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을 가진 청소년지도사로 성장 중

길위의청년학교 5기 이소영

by 길위의청년학교


465F5D06-3CF2-46BD-ADE3-3E514FB46EF6.jpeg

청소년지도사에 발을 들이다.

인생에서 첫 선택이라고 말하는 대학교와 학과선정은 내 삶의 방향과 가치관을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15살부터 고3 수험생 시절까지 내 꿈은 '유치원교사'였다. 몇 년에 걸쳐 희망한 꿈을 이루기 위해 다양한 교외 봉사활동부터 교내 교육봉사동아리까지 성실하게 활동했지만 결국엔 성적이라는 큰 벽에 가로막히게 되었다.


많은 유아교육과에서 말도 안 되는 끝자리 예비번호까지 받은 후에 담임선생님과의 상담에서 우연치 않게 '청소년문화복지과'라는 학과를 보게 되었고 평소 남을 도와주는 활동에 관심이 있었던 나는 '복지'라는 단어에 꽂혀 학과 커리큘럼을 찾아보게 되었다. 청소년지도사와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동시에 취득할 수 있는 학과였고 평소 청소년 관련 직업 자체가 존재한다는 것도 몰랐기에 '청소년지도사'보다는 '사회복지사' 직업에 초점을 맞춘 채 원서를 넣게 되었다.


수시 합격 발표 기간이 되며 그동안 넣었던 청소년학과를 포함한 여러 대학에서 합격 연락이 오게 되었고, 그토록 바라던 유아교육과도 결국 합격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유아교육과에 맞춘 생기부로 채워나갈 정도로 너무나 원했던 학과의 합격 소식이었으나 청주가 아닌 타지 학교였고 그 순간 '아 집에서 학교 다니고 싶은데...'라는 생각 하나로 잘 알지도 못하는, 집에서 통학할 수 있는 청소년 관련 학과 대학에 예치금을 덜컥 넣게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무모하고 지금보다는 해맑던 10대 시절이었기에 할 수 있는 일이었던 것 같다.


KakaoTalk_20230201_125358899.jpg

청소년지도사를 꿈꾸다.

꿈꾸던 대학 생활의 1학년 때 가진 생각은 '도망쳐야겠다'였다. 매달 토요일, 격주로 청주 시내에서 어울림마당 부스운영, 모든 과목은 조별과제 후 발표, 봉사활동 운영계획 및 진행 등등 누군가를 이끌며 추진력을 요하는 학과생활은 평소 내향적인 나랑은 너무나 안 맞는 학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입학 후 사회복지사 직업을 배우지 않을까 하는 내 생각과는 다르게 청소년지도사 육성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학과였고 전혀 알지 못하는 분야였기 때문에 흥미도 또한 많이 떨어지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자퇴를 생각할 만큼 혼란스러운 생각으로 1학년을 마치고 진행했던 사회복지 현장실습에서 뜻밖에 나의 흥미를 발견하게 되었다. 많은 초등생들과 함께 소통하고 그들의 복지를 위하여 일하는 사회복지사에 관심이 가게 되었고 졸업 후 나의 직업으로 삼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다시 새로운 꿈이 생기고 난 뒤, 자연스럽게 학과생활에도 애정을 가지고 임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 시절 부회장 경력 이후로 단 한번도 임원을 맡아본 적 없었지만 과를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2학년 때는 학생회를 맡게 되었다. 그냥 해도 바쁜 학과생활이 학생회를 맡고 난 뒤에는 더욱 바빠지며 격주로 진행하는 어울림마당 봉사활동과 교수님이 부르는 청소년수련시설 현장 봉사활동을 타의적 성실함으로 임하게 되었다.


학생회 임원을 맡고 초반까지는 사회복지사에 흥미를 가진 시기였기에 청소년활동 관련 봉사활동은 다소 형식적으로 맡아 운영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또 다시 새로운 꿈을 갖게 된 계기가 생겼다. 교수님의 소개로 한 청소년수련관 행사에 학생회 임원들과 함께 봉사활동 인력으로 투입되어 행사현장에서 지도사 선생님들을 도와 활동하게 되었는데, 실습했던 지역아동센터보다 수십 배는 큰 청소년수련관 행사 현장에서 발로 뛰며 내 마음도 두근두근 뛰었고 그 순간 '아, 이거다! 난 이 일을 해야 겠다'라는 살면서 가져본 확신 중에 두 번째로 큰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27C3DA0F-9793-45A9-8A27-0C0374646337.jpeg

혼란을 넘어 확신으로!

짧은 대학생활이 모두 끝나고 청소년 활동 행사 진행에 큰 매력을 느꼈던 나는 곧바로 청소년수련원에서의 짧은 근무기간을 거쳐 지금 내가 근무 중인 금왕청소년문화의집으로 오게 되었다. 짧은 수련원 경력 이외에 어떠한 실무경험도 없던 나였지만 감사하게도 문화의집 업무를 차근차근 한 단계씩 배우게 되었다. 그렇게 점점 혼자서 처리할 수 있는 업무들도 늘어나게 되었지만 가장 큰 문제는 업무 현장에서 청소년에 대한 애정이 생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것이 10대 때의 나는 정말 평범한 청소년이었다. 학교-학원-도서관을 반복한 일상의 경험만 있던 나에게 기관 청소년들이 가져오는 다양한 고민거리와 문제점들은 해결은 커녕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 때, 나의 경험과 지식으로 청소년들에게 직접적인 도움이 되기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는 나의 청소년지도사스러운 첫 고민이었다.


입사 후, 청소년들에게 애정은 다소 부족했지만 행사 및 프로그램 진행을 하며 일에 대한 열정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내가 흥미를 느끼던 현장업무는 모두 올스탑이 되었고 그렇게 첫 일권태기가 찾아왔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일태기를 겪는다는 3년차 때의 일이었다.


그때에 나는 이 일을 계속 할 것인지, 다른 일을 찾아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되었다. 20대엔 뭘 시작해도 늦지 않았다는 말을 밥 먹듯이 들어왔지만 실제로 그 상황이 되어보니 청소년 활동 외에 다른 일을 찾는다는 건 너무 막막해보였고 그만둘 용기가 나지 않았다. 개인적인 일로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있을 때라 그 시기가 나에겐 더욱 크고 무겁게 다가왔다.


KakaoTalk_20230201_125358899_02.jpg


말이 길어졌지만 결론을 말하자면 4년차로 넘어갈 때 쯤, 종교의 힘으로 극복해내었고 그 이후 지금 하는 일에 대한 사명과 확신이 처음으로 생겼다. 그것이 살면서 가진 확신 중 가장 큰 확신이었다. 감사하게 나에게도 사명이 생겼으니 나도 그에 맞는 책임감을 가지며 이 일을 최선을 다해 임해야겠다는 다짐도 하게 되었다.


'청소년이 그 나이대에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누리게 해주자'라는 생각으로 '청소년 핵심역량을 키워주는 청소년지도사'가 나의 지도관으로 세우게 되었다. 그 목표는 내가 입사 초반 가졌던 고민까지 해결해주는 동기가 되었다.


개인적 경험 부족으로 청소년의 원론적인 문제해결을 도와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컸지만 청소년지도사가 제공하는 지도방법과 활동 속에서 청소년이 그 속에서 하나라도 느끼고 배운다면 청소년들이 살면서 필요한 인생 로드맵이 생기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처럼 틀에 박힌 사고를 가지고 있는 청소년들의 생각을 일깨워줌으로써 스스로 틀에서 탈피하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 또한 들었다.


청소년에 대한 애정, 일에 대한 사명감이 함께 더해지니 함께하는 친구들의 성장하는 모습 하나하나가 큰 감동으로 다가오고 본인들끼리 주체적인 활동을 하나라도 하는 날에는 정말 친한 친구들 몇 명만 볼 수 있는 인스타그램에 엄청난 주접글을 적게 된다.


2년 전, 만약 내가 이 일을 그대로 포기했다면 혼란의 시기는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도, 청소년들로부터 오는 소소한 행복감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즐겁게 일할 수 있다는 것은 감사한 것 이라는 사실도 알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매우 아찔하다.


청소년지도사라는 일은 나에게 참 특별하다. 생각지도 못한 순간의 선택으로 시작했지만, 나의 청소년기의 아쉬움을 간접적으로 채워줌과 동시에 청소년들이 점점 성장하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청소년 활동은 당장 효과성이 보이지 않는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말은 언젠가는 효과성이 나타날 수 있다는 말로 들렸고 그렇기 때문에 청소년 개개인이 가진 잠재력을 깨워주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의 이전글쫄지 않는 아이, 쫄지 않는 길 위의 청년