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청년학교 5기 엄혜원
나는 주도적인 사람인가? -라는 질문이 있다면 “아니다”라고 즉답할 수 있을 만큼 내성적인 사람이다.
순수하지만 멍청한 쪽에 가까웠던 나는 지금 생각하면 호구였다. 기죽으며 남의 눈치를 보며 지냈지만 바보같이 순수한 그런 청소년.
나의 청소년기는 특별한 추억이 그다지 없다. 무언가에 도전하거나 진취적으로 살아본적이 없고 순응적이며 생각없이 살았던 날들이였다.
아쉬운 것은 나도 청소년활동시설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여라도 해보았다면 조금 더 나은 모습으로 살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있다.
반복되는 삶의 반복과 특별할 것 없는 추억 속에서 나는 점차 생각을 잃고 순종적인 삶을 살았다.
초등학교 수련회를 갔는데 어느 유스호스텔이었던 것 같다.
빨간 모자를 쓰고는 ‘핸드폰 내지 않고 사용하면 전자파에 걸린다’는 거짓말에 속아 핸드폰을 냈던 그 수련회. 지금 생각해보면 그 곳에서 기합을 받으면서 짧게 그런 생각을 했었다.
‘아 나도 저런 사람이 되보고 싶다’
중·고등학교는 미션스쿨이고, 대학 입시를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준비시켜주는 곳이였다.
창체 시간에는 목사님께서 진로인성교육을 해주셨는데, 그것이 어찌나 그렇게 재미나던지
특히 MBTI를 통해 수업을 해주시면서 같은 반 학생들과 배꼽빠지게 웃고 초집중을 하며 수업을 들었다. 또한 부정적인 것들이 쌓이기 좋을 나이에 긍정적이고 따스한 것들로 나를 채워주었고, 그 수업들로 인해 행복과 안정감을 느꼈었다.
함께 수업을 듣는 반의 모든 아이들이 창체시간이 되면 설레하고 기다려지는게 느껴지고, 꿈이 없는 친구들은 꿈을 찾기 시작하게 되었던 그 과정들이 좋았다.
그래서 그때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저 목사님처럼 재밌는 진로선생님이 되고 싶다’
사실 내신등급도 평범했기에 당시 주변의 대학교에는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넣는 족족 바로 앞 예비순번에서 탈락되고, 탈락되고, 탈락되었다. 나도 당황,,,담임 선생님도 당황,,, 울며 겨자 먹기로 청소년지도학과가 있는 2년제 대학에 지원했는데 거긴 또 붙어버렸다. 결정 장애가 심했던 터라 여러 곳에 붙으면 어떡하지,.,? 라는 고민이 무색하게도 짧게 배우고 빨리 일을 하면서 경력을 쌓는 게 더 낫다! 라는 자기 세뇌를 하면서 대학 생활을 시작했다.
파란만장하고 즐겁고 아쉬움이 가득한 대학생활을 보냈다.
한번은 MT로 충북의 한 수련원에 가게 되었는데, 젊은 여자 지도사 두 분이 너무 멋있어보였다. 위험해 보이는 챌린지 코스에서 겁에 질린 나를 이끌어주던 작지만 단단해보이던 지도사님. 또 그런 생각을 짧게 했었다. ‘아 나도 수련원에서 일해보고 싶다’
MT를 갔던 그 수련원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근 3년동안 많이 배웠다. 첫 직장이었기에 부족한 게 너무 많았지만 수련원을 찾아온 청소년들과 웃으며 많은 추억과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말하자면 길지만 레크리에이션도 도전해보고, 캠프파이어를 하며 밤하늘에 떠있는 많은 별들을 보고 코끝이 찡해지기도 하고 밤에 몰래 다른 방 찾아가는 청소년들을 혼내주기도 하며, 자연을 바라보는 습관도 생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감사한 일들인데 내가 언제 수련원에서 이렇게 일해볼 수 있었을까?
수련원 근무를 하며 초등학생, 대학생 때 짧게 가졌던 나의 생각들이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몸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수련원을 그만두게 되었고, 내가 소망한 대로 21년 시작과 함께 근무를 시작했다. 근무를 하게 된 곳은 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다. 청소년방과후아카데미 소속 청소년들과 1년을 함께 해야 한다는 사실에 기대가 되었고, 2년째가 되가는 지금은 한 명 한 명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방과후아카데미 소속 청소년들과 매주 진로수업과 동아리활동을 진행해야 했다. 처음엔 갈피를 제대로 잡지 못해 청소년들도 지루해했지만, 더욱 더 조사하고 수업을 준비하니 청소년들이 기대하며 수업에 참여하고 적극적으로 임하는 모습을 보이는 요즘이다.
청소년에 대한 고민들이 점차 피어나기 시작할 때 청소년들을 대하는 마음가짐, 일 하는 것들에 대해 동료 청소년지도사분들과 이야기를 하며 열정을 새길 수 있었다. 또한 길 위의 청년을 하며 ‘청소년’을 바라보는 시각과 어떤 ‘활동’을 진행해야 되는지 어렴풋이 길이 보였다. ‘청소년’이라는 개념부터 생각해볼 수 있었고,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
전에는 마냥 어린아이와 같이 대했지만 이제는 있는 그대로의 시민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보다 낮고, 미성숙한 사람으로만 바라보며 가르치려고만 하는 것이 아닌, 주체성을 가진 시민으로 바라보기 위해 노력했다.
물론 현재 근무하고 있는 곳의 청소년들은 초등학교 4~6학년이지만 그들이 어린아이에서 벗어나서 이제는 스스로 살아갈 힘을 기르도록 함께 도움을 주며 살아가고자 한다. 그렇게 시선과 태도를 바꿨을 때 한 명 한 명을 더욱 잘 이해하게 되었다.
청소년지도사인데, 청소년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었나 생각해보면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함께 나누고 배우며 이상적이고 멋있는 청소년지도사가 되기 위해 나는 아직도 노력중이다.
짧은 인생을 뒤돌아보면 어느정도 길을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계획형이 아니며, 내 인생이 어떻게 흘러갈지 어떤 꿈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내가 설계하지 않을뿐더러 그 때 그 때 환경과 상황 속에서 이끌리듯 살아왔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자리잡고 있던 나의 바람들이 어느샌가 이루어져가고 있음을 느끼며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나는 어떤 청소년지도사가 될까?
나는 어떤 인생을 사는 사람이 될까?
새로운 소망을 품으면 그것이 또 이루이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다.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청소년지도사가 되기 위해 오늘도 나를 다잡는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