으로 자신을 알고 강화할 수 있게 돕는 조력자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청소년 아이들의 이해와 지식에 부족함을 느껴 스스로 공부를 해야겠다 생각했다. 근무한 지 1년 정도가 지났을 때, 직원 연수 활동으로 군산에 갔다. 학습 활동으로 정건희 소장님의 강의를 듣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하던 중 ‘길 위의 청년학교’를 알게 됐다. 나의 굶주린 상태를 배불리 해줄 것이라 생각했다. ‘길 위의 청년학교’에 다니며 ‘청소년 활동론’, ‘청소년 프로그램 개발과 평가’를 배웠다. 길청 시간의 문을 여는 누구나 배움터 시간, 챕터마다 선생님들의 발표 그리고 정건희 소장님의 강의까지 눈을 뗄 수 없이 집중한다. 그래서 나는 매주 한 단계 성장한다. 다양한 곳에서 청소년과 함께하는 선생님들의 경험 속 사고들을 머릿속에 정리하여 모두학교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적용해본다. 배우면 배울수록 어려우면서도 청소년에 대해서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정말 재밌다. 길청을 마친 후 변화된 나의 모습이 기대된다. 그 때에는 더 많은 청소년과 같이 웃고 있을 것이다.
끝은 생각하지 않고 지금 여기에서 청소년 친구들과 함께 성장하겠다. 이제 막 청년으로서 삶을 살아가는 나의 삶을 되돌아보고, 청소년 친구들과 함께 열정을 가지고 미래를 그려가보겠다. ‘길위의청년학교’를 통해 배움의 무게를 견뎌 나의 삶과 청소년 친구들이 추구하는 바를 찾아 끊임없이 배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